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지나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내가 지나온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글 입력 2022.02.22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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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주 2017년으로 돌아가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꿈을 꿨다. 그 해는 내가 첫 번째로 진학했던 대학교를 자퇴하기로 결심하고 그다음을 고민하던 해였다. 당시 외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던 터라 대학을 다시 진학하기 위해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별도의 입시 준비가 필요했다. 나름 알아주는 명문대의 입학시험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최소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고 명문대가 아닌 대학은 그때의 나의 수준에 별도의 추가적인 준비없이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갈 수 있었다.

 

애초에 부모님의 뜻으로 오게 된 유학이었고, 그때의 나는 명문대에 가고 싶다는 욕심도 특별히 공부하고 싶은 전공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퇴로 이미 1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들보다 뒤처졌다는 조바심에 3개월 내로 당장 입학할 수 있는, 그럭저럭 내 수준에 맞는 대학에 진학하여, 큰 문제 없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은 전공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대학생활은 애석하게도 순탄하지 않았다. 내가 쉽게 들어갔던 만큼 남들도 쉽게 들어왔고, 쉽게 자퇴를 했다. 하나 둘 떠나더니 2학년 2학기가 시작하던 때 나는 같은 기수 입학생 중 우리 과에 잔존한 유일한 유학생이 되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전공 공부 역시 잘 맞지 않았다.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고, 그런 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영영 끝나지 않을 지루하고 긴 터널 속에서 혼자 걷고 있는 것 같은 삶이 지속되었다. 돈까지 내면서 이런 끔찍한 곳에서 지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악착같이 살아남아 매 학기 성적 전액 장학금을 따냈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오로지 이곳을 얼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고, 그래서 나에게는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졸업을 했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게 되었다. 남들 다 준비하는 자격증을 하나 둘 모았다. 갓 졸업한 상태의 나는 특별히 써낼 경력이 없었기에 나의 역량과 증명하기 위해서는 내 대학생활을 돌아보아야 했다. 흔히 말하는 ‘스펙’이라고 내보일 수 있는 경험이 없었고, 무언가에 흥미와 열정을 가지고 몰입했던 그 무엇도 없었다. 그저 버티기에 급급해서 무의미하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너무 큰 공백으로 느껴졌다. 아,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였구나.

 

*


후회(後悔).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친다는 뜻.

 

나는 후회를 ‘돌이키기 어려운 과거의 내 행동과 선택에 대한 부족함이나 결함을 깨닫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어떤 행동과 선택을 했던 그 순간으로부터 시간이 흐른 후, 좀 더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원인을 분석하는 과정을 거쳐 이것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비로소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해 종합적으로 성찰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후회는 과거의 나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해졌다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니 후회가 어쩐지 고상한 행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모두가 알 듯 후회는 그리 아름답지 않다. 나는 “내 대학생활이 크게 잘못되었다”라고 인지한 순간부터 우울과 자책의 굴레에 빠져 오랫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때부터 내 인생은 꼬여버린 거야. 다 망쳐버린 거야. 나는 지금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 수 없어. 과거의 선택을 번복하지 않으면 나는 이렇게 주저앉아 영영 초라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처럼 굴었다.

 

잠깐 여기서 처음 부족함과 결함을 인지했던 시점을 다시 떠올려보자. 나는 어떤 기준에서 나의 과거의 선택과 행동이 부족했음을 느꼈는가. 바로 수많은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며,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부각시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을 때였다.

 

우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타인과의 비교에서 인지하게 된다. 삶의 수많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렇지만 나보다 우수한 타인은 앞으로도 우리 앞에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고, 그럴 때마다 매번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져 주눅 들어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슬퍼하고 후회가 비추는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 삶의 많은 아쉬움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나온다는 것을 인지하고 비교 속에 크게 침몰되지 않는 단단한 나를 만들어야 한다. 후회는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던가!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매순간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며 그렇게 점점 우리가 그리는 모습에, 가고자 하는 미래에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지나간 것은 지나 간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아무것도 남지 않은 암흑기라고 여기던 5년간의 대학시절 동안 나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알려주고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이끌어 주신 내 삶의 은사님을 만났고, 그때 읽었던 책들 덕분에 스스로의 다양한 모습을 발견하고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으며,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수많은 외로운 밤들이 모여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을 만들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다는 노랫말처럼 내가 지나온 모든 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누구보다 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나이기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멋지다고, 그리고 우리에겐 무엇이든 해낼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서로에게 말해주자.

 

 

 

[정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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