[Opinion] 미술관을 걷는 일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3.17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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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볼 때마다 작은 수첩 하나와 펜 하나를 쥐고 들어간다. 눈을 사로잡거나 마음을 치는 작품 앞에서 느낀 감정을 오롯이 기록하고 싶기 때문이다. 핸드폰 메모장을 사용하면 들고 다닐 짐이 줄어들어 덜 수고로울지 모르지만, 스케치하고 싶을 때 등 아날로그만이 줄 수 있는 유용이 좋아서 늘 수고롭게 산다.

 

꼿꼿이 서서 손바닥에 수첩을 받친 채 빠르게 갈겨쓴 활자들이 뒤엉킨 모습을 보면 당시의 내가 그대로 재생된다. 그때 가지고 있던 의문과 고민이 의도치 않게 녹아 있을 때가 많아서, 해부된 자아를 들여다보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이상한 낙서들—대부분 어설픈 작품 모사 혹은 조악한 형상의 동물들—은 메모 주변을 빽빽하게 채우며 약간의 미감을 더한다. 문자 없는 언어는 문자라는 껍데기를 입고 나의 작은 종이 위에서 현현한다.

 

 

폴 세잔 Sous Bois.jpg

폴 세잔(Paul Cezanne), Sous-Bois, Oil on canvas, 1894,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메모들은 언제나 한국어와 영어가 자유분방하게 섞인 문장들의 나열이다. 가끔 알 수 없는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들이 쓰여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럴 경우에는 꼭 옆에 검색한 뜻을 병치 시켜 기록해두고 원어와 번역어의 맛을 모두 즐긴다.

 

폴 세잔의 풍경화 Sous-Bois를 예로 들겠다. 원제인 프랑스어 ‘수 부와(Sous-Bois)’와 한국어로 번역한 ‘큰 나무 밑의 작은 초목’이 선사하는 어감은 사뭇 다르다. 응집성과 섬세함의 정도, 혀끝에 감기는 우아함과 동공에 맺히는 친절함의 차이에 대해 생각한다. 서로 다른 언어가 가진 성질에 관한 생각까지 이른다.

 

두 언어는 다르다. 그러나 동일한 대상을 지칭한다. 실은 그림만으로도 문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캔버스 위를 뒤덮은 이파리들은 녹색의 초목이 주제임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햇빛 아래 다채롭게 물든 비탈과 부드러운 나뭇가지의 곡선은 하나의 율동처럼 리드미컬하게 화폭을 채운다. 국경을 초월하는 언어가 존재함을 실감한다. 그림 위 펼쳐진 것이 하나의 언어라면, 미술관은 언어의 집합소가 된다는 비례식을 세워본다.

 

*


과연 그렇다. 미술관에서 걷는다는 것은 책이 활짝 펼쳐진 도서관을 걷는 일과 다름없다. 책을 읽으면 화자가 묘사하는 각각의 장면마다 몰입하게 되면서, 내가 마치 그 속에 있는 것 같은 신비한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특이점은 혀의 언어가 아니라 발음할 수 없는 눈의 언어로 구사된다는 점이다.

 

시끌벅적한 마을의 장터와 열기. 한가로운 분위기의 전원풍경 속 공기. 식물과 동물이 함께 빚어낸 자연의 아름다움. 테이블 위 놓인 정물의 적요(寂寥). 기묘한 형상의 물감 덩어리들과 궁금증을 자아내는 다양한 오브제들. 뒤틀린 몸뚱어리가 주는 생동(生動)과 얼굴 없는 도형들의 기하학적 향연. 포즈를 취한 채 작가를 응시하는 모델의 색색거리는 숨결, 그리고 아틀리에 안을 부유하는 먼지까지도. 모두 잡아 채어져 회화의 언어로 기록되고, 고운 액자 안에 담긴 채 감상자들에게 부디 자신을 읽어 달라고 손짓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작품을 향한 몰입이 회화의 언어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붓 터치, 색, 톤, 빛, 질감 등과 같은 세부요소들로 이루어진 언어 말이다. 자세히 관찰하면 할수록, 요소들은 거대한 단서가 되어 자신들을 엮어 하나의 플롯을 써보라고 우리를 부추긴다.

