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유하는 심판자, 20대 여자를 말하다

국승민 外 3인 저 《20대 여자》
글 입력 2022.03.0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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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온갖 기준으로 나뉘는 국민이 수많은 쟁점 앞에 모여 최선의 방향을 의논하는 자리인 만큼 직전까지도 치열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다사다난한 민주주의의 역사를 품은 한국 사회에서 선거가 갖는 의미는 다양하다. 누군가에겐 아무도 뽑기 싫은 것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결국 국민이 견인해 갈 나라의 동행자를 고르는 행위일 수도 있으며, 누군가에겐 세상이 크게 변화되는 일일 수 있다. 국민이 선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투표의 판세도 달라지기 때문에 정치권은 시종 국민의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지 분석하고 그에 맞춰 전략을 세운다. 국민이 어떤 목소리를 내는지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과 후보자가 어떤 목소리를 듣고 그에 응답하는지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그것이 곧 후보의 공약이자, 앞으로 꾸려질 정부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이기 때문이다.

 

작년에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 선거는 이를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특히 20대 남성의 약 70%가 한 후보를 지지한 것은 청년 세대에 비교적 무관심했던 정계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언론은 이를 ‘20대 남성 현상’으로 일컬으며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분석했고 정계는 여·야 할 것 없이 20대 남성을 의식한 행보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모두가 20대 남성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20대 여성 15%가 이례적으로 기타 정당을 뽑은 것 역시 괄목할 만한 결과였다. 여성 혐오의 물결이 정치·사회·문화를 막론하고 물결치던 때, 그럼에도 20대 여성의 상당수가 여느 성별 및 연령대와 확연히 구분되는 목소리를 내며 불거졌다. 20대 여성의 의제는 구체적이지 않다는 일각의 주장과 괴리를 보이는 또렷한 수치였다. 분명히 드러냈으나 마땅한 응답이 돌아오지 않았던 어느 목소리, 이 책은 그 목소리를 포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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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의 출판 프로젝트 《20대 여자》는 이전에 착수한 ‘20대 남자’에 대한 대규모 조사에 이어 진행한 ‘20대 여자’에 대한 웹 조사 결과를 요약하고 분석한 텍스트다. 238개의 촘촘한 질문으로 얻어낸 데이터를 유의미한 통계치로 판단한 끝에, 그것을 기반으로 언론과 정계가 간과한 20대 여성의 목소리를 세세히 파악하여 그들이 양당이 아닌 기타를 택한 이유와 배경을 탐색한다. 영남 대 호남, 민주화 대 산업화의 프레임을 초월한 새로운 기준으로 지형의 변화를 바라보는 이 책은 15%의 수치에 주목하여 20대 여자를 ‘부유하는 심판자’로 정의한다. 특정한 정당이나 후보에 정착하지 않고 방황하지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분명하여 옳지 않은 것을 심판하고자 하는 의지가 확고하다는 의미다. 선거 흐름을 주도하는 적지 않은 정치인이 마치 여성은 유권자가 아니라는 듯이 배제하는 지금도 여성은 투표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책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그들의 정체를 호명하고 가시화하는 시도이자 과정이다.

 

 

 

부유하는 심판자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 20대 여자와 그 바깥을 말한다. 20대 여자의 내부적 특성을 논하는 1부는 또다시 네 개의 장으로 나뉘는데, 각 장의 소제목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저자들이 정의한 20대 여자의 특징을 축약한다. 조사 결과를 거칠게 요약하면 한국의 20대 여자는 스스로 ‘약자는 아니지만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며, ‘부유하는 심판자들’의 역할을 하고, ‘그런 게 페미라면 난 페미’라고 생각하며, 성범죄 위험을 크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어떤 질문에는 예상과 일치하는 결과를 보여주다가도 어떤 질문에는 의외의 응답을 선택하는 이 집단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단정하는 것은 무리다. 이 책은 그보다, 수많은 이질적인 개인으로서 다양한 가치를 주장하면서도 특정한 정치적 대표성과 공감대를 공유하는 20대 여성의 현재 그 자체를 보여주고자 한다.

 

빼곡한 통계들이 공통적으로 암시하는 20대 여자의 가장 큰 특징은, 사회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민감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20대 여자는 사회적 맥락에 위치하는 자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20대 여성의 40%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인식하고, 상당수가 여성 혐오 사건과 더불어 발생한 페미니즘 리부트 흐름에 영향을 받았으며, 사회적 약자를 돕고자 하고, 가난이나 비정규직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개인이 아닌 사회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20대 여자는 전체 연령대별·성별 집단 중 유일하게 ‘사회적 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금지하고 다양성을 우선시하는 세력’을 가장 선호한다. 20대 남자 상당수가 ‘법과 사회 질서를 우선시하는 세력’과 ‘정부 개입의 최소화를 우선시하는 세력’을 가장 선호한 것과 대조하면 차이가 더욱 뚜렷해 보인다. 사회가 개인을 약하게 만드는 구조를 파악하고 있는 20대 여자는 그리하여 자신이 능력이 부족한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만 차별받는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이 정치적 선택으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는다. 20대 여자의 투표율은 높은데, 지지 정당이 정착되지는 않는다. 즉, 부유한다. 자신의 존재를 사회적으로 이해하는 20대 여자는 높은 비율로 정부가 자신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부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낮았다. 정치적 이해와 참여가 적극적이나 자신의 영향력을 인식하는 정치적 효능감은 약한 것이다. 따라서 20대 여자의 의제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정치적 여론 형성 과정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적확한 진단이 아니다. 오히려 일관적이고 구체적인 견해를 다방면에서 뚜렷이 보이고 있지만 언론과 정계가 그것을 여론으로 반영하지 않으며, 이로 인한 반발심과 무력감이 거대 양당을 모두 택하지 않는 움직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는 편이 정확하다.

