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독이란 감옥과도 같다고 그는 생각했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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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 익숙해진 나머지 감정이 결여된 삶에 적응해버린 일러스트레이터 토니 타키타니.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의 빈자리와 늘 악단을 이끌고 재즈 연주 여행을 떠나는 아버지로 인해 어렸을 적부터 혼자인 것이 당연했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인지 자신이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는 분명한 인간임에도 어딘가 기계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별한 가치나 의미를 찾아 나서는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며,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정확히 수행해 내는 것에 삶의 목적을 둔다.
사랑을 통해 외로움을 배우다
그녀는 마치 먼 세계로 날개짓 하는 새 같았다. 특별한 바람을 몸에 걸친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옷이 그녀에게 얹혀 있었다.
- <토니 타키타니> 중
그러던 어느 날, 에이코라는 여성을 사랑하게 된 토니는 고독이라는 감정이 감옥과 다름없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동안 그 감옥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는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토니는 에이코와의 결혼을 통해 처음으로 고독으로부터 벗어난 삶을 살아가게 되지만, 한편으론 감정에 무감각하던 예전과 달리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선사할 수 있는 불안이었다.
에이코를 만나기 전까지 토니는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를 품지 않았다. 혼자라는 것은 마치 토니에게 '옷을 입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였던 에이코의 옷처럼 토니에게 있어서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랑은 그러한 자연스럽고 익숙한 것들에 이질감이 들게 할 정도로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독이라는 필연적 숙명
그들의 결혼 생활에 유일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것은 에이코의 쇼핑 중독이었다.
에이코에게 있어서 옷이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존재이다. 결혼 전부터 월급의 대부분을 옷을 사는 데 써버릴 만큼 옷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엄청났으며, 이는 토니와의 결혼 후에도 지속되었다. 쇼핑을 줄이는 게 어떻겠냐는 토니의 말에 에이코는 옷을 사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고자 산지 얼마 되지 않은 옷들을 반품한다. 하지만 이윽고 옷들에 대한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고 가게로 다시 돌아가던 도중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신호를 기다리던 중에 지금 막 돌려준 코트와 원피스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게 어떤 색이었으며 어떤 모양이었는지, 어떤 감촉이었는지.
- <토니 타키타니> 중
에이코가 수많은 옷들을 사고도 예쁜 옷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그 어떤 옷으로도 끝내 채워지지 않았던 공허함 때문이다. 그녀는 옷을 통해 닿을 수 없는 이상을 끝없이 갈망해왔다. 단 몇 벌의 옷마저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듯한 불온전함을 느끼고 만다. 마치 그것이 삶의 숙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한편 토니는 에이코의 죽음으로 인해 외로움의 실체를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 에이코에게 공허함이 필연적 숙명이었다면, 토니는 고독이라는 필연적 숙명을 짊어지고 있다. 다만 토니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차원의 고독으로부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상실감이다. 여태껏 고독이라는 감정이 그의 삶을 흔든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니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숙명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게 된다.
토니는 에이코가 남긴 옷들을 보며 그녀와 함께 했던 과거의 기억들에 의존한다. 마치 에이코가 자신이 반품했던 옷들에 대한 기억을 곱씹었던 것처럼 토니 또한 다시는 느낄 수 없는 에이코의 따뜻한 숨결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을 안고 그녀의 빈자리를 극복하려 할수록 가슴이 점점 답답해질 뿐이었다. 결국 토니는 에이코의 옷들을 전부 처분하고 옷방을 오래도록 비워둔다. 그로부터 2년 후 토니의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마저 간암으로 사망하고, 토니는 곰팡이로 썩어가는 아버지의 레코드를 중고 레코드 장수에게 판다. 이로써 토니에게 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되었다.
과연 토니의 삶이 철저한 비극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신의 외로움마저 망각한 채 기계처럼 살아가던 시절 토니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사랑을 느끼고, 행복의 소멸에 대한 공포를 경험하고, 처음으로 고독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결국 그 상실감에 무뎌져가는 방식을 택하는 삶의 굴레에서 나는 그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아픈 것을 아프다고 느낄 수 있게 된 그가 드디어 인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기억은 바람에 흩날리는 안개처럼 천천히 그 모습을 바꿨고 모습을 바꿀 때마다 점점 흐려졌다.
- <토니 타키타니> 중
에이코의 텅 빈 옷방에 누워 토니는 자신의 비서로 일하기를 원하던 히사코를 떠올린다. 출근 시 유니폼으로 에이코의 옷들을 입어달라는 토니의 말에 에이코의 옷방에 들어가 그녀의 옷들을 입어보던 히사코는 눈물을 터뜨렸다. 이는 에이코의 옷을 처분한 후 토니에게 남아있는 몇 안 되는 뚜렷한 기억이다. 에이코의 옷들을 입어보며 흐느끼던 히사코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허영 속에 감추어둔 초라한 숙명을 본 것일까.
아무것도 남지 않은 옷방의 모습은 토니가 차마 보지 못했던 에이코의 공허한 삶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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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토니의 삶을 긍정하지도 비관하지도 않는다. 그의 삶은 그저 우리 모두의 삶과 닮아있을 뿐이다. 토니가 그러했듯, 만남을 통해 외로움은 더욱 깊어지고, 외로움을 통해 사랑을 느끼는 모순 투성이의 굴레를 인정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 스스로의 몫인 것이다.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곳이 깊숙하게 뿌리내린 사랑의 감정은 행복의 근원인 동시에 불행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각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묵묵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정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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