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백’이라는 단어 03: 글을 업으로 삼자, 글쓰기가 부끄러워졌다. [사람]

글을 업으로 삼자, 글쓰기가 부끄러워졌다.
글 입력 2022.03.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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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육 개월은 절망의 연속이었다. 새하얀 공백의 메모장을 켜고, 양손을 키보드에 올린 채 멍하니 보낸 시간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어쩌다 쓴 두 줄가량의 글을 쳐다만 보다가 나는 빨간색 닫힘 버튼을 눌렀다.

 

나는 글쓰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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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그동안 너무 쉽게 글을 써온 것 같다. 불현듯 주제가 떠오르면 머릿속으로 그 주제에 대해 떠들었고, 생각이 휘발될까 재빨리 아무 데나 기록했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는 척하지만, 사실 알고 있다. 나는 내 글이 부끄럽다.


글쓰기가 업이 됐다. 주변에는 디자인 전공생밖에 없었으므로, 스스로 발품을 팔고 노력할 수밖에 없는 나에게 ‘글 쓰는 일을 구하는 것’은 일종의 도전이었다. 나는 그동안 쓴 글을 솎아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여지껏 수백 개의 디자인 포트폴리오는 봤지만 에디터 포트폴리오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지만 어느 지점이 지나고는 ‘상식대로’ 움직였다.

 

어찌 됐든 포트폴리오니, 내 글의 일부를 싣고, 입증할 수 있는 성과를 첨부하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저곳의 문을 두들겼다. 취업하는 데 수년이나 걸렸다고 푸념하던 사람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질 무렵 나는 한 IT 스타트업에 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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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과정의 일부

 

 

지원했을 때 짐작했던 것보다 일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정확한 글을 써야 했다. 오류가 발견 되어서는 안되는 글을 빠르게 완성해야 했는데, 그렇게 내가 노트북과 며칠을 씨름하여 써낸 글은 두 번의 체크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사용될 수 있었다.


나는 과거의 내가 어떻게 마흔 편도 넘는 글을 아트인사이트에 기고했는지 궁금해졌다. 사실 나 스스로도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전시되는 글을 써본 경험이 극히 적었기 때문이다.

 

나는 회사에 다닌 이후로, 그전에 쓴 글들을 ‘배설한 것들’이라고 부른다. 내가 소화한 인풋을 ‘아웃풋’으로 생산해낸 산출물이 아니라, 표출 욕구가 격렬하게 반영된 배설물이다. 거의 매일 이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뭘 몰라도 너무 몰라서 그렇게 쓸 수 있었던 거야.

 

글쓰기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쓴 글을 교정 받으며 나는 공부를 시작했다. 기본적인 어법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모인 문단, 글 전체 맥락에 대한 공부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한 문장을 쓰는 게 어려워졌다. 어법이 틀리진 않았는지, 혹시 내가 비문을 쓴 건 아닐지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에 사로잡혀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국어사전 창을 나란히 띄우고 문장에 쓰인 모든 단어를 검색했다. 사전에 표기된 단어의 의미를 확인하고 정확한 형태로 활용했는지 예문을 봤다. 비문을 확인하는 방법을 다 대입해 고치고도 문장을 확신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 모니터를 보며 손톱을 둘러싼 살을 깨물었다.


그래서 한동안 그 어떤 글도 쓰지 않았다. 사실 못 했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연말과 연초에 글을 기고하고자 아트인사이트에 접속한 적이 있다. 로그인을 하고 마이페이지에 들어가서 신규 등록 버튼을 눌러 글쓰기 페이지를 열었다. 섹션을 선택하고 재빠르게 제목을 입력했다.

 

글감이 있었고, 어느 정도 글의 구조도 짠 뒤에 창을 켰기 때문에 나는 내가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결국 글을 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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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즐겁게 글을 쓰고 싶었다. ‘편하게’, ‘쉽게’, ‘가볍게’, ‘지속적으로’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글쓰기 관련 방법론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따라 했다. 나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 방법도 많았지만 나는 조금씩 맥락을 가진 ‘문장들’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러워 감추어 둔 나의 근황을 사실대로 숨김없이 고백했다. ‘하나의 단어를 주제로 글쓰기’도 상당히 오래 하지 않아서, 이제 와 제목에 숫자 3을 붙이는 것도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위해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내가 부끄럽지 않은 글을 쓰고 싶다.

 

 

[김혜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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