 

 

 

왜 다르게 들을까


 

왜 ‘20대 남자’가 하나의 현상이 될 때 20대 여자의 견해는 잘 대표되지 않았을까? 정말 20대 남자와 20대 여자가 달라서일까? 책은 20대 여성과 남성을 의도적으로 다르게 인식하고 다르게 반영하는 정계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테면, 온라인에서 시작되어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던 ‘남성 혐오’ 프레임에 관한 여론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오조오억’이라는 단어에 대해 20대 남자의 70%가 혐오 표현이 아니라고 응답하거나 모른다고 답했다. ‘남성 혐오’ 프레임에 대한 의견은 지배적이지 않았다. 문제는 이것이 엄청난 사회 갈등인 것처럼 확대 재생산하는 움직임에 있었다. 혐오와 차별이 걸러지지 않은 커뮤니티의 여론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한 언론과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특정 집단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지지 기반을 결집한 정치권이 논란을 증폭시켰다는 해석이다.

    

김다은 기자는 ‘남성 혐오’ 프레임에 관한 조사가 응답자의 ‘지지 정당’에 따라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냈다는 점과, 원래 페미니즘에 대한 강력한 입장 차이가 없었던 40대 이상에서 ‘남성 혐오' 프레임’에 대한 생각이 큰 격차로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하여 지지자들이 정당의 입장을 뒤따라가고 있다는 해석을 제기한다. 정당의 입장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체화하여 페미니즘에 대한 태도를 후천적으로 학습한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에 관한 20대의 성별 인식 격차가 과장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한울 박사는 조사 과정에서 안티 페미니즘에 반하거나 20대 여성과 비슷한 관점을 공유하는 남성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며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정치 지형에 접근해야 할 필요를 강조한다. 20대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것이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어떻게 굴절하고 있는지에 대한 기민한 인식이 필요하다.

 

 

 

20대 여자 그 바깥


 

젠더가 20대의 정치 성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젠더 그 외연으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젠더에 따른 특징이 다른 영역에서 어떤 선택으로 이어지는지, 다른 집단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관한 담론 역시 필요하다. 책은 2부에서 20대 여성과 20대 여성이 아닌 집단을 나란히 놓고 이들의 사회·정치적 견해를 비교해 본다. 조사 결과,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인식하는 양상이 같은 20대더라도 성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컨대 이 사회가 살 만하다고 느끼는 사회적 신뢰 수준이 낮을수록 20대 남성의 페미니즘 지수는 낮았고 20대 여성은 높았다. 믿지 못할 세상에서 20대 남성은 페미니즘이 자신의 권리를 위축한다고 생각하고, 20대 여성은 세상을 개선할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페미니즘에 부정적인 20대는 사회적 소수자와의 일체감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페미니즘 이외에도 사회와 관계 맺는 방식과 정치적 우선순위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괄목할 만하다. 한국 사회의 정치 지형이 젠더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여러 특성으로 구성되는 정체성 정치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집단을 이루는 개인의 정체성이 다양한 요소에 의해 규정된다는 것은 동시에 그 요소가 각각 다르게 작용할 때 집단의 동질성은 약화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20대 여성이 특정한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결코 완전히 같지 않다고 설명하는 이 책은 20대 여성이 다양한 요소에 의해 분화되기도 한다는 것을 드러낸다. 가령, 소득과 자산 등으로 대표되는 계층이나 학력 등이 높은 수준에 있을수록 20대 여성의 페미니즘 입장은 강해졌다. 결혼 여부도 페미니즘에 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였다. 20대를 포함한 전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혼인 경우 페미니즘 입장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기혼인 경우 약하게 나타났다. 즉, 성별뿐 아니라 계층, 학력, 결혼 여부 등의 차이 역시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 보다 복잡하고 종합적인 맥락이 페미니즘과 20대 여성과 결부되어 있음을 방증하는 조사 결과는 20대 여성을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20대 여성이 완전히 동질적이지 않다는 귀결은 곧 20대 여성에 대한 심층적이고 신중한 정치적 접근이 필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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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20대 여성의 목소리를 확인하고자 조사를 시작했으나 결국 사회 전반의 변화 양상까지 짚어낸다. 20대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서 도외시되는 것에 비해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새로운 이념 지형의 균열’ 속 20대 여성의 표가 계속 부유할지, 혹은 어느 한 곳으로 수렴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물론 책의 저자가 현 정부에 대한 인식 조사와 관련하여 언급했듯, 20대 여성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만큼 전략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원하는 만큼 진보적이지 않더라도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후보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어찌 됐든, 20대 여성은 자신의 한 표가 만드는 변화의 무게를 매우 크게 실감하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유권자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이해하고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랜 기간 철저히 준비된 심판으로부터 아무도 자유로울 수는 없음은 분명하다.

 

 

[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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