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당신의 몸이 말해주는 것들 PUZZ 가을 전시 'AHA: 몸의 이야기' [미술/전시]

글 입력 2022.03.07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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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전시회였다. 꼭 남겨놔야겠다 하던 게 벌써 반년이 지났다. 작년 10월 29일부터 11월 4일까지 진행된 PUZZ 가을 전시 [AHA: 몸의 이야기]. 할로윈 기간이 맞물려 있어서 그런지 포스터도 티켓에도 주황빛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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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 모습. 몸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표현한 것도, 한 주제로 전시를 기획하는 것도 새롭다. 은연중에 문화생활은 소비하는 게 여전히 익숙하다. 문화의 범주는 넓지만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담고,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연기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사람들. 같은 세상이지만 선이라도 그어진 것처럼 부러움의 대상이다. 고민과 노력으로 잘 만들어진 공간에 발을 담그게 된 것만으로도 뿌듯해졌다. 짧은 인터뷰를 준비하고, 아티스트 토크를 해보는 기회도 있고. 설레고 든든한 경험이었다. 작가님 혹은 아티스트라고 불러주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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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글이 매달려 있었다. 긴장을 많이 했는데 안도했다. 혹시나 똑같은 내용이 있진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글이 옆에 있었다. 자유 주제를 좋아하지만 몸이라는 큰 주제만 받으니 고민이 많았다. 대체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몸에 대해 생각할수록 복잡하다. 몸은 유한하다. 늙고 병이 들기도 쉽다. 하지만 몸으로 살아있는 걸 느끼는 건 기쁘다. 자신의 몸에 완전히 만족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동시에 조금만 몸이 좋지 않아도 일상은 무너지고 그때 소중함을 느낀다. 그것도 잠시뿐, 건강해지면 다시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눈에 띈다. 다른 사람에겐 다 괜찮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겐 쉽게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없지 않나. 어렵다 어려워.


글을 줄이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글이 긴 것이 반드시 장점은 아닌 걸 알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모양이다. 글을 쓴 시간보다 1200자로 다듬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다. 이것까지 지워야 하나 서글픈 마음으로 지우고 빼고 바꾼다. 특히나 고민이 많아지는 건 글이 어딘가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의미를 부여할수록 마음만 무거운 법. 이럴 땐 마감이 있는 게 다행이다. 막상 제출하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함께 걸려있던 글은 개인적인 감상을 담아 공유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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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더형 인간


백인경


인체의 70%가 수분이기에 비로소

납득되는 것들이 있어요 가끔

조금만 부딪혀도 금세 곰팡이가 피고 상해버리는 마음이나

서로에게 돌을 던지고 싶어하는 습성 같은 것들


심호흡을 할 때 목구멍 속으로

둥글게 떨리는 파문이 느껴진다면


우리에게는 후천적 진화가 필요합니다

실리카겔을 삼켜대던 어린애처럼

절박한 갈증의 아름다움을

직시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만


어째서인지

점점 목소리가 축축해지는군요

뒷모습이 퉁퉁 부풀어 오르는군요


허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는 날이면

입술은 딱 물어뜯기 좋게 말라 있습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베개가 어디 있겠어요

원래 꿈이란 그런 겁니다

불가피한 무게로

다소간의 불쾌함이 수반되지요


어린애들이 왜 그렇게 울어대겠어요

눈물이 증발하면

뺨이 더욱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바삭한 슬픔이 필요합니다

혓바늘이 무뎌질 때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핥는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바스러지는 연습이

 

 

파우더형 인간. 이분법적으로 이해해 보면 수분과 건조함이 대조되고 있다. 수분, 축축한 목소리, 부풀어 오르는 모습, 눈물. 물을 머금고 있는 모습보다 바삭하고 바스러지는 건조함이 우리에게 나아가야 하는 방향으로 제시된다. 사람들이 마음이 상하는 것도, 우리가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게 바로 수분 때문이라면, 답은 그 반대 방향에 있다. 수분이 날아갈수록 우리의 뺨은 단단해진다. 축축한 슬픔으로 날카로운 혓바늘로 서로를 상처 주기보다 바삭한 슬픔으로 서로를 보듬어 안을 수 있게 된다.


