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 [영화]

글 입력 2022.03.07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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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으로 알아보는 좋은 결핍, 좋은 결말, 좋은 이유

 

 

 

여는 말


 

새벽 2시 3분이다. 아트인사이트 25기 에디터로 발탁되고 게재하는 첫 글인데, 마감 22시간 남겨두고 겨우 첫 줄을 뗀다. 미쳤나 보다. 그것도 ‘얼마 전에 다녀온 전시를 써 볼까? 아, 이미 관련 글이 오천 개는 있네. 그럼 요즘 유행하는 인기 캐릭터! 근데 귀엽다는 감상 말고 느낀 바가 있긴 해? 곧 야구 개막하는데…, 더 이상 전처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뭐 아는 게 있다고-’ 자책하며 고민만 거듭하다 발등에 불 떨어져 급히 아무 말이나 써 내리고 있는 한심한 상태에 대해 말이다. 정말이지, 못났다.

  

그러면, 도대체 자의식과잉이 심각한 서론으로 질질 끌면서 가져온 게 뭐냐고? 어제 본 영화 <어댑테이션 (Adaptation), 2002>이다.

 

사실 이 영화는 2002년도에 개봉한 만큼 모든 것이 구석구석 해석돼 있다. 미장아빔과 메타 영화 장르에 대한 설명, 찰리와 그의 쌍둥이 동생인 도널드를 통해 나타내는 자아분열 메타포, 할리우드 영화 공식을 비판하면서도 적극 수용해버린 비꼬기 결말 등 갖가지 어렵고 멋진 말이 담긴 리뷰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 엥? 이런저런 변명을 들이밀며 떠오른 아이디어를 내친 뒤 한다는 게 닳고 닳은 20년 전 영화를 가져와 한마디 거드는 거라니. 진짜 같잖다. 그래서, 반대로, 정말 쉬운 이야기를 해 볼 생각이다. 바로 이 영화를 왜 좋아하는지 토해내 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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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카우프만 (니콜라스 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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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올린(메릴 스트립)

 

 

여기에 두 인물이 있다. 첫째- 필자와 마찬가지로 시나리오 제출 기한은 다가오는데 못 해 먹겠다며 징징대는 데다, 원고를 시작하기로 결심하곤 커피를 마시며 쓸지 다 쓴 뒤 보상으로 커피를 마실지에 관해서만 생각하는 영화의 주인공 ‘찰리 카우프만’, 둘째- 논픽션 책 <난초 도둑>의 저자 ‘수잔 올린’이다.

 

찰리는 스스로 ‘뚱뚱하고 못생긴 대머리’라 생각하며 좋아하는 여자에게 잘 해주지 못하고, 성공한 시나리오 작가로 불리지만 차기작 <난초 도둑>의 영화화 각색은 손도 못 대고 있다. 수잔은 안정적인 가정을 꾸린 데다 책도 내고 영화도 제의받은 유명 잡지 기자지만, 인생에 열정이 없어 비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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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 굳어 있는 찰리 카우프만 (니콜라스 케이지), 오 : 해맑게 웃는 도널드 카우프만 (니콜라스 케이지)

 

 

 

찰리 카우프만


 

누구나 매 순간마다 수많은 생각을 한다. 남한테 말 못 할 창피한 감정, 자꾸 신경 쓰이는 사람, 기발한데 막상 실체화하면 망해버리는 아이디어, 때론 불가능한 상상까지도···. 찰리 카우프만은 그런 별의별 생각을 보이스오버로. 들려준다. 마음의 소리가 너무 공감돼서 내 생각을 들킨 것처럼 수치심까지 느껴진다. 그렇게 찰리가 드러내는 가장 큰 욕망은 두 가지. ‘뚱뚱하고 못생긴 대머리’지만 그런 나를 사랑해 줄 연인이 있었으면 하는 욕망, 제안받은 시나리오. 각색을 할리우드 영화 공식에 반대된 내용으로 잘 만들고 싶은 욕망. 사실 이 두 가지는 하나의 배경에서 비롯된 욕망이라 할 수 있는데, 바로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남에게 사랑받기만 원하는 것이다.

 

그런 찰리와 달리, 찰리와 똑같이 생긴 쌍둥이 동생 '도널드 카우프만'은 자기 자신을 무척 사랑하고 긍정적이어서 인기도 많다. 게다가 도널드는 멋진 작품을 써낸 찰리처럼 시나리오 작가가 되기로 하는데, 처음 도전하는 일인 만큼 글쓰기의 기초를 배우기 위해 유명 강사의 강의에 참석하는 등 글쓰기에 대한 적극적인 태도로 순식간에 시나리오 한 편을 완성한다. 찰리와 겉모습만 같지, 완전히 정반대의 인물인 셈이다. 찰리는 "너랑 나는 유전자가 같아. 이보다 외로울 수 있을까?"라며 도널드에게 지닌 자격지심과 부러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극 후반, 도널드를 닮고 싶은 마음을 결국 시인하고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찰리는 결코 도널드가 될 수 없다. 찰리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의 구원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나를 사랑하고, 그렇게 자신감을 되찾으며,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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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 난초와 엮어 인생 철학- 열정을 설파하는 존 라로쉬 (찰리 쿠퍼), 오 : 그런 존을 바라보는 수잔 올린 (메릴 스트립)

 

 

 

수잔 올린


 

사람들은 무언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고 또 거기에 모든 열정을 걸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직접 행동에 옮기는 이는 드물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잔 올린은 “나도 그들처럼 무언가 갈망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건 체질에 안 맞는다. 내가 가진 열정은 단 하나뿐이다. 열정을 품은 느낌을 알고 싶다는 열정”이라 말하는 인물이다.

