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현실주의 소설일까요?

마그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를 읽고.
글 입력 2022.02.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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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ndmaid Tale의 작가 Margaret Atwood는 대표적인 페미니즘 작가지만 페미니즘 문학 부류에 속하는 이 소설에서 거창한 페미니즘의 담론을 펼치지는 않는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서 ‘나는 그것을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사회적 현실주의라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했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970년에서 1980년대 초이다. 이 시기에는 ‘성’ 그리고 ‘성 정체성 욕망’과 같은 주제로 개방적인 사회분위기가 형성이 되는 시기이며 이로 인해 분열이 일어나는 시기이기도 한다. 이에 대한 페미니스트의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일부는 이 개방적인 사회분위기가 형성됨에 따라 많은 포르노와 에로영화가 상영화되는 것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았다. 포르노와 에로영화는 여성 착취적인 특징이 있으며, 이는 분명 반드시 여성에게 유리하지 않으며 여성 인권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대중매체에 노출되는 여성착취적인 상업물을 금지해야 하고 엄격하게 통제해야 하며 이것은 남성편향적이며 여성에게 불공정하다는 주장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대중제공은 여성에 대한 폭력이다”임을 외쳤다. 이와 반면에 이런 대중제공을 긍정적이게 바라보는 나머지 페미니스트들은 이를 긍정적이게 바라본다. 오랜 시간동안 ‘성’이라는 주제는 장기간에 걸쳐서 여성에게 부재했으므로, 여성을 통제하고 감시하며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탈피해야함을 주장한다. 사실 이전의 여성인권 역사만 봐도 여성이 ‘성’ 에 대한 주제에서 얼마나 구속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사회 그리고 세계 전체적으로도 여성들의 위치와 역할은 상당히 쇠퇴되어 있었고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대우조차 받기 힘들었다. 가부장적인 사회가 여성들을 억압하고 페미니스트들은 남성과 동등한 힘과 위상을 요구했으며 남성과 같은 위치를 여성들에게 부여하고자 했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그런 시기에 세상에 나온 것이 이“The Handmaid’s Tale”이다. 1985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어 20세기 후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점령한 도시 길리어드에서 살아가는 이 주인공 Offred라는 여성 인물에 의해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된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은 미국의 북동부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미국이 국가로써 처음 출발하게 된 식민지였으며 청교도들의 첫 거주지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역사는 작품의 도시 길리어드와 연결점이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전체주의인 국가 길리어드는 국민 개개인을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해 존재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을 일반적이게 여긴다. 신권국가이기 때문에 이 길리아드 정권은 구약성격을 법으로 삼아 시민들을 통제한다. 개인의 욕망, 특히 여성의 욕망을 거세하며 여성을 아내(Wives), 자녀(Daughters), 시녀(Handmaids), 하녀(Marthas), 가난한 아내(Econowives), 아주머니(Aunts), 미망인(Widows),비여성(Unwomen), 접대부(BunnyClubgirls) 등의 아홉 개 계급으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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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의 계급구조는 모두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정의한 것으로서 이 중 ‘시녀(Handmaid)’는 아내들을 대신하여 아이들을 출산하는 일을 하는 여성들이다. 국민을 통치하는 이 사회 체제에서 시녀 (Handmaid) 계급은 붉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붉은색은 예로부터 생리혈을 의미했다. 즉 가임기 여성을 의미했으며 동시에 원죄를 상징한다. 이 작품의 제목이 ‘The Handmaid’s Tale’인 것과 같이, 주요 주제는 여성을 단순히 출산의 도구로, 통제가 필요한 사물로 인식하는 시녀의 이야기이다. 개인의 영혼과 삶을 담은 그릇이 아닌 후속세대를 출산하는 제품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다는 걸 볼 수 있는 이 길리어드의 가장 큰 사회적인 이슈는 ‘하락하는 출산율로 위기에 봉착한 길리어드에서 여성통제로 인구증가’이다. Hanmaid들은 자신들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아는 바가 없으며 그저 현재를 생존하기 위해 살아간다. 아내 되신 출산을 위한 씨받이가 되는 Handmaid들은 사령관의 집으로 차출되어 그들의 자손을 임신하는 역할을 한다. 주인공 Offred 이름의 의미는 Of Fred이다. 즉, Fred라는 사령관에게 소속되었다는 의미이다. 길리어드의 Handmaid의 이름은 모두 그렇다. 이들의 이름은 고유명사가 아니며 사령관이 바뀌면 또 그 사령관의 이름에 따라 바뀌게 되고, 사령관에게 새로운 Handaid가 배정되면 배정된 Handmaid는 다시 그 이전의 Handmaid의 이름을 물려받게 된다.

