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시인과 사진가의 사랑 - 영원히 사울 레이터

자세히 바라보는 것, 오래도록 바라본다는 것
글 입력 2022.02.0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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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울레이터_표1.jpg

 

 

I see this world simply. It is a source of endless delight.

 

I did things because I liked doing it.

When I'm asked : Why did you do certain things?

Because I liked it!

 

- Forever Saul Leiter 中

 

 

책을 펼치니 몇 개의 글귀, 그리고 50년대의 미국이 펼쳐진다. 뉴욕이다. 우연히 튼 유튜브의 재즈 플레이리스트 8분 24초, 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가 흘러나온다. 뭉클한 선율 위로 흑백, 혹은 톤 다운된 뉴욕 거리를 경쾌하게 거니는 상상. 시선은 통통 튀는 박자감으로 사진 숲을 지난다.

 

 

책을 읽으면서 틀어둔 플레이리스트도 같이 가져와 봤다.

사진은 프랭크 시나트라

 

 

특별할 게 없는 사진들이다. 눈을 잡아끌 것 없는, 이쁠 것 하나 없는 사진들. 사진은 잘 몰라도, 피사체가 어쩌고, 앵글이 어쩌구 하는 것들이 잘 두드러지지 않는다. 심지어는 무성의하게까지 느껴지는 광경들. 그러나 반복되는 이 거리를 보고 있자 하니, 작가의 거리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기 시작한다. 그러자 잊고 있던 유명 시 하나가 떠오른다.


 

풀꽃 1 /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지혜, 2015)

 

 

막동리 소묘 · 172 / 나태주

   - 부제 :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 나태주, 「막동리 소묘」 (지혜, 2019)

 

 

그것은 사랑의 한 모습. 도취된 사랑이 아닌, 온유하게 품어 있는 사랑. 내 안에서 그려지는 오랜 사랑이자 오랠 사랑의 비유이다. 거리를 정교하게 탐색하지도, 꼼꼼하게 담아내지도 않지만, 지긋이 바라보는 것. 그의 눈에는 이 거리가 어떻게 비치고 있을지를 상상해보기 시작한다. 자세히 오래도록 바라본, 드디어 사랑스러운 거리.

 

거리는 특별할 게 없는 곳이다. 그것은 과정이다. 종착점일 수 없는 것, 때로 거리 위에서 즐겁고, 거리가 아름답게 보인다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멈춰있을 수 없다. 도착할 수 없다. 거리의 사진은 거리에 망연히 멈춰 서기를 두려워하는 나 대신에, 거리를 멈춰두었다. 가만히 오래 보라고. 사진이 어쩜 그런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순간을 본뜬 후, 가만히 오래 보는 것.

 

 

I happen to believe in the beauty of simple things.

I believe that the most uninteresting thing can be very interesting

  

- Forever Saul Leiter 中

 

 

나태주씨의 시가 의식에 떠오른 후로부터, 그에게서 시인의 냄새를 맡는다. 시인을 정의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는 시인을 두고 세상을 가장 면밀히 관찰하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보잘것없는 것들의 내면까지 깊이깊이 들여다보는 관찰자라고.

 

그리고 마침내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면, 그것을 표현하거나 노래해 보는 것이 시가 된다고도 누군가 말했다. 고로 그 아름다움이 객관적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신중한 관찰이며, 그 끝의 나지막이 뱉는 숨결 같은 것이기 때문에.

 

 

When I look at certain things,

I find them attractive or interesting or beautiful, and I take pictures.

Sometimes they're good, sometimes they're not so good…

 

- Forever Saul Leiter 中

 

 

사진들은 전혀 특별하지 않다. 내 눈을 끌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억지로 시간을 들여,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겠노라 집착하지도 않겠다. 작가 자신이 애초에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그렇게 부러 들여다보려 하는 것은 다 소용없는 일일 테다.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심장의 속도를 늦추고자 낮은 템포의 단음계 음악을 부러 찾아 듣지 않았다. 음악은 Benny Goodman의 'Sing Sing Sing'. 경쾌한 비트를 따라 책장을 넘긴다. 이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사진들도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럽겠지만, 부러 찾지 않겠다.

