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의 (토해내는) 글쓰기

9년 간 아무에게도 읽힐 수 없는 글을 써오며
글 입력 2022.02.22 14:4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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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써왔다. 꽤 자주, 많이. 주로 나의 네이버 블로그에 오직 나만 볼 수 있는 비공개 설정으로 글을 썼다. 작성된 비공개 글만 자그마치 600개. 가장 처음으로 작성된 비공개 글은 내가 중학교 2학년 시절이던 2013년 3월 24일에 작성된 글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약 9년 동안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는 글을 '토해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그 글들을 다시 들춰봤다.

 

'토해내는 글쓰기'. 그렇다, 나는 글을 '토해내'왔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감정 쓰레기통에 한가득 토해내는 것이었다. 많은 이들의 일기장 속이 그렇듯이, 나는 힘들거나 고민이 될 때 늘 글쓰기라는 가장 빠르고 간편한 도피처로 향했다. 그렇게 타인에게는 늘어놓지 못할 생각과 감정과 고민들이 집합된 글자들을 마구 토해내다 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창한 카타르시스 같은 것들이 온몸을 휘감기도 했다. 카타르시스. 즉, 감정의 정화. 그가 말했듯, '인간의 영혼이 그 자신의 과도한 열정을 배설하는 것'이 카타르시스라면, 나는 그것을 느낀 것임에 틀림없다.

 

토해내는 글쓰기는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부모님이 노트북을 사주신 기점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뜨거웠던 온라인 동영상 강의 열풍으로 인해 나는 용량이 작지만 꽤 훌륭한 기능의 노트북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속에 흑염룡이 몰아치는 질풍노도의 중학생이었던 나는 수업 쉬는 시간이나 밤에 자기 전 글을 남기곤 했다.

 

주로 한없이 우울한 글들이었다. 친구랑 사이가 틀어지거나, 가족이랑 말다툼이 있을 때면, 나는 그게 전부인 양 깊은 절망감과 슬픔에 빠져 헤엄쳐 나오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많은 자책과 비관들을 쏟아붓는 글쓰기를 했다. 최근에 그 글들을 다시 읽어보려 들춰봤다가 우울함이 전달되어 괜히 암울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섬찟해질 정도로 우울하고 극단적인 글들이었다. 무작정 우울함을 토해내서, 그 당시 무엇에 그토록 절망적이었는지 알 수 없는 글도 많았다. 문맥이나 맞춤법도 엉망.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알아볼 수 없는 글도 허다했다. 어찌 됐건,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를 속상하게 했던 그 일들은 정말 별거 아니었다. 문득 내가 과거보다 많이 성숙해졌다는 뿌듯함과 함께,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내가 봤을 때 얼마나 어리고 극단적일지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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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3일 23시 47분에 저장한 글 (당시 중학교 3학년) 中 일부

 

 

마구 우울함을 뿜어대는 글들 외에도, 나는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 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것이란 무엇인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방법 같은 것이 애초에 존재하는지, 아니, 그전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지 고민하는 글들도 있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면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오는 글들이었고 역시 내가 쓴 글이 맞구나, 싶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류의 고민들을 이어오며 학교 도서관에서 심리학이나 인류학 도서들을 찾아 읽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심리학 도서를 읽으며 우습게도 나 스스로 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흥미로운데, 묘하게 불쾌한 것이다. 내가 그토록 밤을 지새우며 했던 고민들이 특별한 것이 아니구나, 남들도 다 하는구나 싶은 안정감과 함께, 나는 남다른 사람일 거라던 내면의 중이병스러운 흑염룡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알 수 없는 작아짐을 경험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관련된 글들도 많았다. 오늘의 나는 예술대학교를 막 졸업한 시점이지만, 중고등학생 당시에 나는 예술을 전공하게 되기까지 크고 작은 고민들이 많았다. 나에게 예술적 재능이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예대 입시와 학업 사이의 비중에 대한 고민, 그리고 예술은 그저 취미로 두라는 주변 어른들의 조언이 한데 뒤엉켜 끊임없이 물음표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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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16일 22시 25분에 저장한 글 (당시 고등학교 2학년) 中 일부

(+ 맞춤법 오류가 좀 있다.)