메마른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끼더라도 그게 나쁜 일이 아니라고 말해주니 묘하게 위로가 됐다. 실은 누구보다 바삭한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쉽게 축축해지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힘든 일에 어린애처럼 울었던 날을 지나, 누군가로부터 힘든 상황에서 울지 않은 걸 보고 많이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슬프지 않았던 건 아니었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았던 게, 후천적인 진화의 과정이라면 걷고 있는 이 길이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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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물고 남은 자리에


송민형


할머니는 아이가 놀이터로 도망칠 세라 재빨리 커다란 바늘을 불에 달궜다. 작은 발목이 붙들린 아이는 머리가 깨져라 온 힘을 다해 울었다. 뜨거운 눈물은 구겨진 얼굴을 따라 흘러 미끈하게 혀를 적셨고, 목 놓아 우는소리는 날카롭게 귀를 때렸다. 할머니는 바늘로 피부에 구멍을 낸 다음 딱딱한 엄지로 곪아버린 상처를 꾹꾹 눌렀다. 힘을 주는 대로 걸쭉하고 누런 고름이 쏟아졌다. 그렇게 왼쪽 허벅지의 한 부분은 할머니 손에서 휴지로, 그리고 쓰레기통으로 버려졌고, 이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하지만 그 아무것도 아닌 고름이 나오면서 비운 자리를, 새 살이 다 메꾸지 못한 채, 회복이 끝나버렸다. 살점이 떨어져 움푹 꺼진 부분을 문지르며 아이는 몸에 구멍이 났구나, 생각했다. 이렇게 커다란 구멍이 몸에 있어도 되는 걸까 걱정하면서.


교복이 어색한 중학생은 눈 앞의 탱크보이를 먹고 싶었다. 하필이면 꽁다리 부분이 녹아 물렁해서 이로 뜯다 몇 번 실패했고, 옆자리 친구에게 커터 칼을 빌렸다. 그건 아주 당연하고 일상적인 일이었다. 새끼손가락에 날카로운 커터 칼이 푹 들어가, 붉은 피가 책상 위에 후드득 떨어진 건 일상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제대로 지혈이 안되자 뱃속이 징그럽게 울렁거리더니 벌어진 입에서 와르르 토가 쏟아졌다. 머리는 깨질 듯 어지럽고 코는 시큰했다. 소독약 냄새가 진동하던 정형외과에서 다섯 바늘을 꿰맸다. 딱딱한 초록색 실이 벌어진 살을 단단히 붙들어 맸고 깨끗한 거즈가 손가락을 감쌌다. 그러고는 십 년이 지났지만 때때로 비가 오면 새끼손가락이 쑤시듯 아파온다. 그저 아이스크림을 빨리 먹고 싶었을 뿐인 중학생의 작고 하얀 새끼손가락 끝마디가.


몸이 커지면서 상처는 작아졌다. 의식하고 확인해보지 않으면 거기에 있다는 걸 잊을 만큼 희미하다. 그렇지만 몸을 더듬어 찾을 때마다 언제나 그곳에, 그대로 있다. 비밀스러운 작은 빈 공간처럼, 고양이의 잇자국처럼. 희미해지기만 할 뿐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커다란 몸은 이제 쏟지 못하는 눈물로 두 눈이 피곤하다. 소리 내 울부짖지 못해 목구멍은 말라붙었다. 큰 몸을 꼼꼼히 살피지 못해 어디가 베었는지 모른다. 커다란 몸은 그래서, 자꾸만 바스락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안에도, 목 놓아 울던 어린 아이가 있다. 할머니 손에서 콧물의 여운을 쓱 닦는 아이가. 그러고는 하늘색 젤리 슈즈를 신고 흙 맛 나는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아이가. 팔다리는 가볍게 경쾌하고 상처에는 상큼한 바람이 든다. 이제 자꾸 버스럭 소리를 내는 어른을 찾아야지. 만나면 흠뻑 물을 줘야지.

 

 

상처가 아물더라도 모든 게 예전 같지는 않다. 남은 자리에 흔적을 보거나 통증을 느끼면 여전히 함께 있다는 게 느껴진다. 몸은 그 모든 걸 안고 가야 하는 셈이다. 마지막 문단을 보면 <파우더형 인간>과는 다른 입장이다. <파우더형 인간>에서는 바삭함이 긍정적인 의미였다. <아물고 남은 자리에>에서는 촉촉함이 긍정적인 의미다. 바스락 소리를 내는 건 상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거나 소리 내 울부짖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버스럭 소리는 내는 어른을 찾아 흠뻑 물을 주어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 메마른 어른 안에는 촉촉함을 간직한 아이가 있고 그 모습을 잊지 않고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표현을 보면 그림이 그려진다. 걸쭉하고 누런 고름을 째고, 커터 칼에 새끼손가락이 베어 붉은 피가 후드득 떨어지고, 초록색 실로 꿰맸다니. 탱크보이를 커터 칼로 어떻게 잘못 잘랐을 때 새끼손가락에 커터 칼이 푹 들어갈 수 있을까 상상을 해봤다. 몸에겐 미안하지만 정말 별별 이유로 다친다. 어이없는 이유로 생긴 흉터를 대결해 보자면 나도 제법 밀리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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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기억