 

나는 그저, 그가 사물을 깊이 사랑한 방식과 관찰한 경과를 바라볼 뿐이다. 심각함에 빠지지 않고서, 스윙 비트에 맞추어 축제의 가장자리를 취하여 돌듯이.

 

 

I have avoided profound explanations of what I do.

 

I think that mysterious things happen in familiar places.

We don’t always need to run to the other end of the world.

 

- Forever Saul Leiter 中

 

 

간밤 눈이 왔다. 설에 온 눈이라, 나의 사는 곳은 고지대라 눈높이에서 비둘기가 참 많이 졸곤 하는데 오늘은 그 시끄러운 횃질이 들리지 않아 괜히 그들이 걱정도 되더라. 아마 그였다면, 바로 셔터를 눌렀으리라. 보잘것없는 나의 동네, 그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치었을까? 소박하고 보잘것없는 것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그의 눈이라면, 그런 눈 위로 이 반복되는 세상은 어떻게 비칠까.

 

언젠가는 그런 생각도 해보았다. 어디까지나 이론과 공상이지만, 만물을 새로이 바라볼 수 있다면, 작은 것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면, 세상은 동그마한 환희로 내게 다가오지 않을까 하고. 멀리서 찾지 않아도 누릴 수 있는 아름다움. 나누진 못하더라도, 즐길 수 있는 작은 아름다움들. 그것을 포착하는 이의 눈은 얼마만큼 세심하거나, 따뜻하거나 해야 할지에 대해 궁금도 해보았더랬다.

 

말하자면, 아직 해가 채 뜨기 전의 보광동 버스 정류장과 눈이 덜 녹아 질척이는 시궁창, 새들이 섣부르게 내려앉아 보려다 놀라 달아난 전깃줄 아래로, 흩날리는 한 줌의 눈가루들과 설설 기어가는 아침 승용차들의 조심스러운 홍조와 출근의 그 머나먼 길을 건너와 한적한 용인에서 맞는 아침 해의 힘참과 그 앞에 콘트라-스트되는 입김과 두루미, 왜가리, 돌로 된 징검다리, 그 위로 고개 들면 드디어 보이는 멀-리 나의 회사. 나의 고난, 나의 땀, 나의 무대이자, 나의 걱정, 내 미래이자 지금이…

 

이런 것들에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발견하는 것도 발명하는 것도 아니,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고

이미 거기 느끼고 있는 것.

그것은 정말이지 먼 경지일 것이다.

 

 

We live in a world full of expectations, 

and if you have the courage you ignore the expectations. 

And you can look forward to trouble.

 

I don't see why you can't be good at something 

without taking yourself so seriously.

 

- Forever Saul Leiter 中

 

 

그의 사진들 위로, 그가 살았던 나날이 멋대로 펼쳐진다. 말하자면 우리네 일상과 비슷한 모습, 이런 사진을 찍어서 무엇하니? 수입은 있니? 하는 질문들과 이것은 어떤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니? 이것은 어떤 예술적 가치를 지니니? 하는 질문들. 그러나 왠지 서글프지 않다.

 

작가의 말들 속에 반복되고 있는 삶에 대한 가치관, 그것이 그림을 통해서 뒷받침되고 있음을 또한 보고 있기에. 심각하지도, 진지하지도, 부러 미간을 찌푸려 노력하지도, 애쓰지도 않고서 기꺼이 사랑하며, 그저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것. 이것에 필요한 용기를 헤아려본다.

 

Forever Saul Leiter. 영원히, 사울 레이터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사랑하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을 테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오래도록 사랑하고, 지긋이 바라볼 수 있었을까. 나 또한 그런 것들을 찾고 있다. 내 열렬한 사랑을 바칠만한 대상, 나태주 씨 말마따나,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될, 그런 사랑을. 그리고 사울 레이터의 말마따나 우리 주변에서, 애쓰지 않고서, 오래도록 정다이 만날 수 있는 그런 제재를.

 

나태주 시인의 시를 다시 인용하며 글 마친다.


 

막동리 소묘 · 172 / 나태주

   - 부제 : 내가 너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리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 나태주, 「막동리 소묘」 (지혜, 2019)

 

 

[서상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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