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베토벤을 뜨겁게 사랑한 순간: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

글 입력 2022.01.2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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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022년 1월도 마지막 주에 접어들었다. 학생 때에는 시간이 빨리 갔으면 하고 그렇게 바라도 더디게 가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눈 깜짝할 새에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버린 걸 뒤늦게 느끼곤 한다. 2022년의 시작을 기리는 음악회를 1월 마지막 주 공연으로 잡았더니 이 때까지 어떻게 기다리나 하고 내심 멀게만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새 음악회가 목전에 다다랐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이 유수같음을 느낀 것 같기도 하다. 기다리는 내 마음보다 더 빠르게 나를 찾아온 그 무대는 바로 1월 25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있었던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올 한 해 동안 솔리스트로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노부스 콰르텟으로서도 베토벤 현악4중주 전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야말로 베토벤으로 올 한 해를 가득 채우는 셈이다. 그가 베토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알고 싶다면, 올해의 연주일정만 보아도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하면서도 강렬하고, 차갑게 저며드는 듯하면서도 따뜻하게 감싸기도 하는 그의 선율로 올 한 해 동안 베토벤의 세계를 어떻게 펼쳐내 줄 지 기대가 되어 이번 연초 무대가 더더욱 기다려졌다. 베토벤 전곡연주 대장정의 시작인 만큼 첫 무대는 특히나 놓칠 수 없다는 개인적인 욕심이 들었다.


그리고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연주를 듣는 것이 개인적으로 처음이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그가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어떤 합을 보여줄 지, 그가 생각하는 베토벤은 어떤지 조금이나마 엿보고 싶었다. 특히 독일에서 공부한 만큼, 독일 음악에 정통한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연주는 이번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 듀오 리사이틀 시리즈의 첫 무대를 보고 나니 확신할 수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정말 탁월한 조합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여정을 결심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이 보여준 첫 무대는 그야말로 베토벤을 뜨겁게 사랑한 순간이었다.


 



PROGRAM


Violin Sonata No.1 in D Major, Op. 12-1

I. Allegro con brio

II. Tema con variazioni. Andante con moto

III. Rondo. Allegro


Violin Sonata No.5 in F Major, Op.24 'Spring'

I. Allegro

II. Adagio molto espressivo

III. Scherzo. Allegro molto

IV. Rondo. Allegro ma non troppo


INTERMISSION


Violin Sonata No.7 in c minor, Op. 30-2

I. Allegro con brio

II. Adagio cantabile

III. Scherzo. Allegro

IV. Finale. Allegro - Presto

 




시작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번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피아니스트 손정범은 유니즌으로 힘차게 1악장을 시작했다. 김영욱의 활끝으로 표현되는 소리가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터치는 이번 무대에서 처음 듣는 것이었다. 이번 음악회에서 보니, 손정범의 소리는 굉장히 명징하고 강렬했다. 특히 1악장에서 김영욱과 선율로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을 때 이 명징한 사운드의 특징이 두드러졌다.


2악장은 변주곡 형태답게 변화무쌍했다. 그렇지만 2악장에서 가장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서정성이었다. 김영욱의 손끝에서 퍼져나오는 부드러움이 압도하는 악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손정범은 마치 지저귀는 새소리 같이 생명력 있고 활력 넘치는 피아노 소리를 곁들여주어 2악장을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일변 목가적이라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3악장 론도는 1, 2악장을 이어받되 또다른 생동감으로 악장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2악장에서 순간순간 느꼈던 평화로움과는 또 다르지만, 마치 생기 넘치는 새소리가 가득한 숲 속에 있는 것 같이 생명력이 넘쳤다. 이 악장 속에 담긴 선율은 당대의 유행가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피날레이면서도 특히 서정적인 면이 강조되는 것이 느껴졌다. 즐겁고 활력이 넘쳐 아름다운 피날레였다. 두 연주자의 호흡이 잘 맞아서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


이어지는 1부의 두 번째 작품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5번 작품이었다. 앞선 1번 소나타에서 피아니스트 손정범의 명료하면서도 담백한 터치가 인상깊었기 때문에, 5번 소나타를 기다리는 그 짧은 순간에 나도 모르게 5번 소나타에 대한 이미지를 예측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이렇게 작품에 대한 감상에 앞서 내가 생각했던 바를 먼저 말하는 이유는, 5번 소나타의 도입부가 시작되는 순간 내 예측과는 완전히 다른 연주가 펼쳐졌기 때문이다.


유명한 1악장의 도입부 선율이 시작되는 순간, 피아니스트 손정범은 1번 소나타에서와는 다르게 유려하고 몽환적이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 속에서도 여전히 담백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만의 특징이 아닐까 싶었다. 개인적으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을 들을 때, 대개의 경우 생동하는 봄의 생명력과 활기가 느껴지는 이미지를 받았다. 그러나 김영욱과 손정범의 5번 소나타에서는 봄에 소생하는 모든 생물들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이 느껴지는 기분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듯한 애틋함이 터치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듯했다. 그 말할 수 없는 표현들이 전부 담긴 선율을 들으니, 코끝이 찡해지고 마음이 완전히 무장해제되는 기분이었다. 조물주가 피조물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듯한 애정이 느껴져,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다.