이음


나는 차츰 늙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자랄 만큼 다 자라, 더 크지 않는다. 충분한 양의 치아가 잇몸에서 자라고, 젖살이 빠지고, 골격이 잡혀 단단해졌다. 삶의 습관이 굳어 자세로 드러나고, 머리숱이 줄고, 어깨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몸이 많이 야위었다. 운동하고 난 뒤, 체내의 수분이 빠진 몸처럼 피부 결이 푸석하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진행되어 온 탓에 그 과정을 알 수 없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루도 빠짐없이 늙어간다. 시간이 관여하는 일은 대체로 슬프고, 몸도 예외는 아니다. 가끔 영영 젊어질 수 없다는 말은, 마치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뜻처럼 들린다.


그렇게 젊음이 바삐 지나가느라 비행운처럼 남긴 몸의 흔적을 더듬는다. 늙음은 꼭 시간이 몸에 입힌 찰과상 같다. 지금 여기의 1인칭으로 사는 우리로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세월의 자국을 3인칭이 되어서야 비로소 발견한다. 지난해, 나는 너무 불안했고, 그래서 여분의 삶을 사는 사람처럼 잠을 자지 못했고, 몸 구석구석엔 붉은 반점이 열꽃처럼 피고는 했다. 입도 자주 헐었다. 그 통증 탓에, 나는 좀처럼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였다. 그즈음, 사진에서 내가 늘 붕어처럼 입을 벌리고 있던 이유였다. 누군가는 그 사진을 보곤 웃었지만, 당시 내 애인은 웃지 않았다.


내가 한 시절을 몸으로 앓으며 지나왔을 때, 문득 그때 누군가는 이런 나의 몸을 봐왔겠구나 싶어진다. 어쩌면, 당신은 나보다 내 몸을 더 오랜 시간 봤을지도 모를 일. 돌이켜 보면, 내 손에 핀 작은 점과 균형이 맞지 않는 어깨를, 살갗에 배긴 굳은살과 내 몸의 터무니없는 연약함을 먼저 알아차린 건 늘 당신이었다. 평생을, 단 하나의 시점으로 사는 우리는 종종 스스로를 잘 알지 못하고, 그래서 이따금 내 맨몸이 녹음된 목소리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나는 몸에 관한 서로의 추억이 많을수록 애틋한 관계일 거라고 믿는다. 제 몸의 사연을 주저 없이 고백할 수 있는 사이라면 더더욱, 몸에 새겨진 흔적은 대체로 깊게 앓았거나 아팠던 자국일 테고, 그 사정을 털어놓는 건 곧 삶의 한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 당신의 등에, 오른발 뒤꿈치에 난 상처의 사연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웃으며 미간을 좁히는 버릇이 있고, 나는 당신이 울기 전 짓는 표정의 낌새를 알고 있다.

 

 

몸의 늙어가는 과정을 슬픔으로 인식하고 있다. 늙음을 시간이 몸에 입힌 찰과상 같다거나, 영영 젊어질 수 없다는 게 슬픈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 알려준다. 몸이 아파 붉은 반점이 피거나 입이 헐어 벌리고 있었던 때에도 나를 얼마나 아는 사람인지에 따라 평가가 다르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유도 모르고 웃었겠지만 나를 잘 알고 있는 애인은 웃지 않고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몸의 기억>은 내가 당신에게 선사하는 글처럼 느껴졌다. 내 몸을 나보다도 잘 알 수도 있고, 내가 마음 놓고 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글에서 당신이 내 몸의 기억을 갖고 있듯이 나 역시 당신에 대한 기억이 있다. 서로의 몸에 추억이 많을수록 애틋한 사이다. 누구나 평생 자신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고 한다. 기계로 녹음하거나 촬영할 수도 있지만 상대방이 나를 보는 것처럼 볼 수 있게 해주진 않는다. 몸을 기억한다는 건 삶을 이해한다는 것이니 소중할 수밖에. 적어도 나와 당신은 서로의 삶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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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편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작가 이상이 동생에게 쓴 편지 속 구절이다. 그러나 내게 저 문장의 나와 너는 동일하다. 아무도 이해하지 않더라도 나만은 언제나 나의 편인 것을 잊지 말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살아있는 것이 때로 고통이고 최악은 갱신되기 마련이더라도, 가진 게 이 몸 하나뿐이라는 것이 반드시 조촐하다고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변덕스럽다면 몸은 침묵한다. 마음은 순간에 충실하게 일희일비하며 몸을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온갖 고생은 다 하면서도 몸은 뚝배기처럼 별말이 없다. 아프거나 병이 나면 그제서야 무리를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몸은 얄팍한 조바심에 대꾸하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알아차리게 할 뿐이다. 몸이 일일이 답했다면 아무도 잠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이따금 몸이 반응하면 얄궂게 숨기고 싶고 불편한 것투성이다.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아도 꼬르륵 소리가 나고, 억울하거나 화가 나면 느닷없이 눈물이 고인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면 목소리가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린다. 온몸이 찌뿌둥하다 싶으면 영락없이 비가 내린다. 열두 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풀리고, 술을 마시면 혼자서 그 많은 술을 다 마신 것처럼 붉은 홍(紅)익인간이 되어버린다.