 

 

man in armour holding a pike.png

얀 반 비레르트(Jan Van Bijlert), Man in Armour Holding a Pike, Oil on Canvas, 1630, Norton Simon Museum

 

 

미국 캘리포니아의 노턴 사이먼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평소와 같이 작품이 가득한 회랑을 거닐다가 얀 반 비레르트의 <창을 든 갑옷 속의 남자 (Man in Armour Holding a Pike)>를 발견하게 되었다.

 

대중들에게 다소 생소한 이 네덜란드 화가의 그림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 이름 모를 남자의 초상화 속 이야기를 읽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레르트의 묘사를 천천히 따라가며 작품의 표면을 훑었다.

 

투구의 풍성한 깃털과 번쩍이는 갑옷, 자신감에 찬 채로 응시하는 눈동자, 결이 날렵한 창, 두툼한 손바닥 위 거무스름한 굳은살과 근육의 유연한 움직임. 심지어 눈 밑에서부터 코끝으로만 예리하게 떨어지는 빛줄기조차도 빠짐없이 남자가 전사(戰士)임을 알리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이 강인한 전사의 눈을 마주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거칠었을 삶과 자존심이 강한 성격, 술에 취하면 쉬이 붉어졌을 코 끝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고함을 지를 때마다 주름졌을 광대뼈 아래 근육과 단단히 동여매진 허리의 띠에 묻은 아내의 손길을 상상했다. 화가 앞에서 꼼짝 않고 상체를 비튼 채로 호흡할 때마다 미세하게 흔들렸을 수염의 나부낌이 보였다.

 

작품 옆 캡션에는 기본정보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방금 떠오른 언어를 캡션에다 촘촘하게 입력하는 상상으로 감상을 마무리 지었다.

 

*

 

그림은 보는 이들에게 이러한 숨겨진 이야기들을 무언의 언어로 고요하지만 강렬하게 전달한다. 우리는 대상의 속성을 흥미롭게 흡수한다. 이는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하는 내게 더욱 생경하고 신비롭게 다가온다. 곡선과 직선의 기호가 아닌, 색과 빛과 작은 터치로써 의도를 전달하는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에 경외로 가득 찬 탄성을 토한다.

 

비로소 보는 것과 듣는 것은 같은 선상에서 교차한다. 작품으로 가득 찬 회랑 안에서 우리는 눈으로 듣고 귀로 본다. 액자 안에 존재하는 각각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 다른 목소리에 뼈를 입혀 하나의 장면으로 재현한다. 우리는 이를 감상이라고 부른다.

 

그 때문에 전시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감상자에게는 물음표의 연속이 끝없이 펼쳐진다. 어떤 사연과 삶을 가진 사람일까. 이 풍경은 어떤 장소의, 어떤 날짜의, 어떤 시간대의 공간을 포착한 것일까. 현실일까 비현실일까. 작가가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순간마다 ‘What’에 종속된다.

 

고민하고 상상한다. 무언의 세상을 마음으로 먼저 느끼기도 한다. 그림 속 이야기를 기꺼이 제멋대로 재구성한다. 그렇게 걸음 하나마다 의문문과 가정문을 수없이 만들며 우리는 이세계(異世界)로 간다. 과거와 미래를 여행한다. 지구 위 어딘가로 떠나고, 또 지구 밖으로도 간다.

 

*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전후 맥락과 함께 이해하는 것은 감상에 언제나 도움이 된다. 경험이 많은 전문가라면 기쁘게 도상학적 해석을 즐길 수도 있겠다. 또한 관람자를 돕기 위해 큐레이터가 설치한 자료들이 있다면, 이를 주의 깊게 읽는 것도 감상의 중요한 일부분이다.

 

필자는 배경지식 없이 작품을 감상하라고 권유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지식 없이 벌거벗긴 채로 전시장 안에 내던져져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미술관은 결코 정답을 위한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술 작품은 누군가 풀어야 하는 시험지가 아니다. 작품의 참 의미나 원작자의 의도를 알아채는 것보다, 작품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고유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무엇을 감각한 이후 일 밀리미터만큼이라도 자아가 움직였다면, 일상에서 해방된 채 가능한 만큼 세계를 누비고 이름 모를 것들의 사연을 청취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낯선 화폭 앞에 선다. 정보 없음을 탓하기보다는 구속되지 않은 순수함으로 현 상태를 규정한다. 그리고 눈앞의 활자 없는 책을 즐겁게 읽으며 나만의 활자를 창조한다.

 

기쁘게 미(美)의 도서관을 걷는다.

 


[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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