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영화]

소공녀 (Microhabitat)
글 입력 2022.02.1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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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를 바라보는 영화 밖의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공감도, 이해도 안 된다', '위안을 얻었고, 응원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 속의 시선도 그렇게 나뉜다.

'한심하다', '유니크하다' 

  

 

여기, 그 '미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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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대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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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위스키, 담배, 집, 약, 데이트에 들어가는 비용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집이라고 대답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소는 예상하기 쉬운 정형화된 인물은 아니다. 일당 4만 5천 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사 도우미인 그녀가, 선택지를 앞에 두고 고민한 지 채 1분도 되지 않아 집을 제외했으므로.

 

월세방을 버리고 나온 그녀는 대학 시절 함께 밴드 활동을 했던 친구들을 한 명씩 찾아간다. 점심시간에 링거를 맞으며 일하는 대기업 직장인 문영, 고시생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며 가사 노동을 도맡아 하는 현정, 8개월 만의 이혼과 20년 동안 갚아야 하는 아파트 대출금으로 우울증에 걸린 대용, 효도와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이상하고 무례하게 청혼하는 록이, 호화로운 집에서 살지만 남편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정미. 그들은 미소에게 눈으로, 입으로 말한다. 너, 그대로네. 여전하다.

 

정말 그녀 빼고 모든 게, 많이 변했다. 밴드를 사랑했고, 술과 담배도 사랑했으며, 자유분방하고 뜨거웠던, 이제는 이 모든 설명이 과거형이 된 대학 친구들. 새해가 되고 인상된 담배, 위스키, 집값. 그리고 그의 남자친구까지.


 

"이제 만화 그만두려고."

"왜?"

"해볼 만큼 해본 것 같아서. 이제 좀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어서."

"사람답게 사는 게 뭔데?"

"알잖아, 그렇고 그런 것들. 남들 다 하고 사는 것들 우리도 해보고 싶어서."

"난 이대로 좋은데, 지금. 나는..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

그게 내 유일한 안식처야." 

 

 

그림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발령을 자처한 한솔. 그는 학자금대출을 갚기 위해, 미소와 같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한다. 그런 그의 선택은, 미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신이 되었다. 결국 너도 변해가는 거냐고, 너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지는 거냐고, 그녀가 눈으로 묻는 듯했다.

 

변해가는 게 맞는 것일까, 변하지 않는 게 맞는 것일까.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걸까. 시대에 맞춰서, 사회에 맞춰서, 사람들에 맞춰서 나를 바꾸면 사람답게 살 수 있나. 아니,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게 뭐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내 머릿속은 시끄러웠다. 잠잠해지려고 하면 새로운 질문이 생겨났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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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담뱃값이 많이 올랐던데. 

집이 없을 정도로 돈이 없으면, 나 같으면 독하게 끊었겠다." 

"알잖아, 나 술 담배 사랑하는 거."

"아이고.. 그 사랑 참.. 염치없다, 야. 

나 그냥 솔직하게 말할게. 나는 네가 염치가 없다고 생각해.

네가 제일 좋아하는 게 술 담배라는 것도, 솔직히 진짜 한심하고.

그것 때문에 집도 하나 못 구해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지내면서,

그런 것까지 다 이해해주길 바라는 네가 뭔가 좀 잘못됐다는 생각 안 드니?

이거, 보증금에 보태서 빨리 방 구해라.

 그리고 내가 본의 아니게 폭력적이었다면, 그건 사과할게."

 

 

미소는 그대로인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달라졌다. 함께 음악을 했던, 함께 술 담배를 즐겨 하던 문영이 말한다. 너가 스탠다드는 아니잖아. 또 정미가 말한다. 너 정말 염치없고, 한심하고, 잘못됐다고.

  

그들의 말에 나도 미소처럼 상처받았다. 그리고 나 역시, 미소에게 상처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위스키와 담배 대신 집을 포기할 때,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않나' 생각했고,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을 하는 거라는 말에 '현실이 동화는 아닌데..' 생각했다. 집에 이어 약도 포기한 채 백발이 된 그녀가 조금은 한심했던 것도 같다. 본의 아니게 폭력적이었다면 사과한다던 정미와 내가 다른 게 뭘까.

 

가사 도우미인 미소에게 집 주인인 민지는 말한다. "언니 진짜 유니크해." 누군가에게 한심한 그녀가 누군가에게는 유니크하다. 그래, 유니크. 우리는 다수와 다르게 독특하고, 자신만의 고유한 무언가가 있는 사람을 보고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고 말하곤 한다.

 

미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이렇다. 한심하거나, 유니크하거나. 혹은 그사이 어디쯤이거나.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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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밴드로 뭉쳐있던 그들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문영대로, 현정대로, 대용대로, 록이대로, 정미대로, 각자의 삶을 각자의 방식대로 살면서. 이전보다는 조금 더 밝은 모습으로, 서로 장난도 치고 웃기도 하면서. 그리고 연락이 닿지 않는 미소를 궁금해하고 그녀를 회상하면서.

 

미소는 약을 포기하고 백발을 얻었고, 여전히 집은 없지만 위스키와 담배라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빚 없이 사는 게 삶의 목표라는 확고한 신념을, 그리고 사랑하는 것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켜내며 살아간다.

 

집이 있는 그들과 집이 없는 미소. 사회적 통념에 가까운 그들과 그것과 거리가 먼 미소. 누가 더 행복한가, 누가 더 사람답게 살고 있는가, 누가 더 옳은가, 가려내고 셈하는 것이 무용하다는 생각을 한다. 집의 유무가, 다수의 기준이 그런 것들을 전부 결정하는 척도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면서, 어쩔 때는 조금 불행하면서, 때로는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하면서, 외로움도 느끼면서, 살아가니까. 내가 이 영화 속 인물 모두에게서 이 모든 모습을 보았던 것처럼 말이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거나 꺼리는 것이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이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달라는 의미,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세요.' 영화의 끝을 알리는 엔딩 크레딧을 보며 든 생각이다. 누구든 잘못되지 않았다. 누구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주류에 속하지 않아도 괜찮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정답은 없고,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이 아니기에, 영화 속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단지 삶을 제 나름의 방식대로, 개인의 취향에 따라 살아가는 이들만 있을 뿐이다.


 

담배, 위스키, 그리고 한솔이 너만 있으면 돼.

난 갈 데가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집은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여러분은 미소를, 그녀의 삶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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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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