2악장은 잔잔하고 여유로웠다. 아련하고 서정적인 선율 속에서 주고받는 김영욱과 손정범의 음악적인 대화는 관객들의 마음 속에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그 뒤에 맞이한 3악장은 김영욱과 손정범의 익살스러운 재치와 뛰어난 호흡이 여실히 드러났다. 산뜻하고 유쾌해 너무나 매력적인 연주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마지막 4악장에서는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연주실력과 더불어 서정성을 극대화시켜서 표현해주었다. 이제 이 음악이 마지막을 향해가는 것이 연주자들조차 아쉽지만, 이 순간 이 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 애정 어린 마음이 전해지길 바란다는 듯이 모든 사랑을 담아 음 하나하나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들었던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봄 중에서 가장 뜨겁게 가슴을 두드린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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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는 온전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유일하게 단조인 소나타이기도 했다. 무대에 가기에 앞서, 이번 프로그램 구성에 대해서 생각해봤을 때, 이 작품이 이번 공연의 유일한 단조 작품이기도 하고 1번이나 5번 소나탙보다 늦게 작곡된 작품이기도 하니 이번 공연의 피날레로 당연히 부합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예측은 여전히 유효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두 사람의 연주를 직접 들으니, 앞선 예상들보다도 이 작품 속에 녹아있는 비장미와 진중함, 거기서 연상되는 베토벤의 복잡한 심경으로 인해 이 작품이 대미를 장식하는 선곡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 같았다. 너무나 극적이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1악장은 시작부터 비장한 손정범의 터치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직전인 5번 소나타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몽글몽글하고 녹아내릴 것 같았던 터치에서 급변하여 격정적인 드라마를 펼쳐내기 시작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부드럽고도 날카로운 선율이 저며들기 시작하면서, 홀을 가득 채운 음악은 더욱 드라마틱해졌따. 1악장 코다는 열정의 형상화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깊었다. 1부의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청력을 잃어가던 베토벤의 비통한 심장만이 오롯이 남은 순간이었다.


2악장은 아름다운 노래악장이었다. 그런데 이 악장은 개인적으로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악장이라고 생각한다. 아다지오다운 아름다운 선율을 다양하게 활용하여 마디마디를 꽉 채운 것이 아니라, 적당한 음의 배치 속에 스며든 여백을 통해서 듣는 사람이 사색하게 만드는 악장이라는 인상을 매번 받는다. 김영욱과 손정범의 연주는 이런 개인적인 감상을 더욱 극대화해주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아름다우면서도 사색적이고, 여백의 미가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가득찬 연주를 전하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 극히 아름다운 악장이었다.


3악장은 정말 짧게 지나간다. 하지만 짧아도 굵은 인상을 남기는 악장이기도 하다. 피아노의 주제 제시와 바이올린의 추격을 통해 시작되는 이 악장 속에서는 카논 주법까지도 나와서 확실히 듣는 재미가 더욱 배가되었다. 비장미와 서정성에 이어 베토벤만의 재치 있는 음악적 표현들을 두 연주자가 위트 있게 잘 전해주었다. 이를 이어받은 마지막 4악장은 다시금 격정의 소용돌이로 회귀했다. 베토벤의 내면에서 해소되지 못한 그 감정의 편린들이 다시금 되살아나 격돌하는 혼란을, 김영욱과 손정범의 손끝에서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그 뜨거운 드라마 끝에 두 연주자의 손끝이 마침내 잦아들었다. 두 비르투오소에게 뜨거운 환호와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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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의 뜨거운 반응에 화답하여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앵콜곡으로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1번 나단조 BWV1014의 1악장 아다지오를 연주해주었다. 아주 서글프게 가슴을 파고드는 선율이 홀을 가득 채웠다. 코로나로 인해 지친 관객들의 마음을,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바이올린으로 대신 눈물 흘리며 그 마음들을 헤아리는 듯한 순간이었다. 지치고 힘들 수밖에 없는 이 지난한 상황을 이해하고, 관객들의 그 심경에 공감하며 위로를 전하는 따뜻한 선율이었다.


*


2022년을 베토벤으로 가득 채우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의 첫 여정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가슴 벅찬 무대였다. 연주하는 이에게나 듣는 이에게나 모두에게 바이블과도 같은 베토벤의 음악을 한 해 동안 걸쳐 모두 연주하겠다는 그 결심에, 얼마나 큰 고민과 용기가 필요했는지 관객으로서는 쉽게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영욱 손정범 듀오 리사이틀의 첫 무대를 보고 나니,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이 얼마나 진솔하게 베토벤을 마주하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가 이 대장정을 함께 해 나갈 동반자로 정말 잘 맞는 피아니스트를 만났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은 피아니스트 손정범을 두고, 그가 베토벤 소나타에 요구되는 파워풀함과 섬세함을 모두 고루 갖추고 있다고 월간 객석과 인터뷰한 바 있다. 이번 무대에서 피아니스트 손정범을 보니, 실로 그러했다. 이번 무대에 있었던 세 작품 속에서 단 한 순간도 손정범의 터치가 루즈하게 느껴진 순간이 없었고, 그의 연주가 뻔하다고 느껴진 순간도 없었다. 예상과는 다르게, 그러나 기대를 넘어서는 터치를 보여주면서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피아니스트 손정범이 뇌리에 깊게 남았다.


이렇게 뛰어난 두 비르투오소가 남은 올 해 동안 두 번이나 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 연주 여정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가오는 4월과 8월에는 이들이 또 어떤 모습으로 베토벤을 뜨겁게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줄 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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