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윤도경 '뭍' [음반]

일상의 뭍에서 감정의 바다를 관망하기.
글 입력 2022.02.0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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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消盡)과 애도(哀悼)는 일상과 연결된 감정이다. 매일같이 일에 몰두하다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발견한 소진,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곁을 떠나는 애도는 파도치듯 다시 일상으로 흐른다. 슬픔에 빠져들어 주변의 관계나 일을 망쳐버리기도 하며, 피로에 지치다 못해 감정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감정과 일상의 균형에서 삶을 지켜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도경은 두 번째 앨범 <뭍>에서 소진과 애도를 노래했다. 매일 출근길에 오르는 사람의 육체적, 정신적 소진에 대해, 그리고 가까운 친구와 가족을 잃어버리는 애도에 대해 부른 열 곡이 담겼다. 그는 일상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노래하는 방식으로 앞으로의 삶을 지키려 했다. 일상이라는 뭍 위에서 감정의 바다를 관망하는 윤도경의 <뭍>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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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경은 부산의 포크 싱어송라이터다. 그는 2019년 첫 정규앨범 < Wonder Fool Life >로 데뷔하며 일상적이고 소소한 포크와 로큰롤을 선보였다.

 

이후 윤도경은 정규 2집을 준비하며 소진과 애도의 노래, 그리고 퇴근 3부작의 구성을 채워 넣었다. 그 과정에서 알음알음 음악인들의 소개를 받아 총 14명의 부산경남 인디 음악인들이 참가해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려 <뭍>을 완성했다.

 

첫 트랙 ‘젊은 소진에게 보내는 편지’는 일상 속 소진에 대한 노래다. 소진이라는 사람의 이름이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젊은 사람의 소진(消盡)이라는 의미다. 곡은 도시의 앰비언스와 함께 펜더 로즈(Fender Rhodes) 키보드 연주로 시작된다. 특유의 몽글거리는 사운드 위에 윤도경의 목소리가 등장하며, 청량한 클린톤 기타는 전체적인 사운드의 색깔을 완성한다. 악기의 앙상블은 직관적인 연주로 공간의 울림을 극대화한다. 덕분에 빈 공간에는 보컬과 가사의 여운이 채워진다.

 

소진이 찾아왔다면 과거엔 분명히 열정이나 꿈이 있었을 것이다. 윤도경은 ‘낡은 꿈’으로 과거를 암시하며 시시하고 답답한 감정을 비친다. 그럼에도 그는 늘 함께했던 것들에 대해 노래하며 친구와의 일상적인 통화에서 회복을 그렸다.

 

두 번째 트랙 ‘코끼리 코’는 윤도경의 로큰롤 스타일을 보여주는 곡이다. 보컬에는 밴드 쟁반땅콩의 멤버 양송이가 참여했다. 셔플리듬의 드럼과 함께 등장하는 사이키델릭 기타는 첫 트랙에서 보여준 차분한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윤도경은 몸과 마음의 소진이 일상에 지장이 갈 정도로 심각한 어지럼증을 가져왔다고 말했는데, 그의 병증은 코끼리 코로 제자리를 도는 듯한 느낌으로 비유되었다. 특히 브릿지의 기타솔로는 울부짖는 격렬함으로 곡의 긴장감을 터트려 마치 거대한 코끼리가 휘청거리다 무너지는 모습을 연출했다.

 

‘군산’과 ‘이제 너의 노래’는 윤도경의 애도를 담은 연작이다. 가족과도 같았던 친구와의 이별은 윤도경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왔는데, 그는 친구의 부고 소식을 접한 장소인 군산을 노래의 제목으로 정했다. 앰비언트 아티스트인 아완이 연주하는 어두운 음색의 업라이트 피아노는 공허하고 침울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짧은 인트로인 ‘군산’에서 이어지는 ‘이제 너의 노래’는 이별에 대한 윤도경의 심경을 담은 곡이다. ‘이제 너의 노래’는 어둡고 침울한 ‘군산’과 반대로 밝고 차분한 분위기가 연출되는데, 윤도경은 죽음의 이미지와 삶의 이미지를 연결하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윤도경은 가사를 통해 친구의 존재를 의식적으로 남겼다. 그는 ‘너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했지’, ‘이제 별과 바람이 됐네’ 등의 표현을 통해 친구와의 이별을 소멸이 아닌 상태의 변화라고 인식했다. 특히 중반 이후 등장한 트럼펫 솔로는 진혼곡이라는 의미에서 더욱 특별한 역할로 느껴진다.

 

윤도경은 ‘룸메이트’와 ‘찾아오는 밤’을 통해 애도의 감정을 마저 정리했다. ‘룸메이트’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한 곡이다. 룸메이트라는 표현은 할머니를 지칭하기 꽤 낯선 표현이지만, 서로 같은 방에서 의지하고 사랑하며 지냈다는 의미에서는 이보다 좋은 표현이 있을까. 윤도경은 늘 애도라는 감정을 일상으로 노래했다. 상실에 대한 슬픔은 일상으로 빗겨가며, 다시 남은 시간을 살아가기 위한 그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뭍>은 지극히 감정적인 주제를 다루지만 윤도경은 의도적으로 일상에 집중한다. 그는 ‘대청로 in Love’, ‘댓글’, ‘룸메이트’로 이어지는 퇴근 시리즈를 통해 사소하고 인간적인 일상을 다룬다. 특히 ‘댓글’의 가사는 앨범의 서정성과는 꽤 거리가 있는데, 해학적인 태도로 복지관의 노인들과 지방 청년들의 무기력함을 표현한 점이 인상 깊다. 앨범의 퇴근 시리즈는 소진이나 애도와 같은 추상적인 주제들과 감성이 다르다고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뭍>에서 등장한 일상적 주제들이야말로 윤도경이 소진과 애도를 다루는 진정한 방법을 보여준다.

 

마지막 트랙 ‘노라존스는 알까?’는 노라존스를 향한 윤도경의 깊은 애정을 담았다. 그는 삶의 매 순간마다 노라존스의 음악이 함께했고, 음악이 줄 수 있는 따뜻함에 대해 노래했다고 밝혔다. 포크를 연주하는 윤도경의 재즈를 향한 애정이라고 할까, 윤도경은 ‘노라존스는 알까?’에서 재즈 보컬리스트 허유진, 하모니카 연주자 김청현과 함께해 포크 음악에 재즈의 색깔을 입혔다.

 

*

 

일상을 벗어난 감정이 삶을 지배할 때 우리는 갈피를 잃는다. 윤도경은 <뭍>에서 담담한 목소리로 일상을 노래한다. 거대한 불안과 불행이 들이닥쳐도 다시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에 집중하자는 메시지는 여전히 같은 내일이 다시 찾아오리란 사실을 알려준다. <뭍>은 소진과 애도를 보낸 윤도경의 일기이자 누군가의 소진과 애도를 향한 사려 깊은 편지다. 윤도경은 혐오와 공포, 불안과 탈진의 시대에서 따뜻한 시도가 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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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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