 

아주머니(Aunt) 계층이 가장 이 여성들에게 직접적으로 가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들은 길리어드 정권의 여성들을 교육하고 정권의 폭력적인 기치를 실천하기 위해 이용된다. 아버지들과 남성들이 하는 일은 중요하고 고귀하며, 여성들을 교육시키는 사사로운 일은 가치가 떨어지는 일이라 여성인 아주머니 계층에게 일임한다는 논리 때문이다. 악을 행하는 도구로 출발했던 이 계층에 속한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악을 행하는 주체로서 거듭나고 그로써 지위를 공고히하게 된다. 작품 속에서 Aunt 계급의 Lydia라는 인물은 Handmaid들을 훈육하기 위해 하는 말 중에 이런 지문이 있다. “군대에 왔다고 생각해라. 우리 목적으로 보면 너희들의 손발은 필수적인 부위가 아니야. 그 여자들은 출산이 무의미하다고 말했지. (중략) 그 여자들은 게을렀어. 게을러터진 화냥년들이었어. 우리는 다리 둘 달린 자궁에 불과하다.”

 

말의 힘은 대단하다. 사회순응적이며 수동적인 주인공 Offred는 지속적인 언어적 주입으로 인해 자신의 역할은 그저 인구를 증가시키는 도구라는 생각이 각인되고, 결국 자신은 자궁을 둘러싼 고깃덩어리에 불과하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첨예하게 드러나는 여성 억압 체제를 보여주고 가임기 여성을 출산도구로 전락시킨 사회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통해 작가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렇게 다르지 않음을 빗대어 보여준다. 더불어 길리어드 정권 이전 젠더이슈에 무관심했으나 Moira의 어머니의 가시돋힌 직설적인 말들을 해석없이 인용하여 과거 길리어드 정권 이전 존재했던 여성인권 운동가들이 추구하고 쟁취했던 페미니즘의 가치를 되새기는 Offred의 모습은 현재에 도태되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당연하게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닌 과거 페미니스트의 노력과 투쟁에 의해 이룬 것이고 우리도 앞으로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

 

현재 페미니즘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어머니됨은 여성의 발전을 제한하는가 제한하지 않는가?‘이다. 실제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진출되고 이에 따른 많은 여성들이 활보할 수 있는 시장이 넓어지면서 출산을 하는 여성들의 수가 급감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저출산이 여성의 고스펙 탓이라는 내용의 국책연구기관 보고서도, 다수의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미혼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 사업‘에서도 여전히 여성은 출산을 하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 지를 볼 수 있다. 저출산 문제는 인구절벽의 위기가 맞다. 지난 몇 년간 세상이 주목할 만한 한국의 경제발전과는 대조적으로 여성의 역할은 여전히 사회소수적이다.

 

불과 3-4년 전인 2017년, 저출산은 여성의 고스펙 탓으로 돌린 국책연구기관 보고서가 발표되어 큰 논란이 일었고, 같은 해에, 다수의 지자체에서 ‘미혼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 사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비록 저출산 문제는 “인구절벽의 위기”를 맞은 한국 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지만, 임신, 출산, 육아 등은 “여성”의 문제라는 인식도 여전히 만연하다. 미혼 농촌총각 국제결혼 지원사업은 여성인권 침해적이며 성차별과 매매혼을 조장한다는 여성단체들의 비난에 서서히 중단되었으나 불과 몇 년 전 까지도 시행되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국사회는 여성을 성별을 떠난 인간상 자체로 보지 않는단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국가의 초창기 역사에서부터 시작됐다. 1392년부터 1910년까지 이성계가 발전한 조선에 의해 500년간 통치된 한국은 가부장제 질서에 기반을 둔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삼았기 떄문에 여성은 종종 남성 우월적인 사회를 지키기 위한 조력자 쯤으로 여겨졌다. 정부는 여성의 출산과 자녀 양육, 집에서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재혼 제한, 아내와 남편의 법, 그리고 칠거지악(이혼의 7가지 유효한 원인)등의 법을 제정하기까지 했다. 심지어 칠거지악은 남성에게 유리하게 제정되었다. 아내와 남편에 관한 법에는 남편의 허락 없이 여성이 외출해서는 안되며 가까운 친척들과만 연락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이런 조선의 남성우월적인 시각은 모든 여성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자신에 대해 드러낼 수도 없었고, 공공장소에서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외출 시 장옷을 머리 위에 쓰고 가마를 타고다녔다.

