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을 실험하는 온실

Nomad art project의 대림동 전시<thermal>을 다녀와서
글 입력 2022.02.18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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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p(2019~)는 Nomad art project의 줄임말로 유목하며 문화예술을 만드는 단체이다. Thermal 전시는 Nap의 2번째 지역 프로젝트다. 대림동 빈 상가를 임대하여 1주일 간 진행된다. 1번째 지역 프로젝트는 청계천 종합상가길에 위치한 황학동 가구 및 주방거리에서 열렸다. Nap가 지역을 찾아 떠나 전시를 여는 목적은 만인과 예술의 만남이다. 만인과 예술의 접점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갤러리나 화이트큐브를 벗어난다. 이러한 방식은 2가지 특이점을 획득한다. 평소 예술에 관심이 없는 관람객에게 초점을 맞춘다. 또 지역과 특색에 머물면서 일어난 사건과 그에 대한 감상을 반영한다.

 

유목하는 전시는 다른말로 정체성이 뒤집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의 중심에 작품을 통해서 말하는 화자가 밀려나기 때문이다. Nap는 전시의 중심축을 그 지역, 그 관객, 예술과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둔다. 뒤집힌 정체성은 기존에 알고 있는 인식 체계에서 벗어나는 질문이 함께한다. 알고 있는 것이 진짜인가라는 되물음의 반복이 곧 본연의 모습을 드러낸다.

 

대림동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거주민은 Thermal 전시 작품의 일부가 된다. 대림동은 대표적인 조선족 밀집 지역이다. 조선족은 일제를 피해 20세기 초반에 중국으로 건너갔다. 한민족은 일제와 분단을 겪으며 나름의 민족성을 구축했다. 1919년 3∙1운동은 단군의 후손으로서 오랜 세월동안 자주권을 유지해온 민족이라는 점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였다. 혈연에 바탕을 둔 단일민족설은 1945년 해방이후 오랫동안 국가를 스스로 유지해왔다는 점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언급되었다. 구체적인 역사와 문화를 통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규정하는 시각은 전체를 대표하도록 만들었다. 한민족의 땅에 이주한 사람들은 개개인의 면모보다는 한민족과 다르다는 틀에 쉽게 끼워지곤 한다.

 

 

[크기변환]thermal전시공간.jpg

 

 

다르다고 받아들인 인식의 근거는 이성적 판단, 감각경험, 직관이다. 이 3가지 능력은 조선족과 한민족의 차이를 발견하고 서로 같지 않은 관계에 놓인다는 것을 연상한다. 유목하는 Nap가 Thermal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다름과 관계 그 자체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맹목적으로 차별하고 혐오하지도 않고, 불쌍히 여기거나 연민하지도 않는다. 인식의 관점으로 누구나 가지고 있는 서사를 불러온다. 관계의 의미망에서 기억되는 다름의 역사는 보편성을 획득한다. 공통된 문학을 체험하는 여정은 관계지어지는 사람과 본인의 유한함이 연합되는 일이다. Thermal은 온실이라는 장치를 매개로 관객에게 올라설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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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mal의 온실은 13평 넓이의 방 전체를 가로 3등분하여 구조를 활용한다. 성분이 상이한 천으로 구분지어진 각각 다른 3개의 공간이 모두 작품의 맥락을 만든다. 2개의 경계선은 서로 다른 화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첫번째 경계의 비닐은 온실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투명하다. 온실 내부에서 만나는 두번째 경계의 비닐은 그 너머를 보지 못하도록 불투명하다. 대신 미지의 마지막 공간에서 열을 재고 있는 열화상 카메라가 있다. 빔으로 전달하는 왜곡된 거울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다시 온실에서 나가면 사람의 열을 재현하던 영상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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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감각, 직관을 통해 온실에서 관찰했던 기억은 보여지는 상에 혼란을 야기한다.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재현된 자아는 피부, 인종, 성별, 국적, 민족 등 문화적 조건을 나타내주는 모습이 어느 하나 반영되어 있지 않다. 문제는 측정되고 있는 온도와 열화면을 통해 나타난 울긋불긋한 형상이다. 낯선 형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정당화에서 출발한다. 인식의 근거가 되는 인간의 능력들은 점점 결점을 드러낸다. 왜곡된 상에서는 자신을 발견하려고 애를 쓴다. 재현되지 않은 화면에서는 자아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못한다. 입장과 퇴장의 연속 중에 행동 단계가 쌓인다. 결국 믿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정합하는 정밀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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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과 정착속에서 벌어지는 자기정체성에 대한 성찰은 내면과 외부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다. 이성과 감각과 직관을 사용하지 않고서는 그 능력의 결함을 마주할 수 없다. 무엇이든 보여지는 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할 때 비로소 기존에 가지고 있는 나의 한계를 직면한다. 온실에서 측정되는 온도, 그리고 최후에 얻어지는 결과론적 기억은 당연하게도 이전 단계의 바탕에서 만들어진다. 인식적 측면에서 정밀성을 높일 수 있는 단계들을 통해 가장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다. 대림동의 온실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온도를 서사의 핵심 열쇠로 삼고있다. 참여하는 모두가 그 문을 열어볼 수 있는 인식의 실험실이다.


 

[전승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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