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림에 숨, 불어넣기 [미술]

동양의 표현주의, 산수화와 초상화
글 입력 2022.03.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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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산수화, 임천지심의 마음으로


 

조선 시대 화가 정선은 ‘숲과 샘’의 마음, 즉 ‘임천지심’으로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저 ‘산수’의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굳이 정선은 나무로 가득 찬 숲이라는 뜻의 ‘임(林)’과 땅속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 ‘천(泉)’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단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선 그 이유를 알기 위해 겸재 정선의 회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정선의 산수화를 ‘진경산수화’라고 하는데, 여기서 ‘진경’은 두 가지 용어로 이해될 수 있다. 바로 현장 사생처럼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과 자신의 마음에 느끼는 대로 그리는 것, 이 두 가지이다. 여기서 정선은 후자에 속하며, 그는 자신의 주관 속에서 자연을 표현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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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박연폭포>

 

 

실제로 1750년대 정선의 <박연폭포>는 실제 사진과 매우 다르다. 폭포가 흐르는 각도는 더 수직에 가깝고, 폭포가 시작되는 시작점도 실제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또 뚜렷한 색채 대비로 폭포의 압도적인 크기를 느끼게 한다.

 

1751년 작품, <인왕제색도> 역시 실제 산이 찍힌 사진보다 더 웅장함을 보여준다. 어두운 산의 이미지를 묵으로 찍어내고 산과 산 사이의 구름 언덕을 자연스럽게 풀어낸 방식이 인상 깊다. 망설이지 않고 산과 나무, 아래 집까지 그려낸 모습 역시 조화롭다.


《연강임술첩》에 실린 정선의 그림도 정수영의 그림과 달리 현장을 더 극적으로 묘사했음을 알 수 있다. 단, 정선이 현실과 다르게 그렸다고 해서 사실적인 표현까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웅언계람>에는 일행을 맞이하는 주민들과 아전들까지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정선은 나무 하나하나도 보았지만, 숲을 조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땅속에서부터 솟아나는 물의 원천인 샘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즉 자연의 움직임과 활력을 순수하게 느끼고 이를 그려낼 수 있는 화가였다. 그래서 정선이 말한 ‘임천지심’의 마음은 산수의 마음보다 더 깊이 살아 움직이는 진동이 있다. 정선의 그림은 조선 회화사의 혁명이었고, 현재까지 있어 잔상이 깊은 작품으로 남아있다.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나는 배경ㆍ인상ㆍ시선 


 

이번에는 조선 시대의 초상화를 들여다보자. 필자는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초상화에는 왜 특별한 배경이 없었는지, 어떻게 초상에 인물의 성격을 드러낼 수 있었는지, 또 인물의 얼굴이 정면이 아닌 측면을 향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글을 쓰고자 한다.


우선 조선 시대 초상화는 성리학 이념이 확대되면서 제작되었는데, 이 이념 중 이기론은 “이와 기의 원리를 통해 자연과 인간, 사회의 존재와 운동을 설명하는 체계"라고 한다. 여기서 ‘이’는 만물생성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실재이며, ‘기’의 존재적 근거가 된다. 또한 ‘이’의 주체인 정신은 ‘기’라는 신체와 연결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전신’이라는 개념으로 초상화에 등장한다. 바로 “터럭 한 올이라도 틀리면 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전신 개념의 정수이다.

 

그러므로 이 당시 예술은 올곧은 정신을 담아낸다는 도덕과도 결부되어있었다. 또 초상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덕망 있는 위인을 보여준다는 뜻이었으므로, 배경을 떠나서 인물만을 강조해 그리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선 시대 그려진 초상화에는 별도로 배경이 필요 없었다.


그래서 초상화에는 형형히 눈을 뜨고 있는 얼굴이 먼저 보인다. 인상에 있어서 유독 눈과 눈썹이 강조되는데, 이는 인물의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현옥과 구양숙(2021) 의 연구에 따르면 초상화가들은 인물 그 자체를 연구해야 했기 때문에, 인물의 심성과 성품을 드러낼 수 있는 인상학을 먼저 배워야 했다고 한다.

 

하나의 예시로, 눈썹도 초상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눈썹은 눈을 보호하는 동시에 얼굴의 윤곽을 결정짓는 요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당시의 초상화가들은 눈썹의 모양을 활용해 인물의 성격, 내면까지 온전히 그려내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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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철, 김정희 초상

 

 

더불어, 조선 시대 초상화는 중국의 초상화와 다르게 다소 측면을 향하고 있는 양상을 보인다. 귀 한쪽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면보다는 시선이 향하는 여지가 더 길다. 이는 감상자와의 거리를 확보함으로써 더 여유로운 느낌을 준다.

 

이한철의 <김정희 초상>은 특히 측면이 두드러지면서 성리학에서 요구되는 군자의 정직하고 온화한 품성이 느껴진다.  이렇게 전신 개념에서 비롯된 조선 시대의 초상화는 내면과 심리를 담아내면서 그림 속 인물에 주목하게 만든다.

 

*

 

지금까지 본 글에서 살펴본 초상화와 산수화, 둘 다 내면적인 요인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러한 경향은 그림이 주는 울림에 대한 깊은 고찰을 이끌었고, 나아가 현대 회화에도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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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 이태호, 『이야기 한국 미술사』, 2019, 마로니에북스, p.289

- 이태호, 『이야기 한국 미술사』, 2019, 마로니에북스, p.298

- 이태호, 『이야기 한국 미술사』, 2019, 마로니에북스, p.290

- 이현옥, 구양숙.(2021).인상학 이론 기반의 조선시대 초상화에 묘사된 눈썹 유형과 성격 간의 융합연구.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39(2),409-420.

- 네이버 지식백과, 이기론

 

 

[심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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