 

이런 성차별은 17세기 이후 성리학이 확립됨에 따라서 더욱 악화되어 조선은 더욱 더 남성주의적 사회롤 바뀌었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열등해졌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그리고 사회적 진출은 여성이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결혼생활을 유지하도록 강요받으면서 완전히 차단되었다. 결혼 후 여성에 대한 많은 요구사항들이 뒤따랐고 이런 사회적 관습은 여성이 더욱 사회 활동에 관심을 두지 않게 했다. 결과적으로 이 사회적 현상이 남아 선호 사상으로 이어졌다. 예로부터 출산은 기혼 여성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로 여겨졌기 때문에 아들의 탄생과 그 수는 아내의 지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 지난 40년동안 산업 자본주의를 경험해왔으며 조선시대에 뿌리내린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파괴되지 않고 그 모습만 바꾼 채 유지되어왔다. 산업화가 가져온 핵가족이나 가족의 규모가 줄어든 현대화된 생활조건은 여성의 가정주부로서 해야 할 역할을 감소시키지 않았지만, 주부의 본질적인 역할을 변화시켰다. 남편이 국가 경제분야에서 특권적인 지위를 공고히 하는 동안, 고등 교육을 받은 아내들은 자기계발 보다는 가족 구성원의 사회적 지위와 임금노동과 같은 2차 활동에 더 중점을 둔다. 한국 여성들은 다른 어느 가족 구성원보다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것을 강요받는다.

 

한국의 수출지향적이고 노동 집약적인 산업화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훨씬 빠르게 증가시켰으며 지난 30년동안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 비율은 28%에서 49%로, 노동 인구의 여성 비율은 27%에서 41%로 증가했다. 그러나 일자리를 가진 여성의 수가 적고, 여성 고위 간부 및 이사회의 비율이 낮기 때문에 남녀 연봉 평균 격차는 클 수 밖에 없다. 한국의 남녀 월급 격차는 37%에 이르렀고 다른 OCED 국가 중에서 최고를 차지했다. 이 현상은 유리 천장, 즉 여성, 장애인, 노인 및 성 소수자를 포함한 소수집단이 경험할 수 있는 유리 천장 또는 구조적 억압으로 설명될 수 있다.

 

늘 명절마다 집안의 어른들은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아이는 언제쯤 낳을 거냐라고 물어온다. 혼자 사는 여성들에게는 가부장제 사회는 오늘도 협박한다. 가난하고 외로울 것이라고. 늙으면 누군가를 만날 기회가 완전히 사라질 것이며 어쩌면 고독사할지도 모른다고. 결혼을 한 여성들에게는 남편의 복을 여성 행복의 최우선 가치로 두기도 한다. 비혼을 외치는 여성들에게 “그러는 애들이 더 일찍 가더라”라며 키득거리는 사람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자기 발전 제한을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의 관점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여성이 누릴 수 있는 선택의 권리가 아닌 이 사회가 과하게 어머니됨을 강요하여 여성이 개인으로서 스스로 정의내리고 규정하는 것에 큰 제약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이 여성의 생각과 의식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닌, 그들이 느끼는 문제와 비판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고 집단화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남성의 의식은 여성이 한 것처럼 빠르게 변하지 않았다. 유교의 가부장제에 의해 야기된 성별 가치와 성 역할은 여전히 전통적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의 성인지 사이의 격차로 인해 발생하는 성차별은 사회적 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다. 더불어 어머니됨이 여성 개인의 자기발전을 제한한다는 강한 주장을 계속해서 펼친다면,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피해를 준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될 수 있다.

 

*

 

The Handmaid's Tale에서 Offred는 불특후세를 위하여 자신을 둘러싼 역사현장을 30개의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해놓았고, 이 소설은 우리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이 비밀스러운 기록을 전한다. 우리의 시대는 이러하였고, 앞으로 너희 세대는 어떻게 할 것이냐. 충만한 미래를 약속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범한 일상과 자유는 결코 당연히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Offred의 독백 나레이션은 지난 일을 담담히 회상하는 어조로 줄곧 이어진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사회 현실적인 작품에서 결론적으로 이 한국사회에서 페미니즘은 사회개혁과 민족주의의 틀 안에 있음을 시사한다. 남녀평등 문화 확산은 한국의 페미니즘 민족주의의 탁월한 성격을 띄고 국가 발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미래에 전국적인 페미니즘이 가능할지 확신할 수가 없다. 미래사회는 국가 간 경계를 갖지 않을 것이므로, 서로의 차이점과 다양성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받아들여야만 한다. 따라서 한국의 페미니즘도 민족주의의 틀을 뛰어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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