그럼에도 미워할 수 없는 건 몸에 시간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영화나 드라마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몸일지도 모른다. 점점 흐릿해지다 기억에서 사라지거나 잊은 줄 알았다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연출. 그리운 향기, 입안 가득 퍼지는 맛, 좋은 걸 보고 들었을 때 소름이 돋았던 그 짧은 순간 하나만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가 이어진다. 몸 구석구석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저 머나먼 가족의 궤적이 두상부터 이목구비, 발목까지 남아있으니 누구든 개성 있는 주인공이 된다.


몸이 걸어온 시간은 고스란히 서사가 된다. 우리는 헤어질 수 없는 운명이다. 가장 잘 알고 있다 생각하지만, 가장 모르는 사이일 수도 있다. 더 알고 싶다면 이끄는 대로 흘러가보면 된다. 숨을 내쉬면 복잡한 생각은 사라지고 어느새 고요해진다. 배가 고프면 밥을 한 술 뜨고, 배가 부르면 이윽고 잠이 온다. 눈을 뜨면 밝은 천장이 보인다. 그렇게 당신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오로지 당신 하나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손끝에 느껴지는 작은 박동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당신의 몸이, 여지없이 당신의 편이라는 증거다.

 


<몸의 기억>에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타인이 당신으로 존재하지만 <당신의 편>엔 나 자신으로서의 당신만 있다. 이상은 여동생에게 나만은 네 편이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막상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건 욕심처럼 느껴졌다. 나조차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내 편은 적어도 나 자신 뿐이라고 썼다. 이건 몸과 마음을 나누었을 때 마음이 몸에게 하는 이야기다. 사는 게 힘들고 이 세상에 가진 게 없더라도 여전히 나에겐 나를 위해 묵묵하게 움직이는 몸이 있다는 응원이자 위로다. 내 편은 늘 여기 있다고. 내 편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잊지 말자고.


몸이 마음과 다르다고 꼭 둔하기만 한 건 아니다. 때때로 민감해서 난처하고 불편한 순간도 많지만, 그래도 이 몸이 싫지 않다. 몸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기억은 감각이나 감정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라, 나와 가족, 사람 전체에 대한 기억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조카를 볼 때마다 유전자의 힘을 느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내 몸을 어떻게 생각하든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는 부분도 있기에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이 몸과 함께한 선택과 시간이 앞으로의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 내 마음과 감정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내 몸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나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쿵쿵거리는 심장소리가 나를 다시 움직이게 한다. 내 몸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걸 후회하게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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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Of course, I do

Except when soft rains fall

And drip from leaves

Then I recall

The thrill of being sheltered in your arm

sOf course, I do

But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I've forgotten you just like I should

Of course, I have

Except to hear your name

Or someone's laugh that is the same

But I've forgotten you just like I should

What a guyWhat a fool am I

To think my breaking heart

Could kid the moon

What's in store

Should I fall once more

No, it's best that I stick to my tune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Of course, I do

Except perhaps in Spring

But I should never think of Spring

For that would surely break my heart in two

What's in store

Should I fall once more

No, it's best that I stick to my tune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Of course, I do

Except perhaps in Spring

But I should never think of Spring

For that would surely break my heart in two


Chet Baker -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마무리는 짧은 인터뷰에서 기억이 나는 질문. 몸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영화나 음악은? 영화는 <빌리 엘리어트>. 빌리가 온몸을 주체할 수없이 춤을 추고 전기가 통하는 기분이라고 했던 그 표정이 기억이 난다. 그가 날아오를 수 있게 일을 하러 탄광 지하로 내려가야 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한다. 음악은 쳇 베이커의 I get along without you very well. 듣다 보면 알겠지만 당신 없이도 잘 지낸다는 말은 순 거짓말이다. 빗소리에 당신의 품이, 당신의 이름 혹은 비슷한 웃음소리에, 아마 당신과 함께 했을 봄에도, 당신이 떠올라서 당신 때문에 잘 지내지 못하는 순간이 참 많았다. 내 몸을 당신이라고 생각해 보면 나는 당신이 없으면 잘 지낼 수 없을 것이다. 늘 말로는 잘 지낸다고 하지만.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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