 

 

문득 그런 상상이 들었다. 흔한 타임랩스 영화들처럼, 막 예대를 졸업한 내가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과거에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넬 수 있을까. 사실 무언가의 조언이나 미래적인 암시를 주고 싶진 않다. 그때 치열하게 고민했던 내가 있었기에, 지금 더 단단한 내가 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아주 조금은 덜 고민하고, 덜 힘들걸, 싶다.

 

나의 토해내는 글쓰기에도 나름대로의 규칙은 있다. 작성한 글을 다시 다듬지 않는 것이다. 토해내는 글쓰기는 일반적인 글쓰기처럼 글을 '잘' 써서 누군가에게 '잘' 읽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구태여 다듬지 않는다. 토해내는 글쓰기를 하면서 글을 다듬게 될 경우, 내가 오롯이 가진 감정의 생동감과 진솔함이 떨어진다고 느꼈다. 그냥 나의 마음이 시키는 대로 와다다다다 키보드를 마구 두드리며, 한 번 작성하면 다시 지우지 않는 글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누군가는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을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어떤 가치를 지녔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게는 평생을 함께한 허울 없는 단짝 친구 그 이상의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으니, 나의 정서 안정과 취미 생활로써 가치가 훌륭하다고 볼 수 있겠다. 특히 어느 심리학 논문에서는 실패와 같은 부정적인 사건은 생각하기보다 쓰거나 말하기가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성공과 같은 긍정적인 사건은 생각하기가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킨다고 밝히기도 했다.* 우울과 비관을 마구 토해내는 나의 글쓰기가 자랑스러워지는 꽤나 믿음직스러운 설득이 탄생했다.

 

다만, 훗날 가능하다면 과거에 썼던 글을 잘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보고 싶다. 오늘의 내가 과거의 글들에 얽매어서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 접한 배우 한소희의 인터뷰에 꽤나 큰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한소희는 본인의 일기장에 대해서 소개하며 "일기장은 감정을 쏟아내는 공간이라 감정을 비우고 싶어 그냥 버린다. 다 찢어서 못 보게 한다. 모으지는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간지 작살. 나는 일기장이 아니라 블로그라는 온라인 환경 속에서 글을 써왔기에, 물리적으로 그것들을 비워내거나 버려낼 필요성을 느끼진 못 했던 것 같다. 훗날에는 지난날의 삶의 지문들이 무수히 찍혀있는 나의 글들을 주저 없이 흘려보내고 비워내는, 그리고 다른 무언가로 채워나갈 수 있는 나로 거듭나고 싶다.

 

*

 

오늘도 나는 비공개 글로 나만 읽힐 수 있는 토해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일주일 전쯤에도 작성했고, 바로 엊그제도 작성했다. 막 대학을 졸업해서 다가오는 조급함과 막연함이 담긴 글이었다. 걱정에도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나는 무조건 A+ 등급으로 석차 수석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게 나인 걸 어찌하리.

 

그러나 오늘의 나는 힘들거나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은 절망감을 느낄 때, 과거의 나를 떠올려본다. 열다섯 살의, 열아홉 살의, 그리고 스물두 살의 그 어린 소녀를 말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텨가며 정말 '잘' 살아왔던 그 아이. 그 아이가 너무나도 대견하고 또 새삼 고마워서, 오늘도 나는 이렇게 과거에 토해냈던 글들을 복기하며 용기와 긍정을 얻는다.

 

끝으로, 읽던 중 스크롤을 쉬이 내릴 수 없었던 과거의 글을 소개한다. 2016년 10월, 당시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에 토해냈던 글이다. 꾹꾹 눌러 담은 그날의 당부들을 마음 깊이 간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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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1일 21시 27분에 저장한 글 (당시 고등학교 2학년) 中 일부

(+ 맞춤법 오류가 좀 있다.)



*

논문 《The Costs and Benefits of Writing, Talking,

and Thinking About Life's Triumphs and Defeats》

(2006,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참고

**

유튜브 영상 '배우 한소희의 최애 립스틱부터 다이어리까지! 가방 속 최애 아이템은?'

한소희 IN MY BAG |얼루어코리아 Allure Korea'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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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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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ㅈㅎㄱ
    • 글을 토한다는 표현은 시원하게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애잔하게 느껴지네요 :(
      글 잘 읽었습니다. 자주 업로드 해주세요~
    • 1 0
  •  
  • 생각
    • 어린시절부터 생각이 빛나셨네요.  생각의 성장이 멈추지 않으시길~~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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