 

도무지 인생에서 열정이 불타오르지 않는 수잔. 그런 그가 난초 채집을 업으로 삼는 '존 라로쉬'를 취재해 써 내린 논픽션 작품이 <난초 도둑>인데, 난초 채집이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일부 난초 채집가는 희귀한 난초를 채집하다가 익사하기도, 행방불명되기도, 온갖 질병을 견뎌냈지만 난초를 강탈하려는 이에게 살해당하기도 한다. 수잔은 존이 이렇게 위험하다는 이유로 난초 채집에 끌린 것 같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수잔은 그토록 위험한데도 그것을 좇는다는 이유로 존에게 끌린다.

 

실제로 명망 있는 직업을 지니고 사이좋은 남편 및 학식 있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는 수잔과 달리, 존은 인정받는 직장이나 가정에 속하지 않으며 험한 말버릇과 행동으로 남들에게 비웃음을 산다. 어떠한 일로 법정에서 증언하는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수잔의 친구들 역시 그를 안주 삼아 조롱한다. 수잔도 처음엔 존을 단순 취재 거리로 생각하고 그를 놀리는 데에 동참하지만, 이내 존의 “가슴이 시키는 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내 꽃을 찾았다면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요”라는 인생철학을 듣고 오히려 그를 동경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수잔이 늘 원해왔던 열정- 위험을 무릅쓰는 열정이 존의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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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듯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이다.

 

 

 

결핍의 결말


 

모두에겐 결핍이 있다. 결핍은 채워지지 않는 것, 어떻게 해서도 절대 메울 수 없다. 그렇지만 찰리와 수잔은 각자의 결핍 속에서 무언가를, 또 누군가를 갈망하며 결핍을 없앨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의 후반부엔 찰리와 수잔에게 결핍이 없다고 착각하도록 만들어줬던, 도널드와 존은 그들을 떠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다시 체감한 결핍에 의해 불행해졌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영화의 결말은 '행복하다'.

 

결말은 도널드가 불러준 '터틀스'의 <해피 투게더> 속 "우리를 상상해 난 그래 / 밤낮으로 네 생각만 해 /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고 꼭 끌어안아 / 그럼 함께 행복하지" 가사, 도널드의 "내가 사랑받는지 보단 내가 그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지가 중요해"라는 대사를 체화한다.

 

즉, 내게 결핍이 있더라도 그조차 나의 일부임을 인정한다면, 사랑받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것에 열정을 쏟는다면, 그럼 함께 행복하다는 이야기.

 

수잔은 존을 잃은 슬픔 속에서 단 한 번도 가진 적 없다고 여겼던 열정이 내 안에 숨어 있음을 깨닫고 처음부터 시작하려 하며, 찰리는 도널드와 이별한 고통 속에서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상태로 시작해 이윽고 맺어낸 이 결말에 처음 희망을 느낀다.

 

우리 모두에겐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있다. 그건 사랑받지 못할까 봐 드는 두려움일 수도 있고, 여전히 내 전부를 바치고 싶은 대상을 발견하지 못한 괴로움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필사적으로 가리거나 메워야 할 구멍이 아니라, 사랑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존재하는 까만 점- 시작점이다.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 거기서부터 우린 행복해질 수 있다. 이러한 영화의 메시지가 이 영화를 사랑하도록 만드는다.

 

 

 

마치며


 

다시, 새벽 1시 30분이다. 에디터로서 선보이는 첫 이야기니까 잘 써보려고, 정시에 맞춰보려고 했는데. 참,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뿌듯한 마음이 설핏 드는 건 "엔딩이 영화를 만듭니다. 마지막을 잘 쓰면 히트 치죠. 결점과 문제가 있어도 끝만 잘 쓰면 돼요. 엔딩을 내요. 속임수는 쓰지 말고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절대 쓰지 말고요. 캐릭터가 변해야 해요. 스스로 변해야 하죠. 그렇게 하면 괜찮을 겁니다"라는 영화 속 강사의 조언 때문인 듯싶다. 어려운 장치나 거짓말 쓰지 않고, 하려던 말 다 한 데다, 어쨌거나 엔딩을 냈으니까. 덧붙여 첫 원고 덕에 앞으로 더 발전하겠다는 다짐까지 든다는 게.

 

이만하면 괜찮죠?

 

 

[이규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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