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숨겨진 또 한 겹의 세상: 상상의 세계와 증강현실 속의 우리 이야기 - 한국의 신비로운 12가지 이야기

글 입력 2022.01.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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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세상 


 

한국의 요괴나 상상 속의 동물 하면 바로 댈 수 있는 이름은 몇 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국의 신화와 우리 전통 설화에 대해 크게 관심 가져본 적이 없다면 사방신(청룡, 백호, 주작, 현무), 구미호, 창귀, 장산범, 인면조 정도의 대중적인(?) 명칭을 읊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더 말할 게 있는지 떠올려보다 이런 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근데 한국에 요괴가 많긴 한가?”

 

아무래도 요괴하면 일본 요괴가 더 많이 떠오른다. 일본 설화에는 요괴가 많이 등장하고, 그것들의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으며, 일본의 현대 문화 콘텐츠에서도 요괴들은 이미 안정적인 소재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우리는-적어도 내 세대는- 어릴 적 <이누야샤> 등 더빙된 일본 애니메이션, 일본 만화를 많이 보고 자랐으며, 간접적으로 일본의 요괴나 귀신 종류를 접하며 컸다. 게다가 우리의 전통은 일제 강점기에 맥이 끊어졌거나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 바 있다. 우리가 모르는, 과거에서 현재로 전달되지 못한 설화가 얼마나 많을지 그것조차 잘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이야기나 벽화, 문헌 자료에 나타나 지금까지 이름과 특성을 전한 한국 전통 신, 귀신, 요괴는 존재한다. 그리고 한국 고유의 상상 속 존재들에 호기심과 매력을 느끼는 현대인들 역시 제법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고성배 작가의 <한국 요괴 도감>이란 책만 해도 독립출판물로 세상에 나왔다가 한국의 판타지 덕후들에게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 품귀 현상을 보였고, 제발 책을 다시 내달라는 예비 독자들의 성원에 힘입어 기성 출판사에서 재발간되었다. 요괴 ‘도감’인 이 책은 요괴 별 간단한 설명과 해당 요괴가 기록된 옛 문헌 자료 같은 정보를 제공하고, 요괴의 생김새를 보여주는 간단한 삽화를 넣었다.

 

요괴 혹은 신수, 신을 포함한 이 책의 네 가지 목차 중에서 첫 부분인 ‘괴물’ 장만 해도 처음 보는 요괴 이름이 백 개를 넘어간다. 신화에 관심이 많아 한국 신화 책도 여러 권 읽었지만 이런 세상이 있는 줄은 몰랐다. 한국 설화에도 요괴가 이렇게 많았다니. 우리 설화의 요괴는 물론이고, 그것을 체계적으로 ‘덕질’하고팠던 사람들이 이렇게 여기저기 숨어 있었다니?

 

그 숨어 있던-세상에 있어도 우리가 알지 못하면 꽁꽁 숨겨진 것이나 다름없는- 신수와 요괴들이 미디어로 재탄생하여 내 눈앞에서 움직일 걸 생각하니, <한국의 신비로운 12가지 이야기> 전시 문화 초대 소개 글을 보는 순간 향유하기 버튼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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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울루의 문을 지나


 

관람객의 참여가 필요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이다 보니 전시장의 범위가 자유로웠다. 티켓을 수령하고 본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미 판타지 세계로 입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지하 1층에 있는 전시실로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부터 이미 이야기는 펼쳐지고 있었다.

 

천장에는 문 형태의 오브제-서도호 작가의 작품이 연상되기도 하는-가 걸려 있었다. 그것이 전시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이는 신도울루의 문이 반투명한 문 모양 오브제로 나타난 것인데, 신도와 울루는 전통 설화 속 ‘문의 신’이라고 한다. 문신(門神)은 문에 깃들어 집안에 잡귀나 부정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신이다. 이 전시에서는 신도, 울루가 지켜주는 문을 지나 디지털 미디어로 옮겨가 재탄생한 한국 전통 상상의 동물들, 요괴들과 신들을 만나게 된다.

 

 

1. 전통 설화 속으로 가는 진입장벽을 낮춰주는―인터랙티브 미디어 전시

 

보통 전시는 혼자 보는 나이지만 이번 전시는 아트인사이트의 필진 두 분과 함께 관람했다. 그건 마침 실감형 미디어 전시인 이번 전시의 성격과도 잘 맞아 시너지를 냈다. (실감형이란 단어를 네이버 사전에 검색해보니 ‘실제로 체험하는 느낌이 나는 유형’이라고 한다.)

 

12가지 테마관으로 이뤄진 본 전시의 큰 특징을 얘기하자면, 화려한 그래픽, 거울의 전략적인 사용, 감상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미디어 화면, 감상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개인 바코드 배부 및 바코드를 활용하는 코너, AR 기술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실인 스토리룸에서 관람객에게 생소할 수 있는 신화와 설화의 정보를 전하고, 그 다음 공간에서 본격적인 인터랙티브 미디어 영상을 마련해 미리 소개한 설화 속 존재들을 보여주고 감상자의 참여를 독려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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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디자인된 현무가 보인다.

 

 

2. 익숙함과 낯섦의 공존, 그 세상에 빠져들기: 거울과 색감의 활용

 

신도울루의 문을 지나 <돌과 나무에서 시작된 이야기>의 두 번째 전시공간을 봤을 때 이 전시의 색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붉은색 조명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두세 가지의 영상 아트워크가 번갈아가며 공간 전체에 퍼진다. 누군가의 능이나 무덤 앞에 놓일 법한 조각상이 바닥에 두세 점 서 있고, 거울로 된 벽면에는 본 전시에서 새롭게 디자인된 사방신이 고분벽화처럼 버티고 있다. 그러나 고분벽화 속 고즈넉하고 기품 있는 사방신보다 유쾌한 느낌이고 익살맞은 구석까지 있다. 그리고 조각상과 바닥과 사방신 이미지 위에 펼쳐지는 영상이 하도 현란해서 마치 사이키델릭한 강서대묘에 들어온 느낌이랄까….

 

거울을 활용한 착시와 공간의 확장은 세 번째 테마관 <시공간의 초월>과 다섯 번째 테마관 <우리마을 소원의 나무>에도 등장한다. 고대에 커다란 나무를 신성시하고 숭배한 것은 여러 문화권에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북유럽 신화에서 아홉 세상은 아예 ‘이그드라실(세계수)’이라는 나무에 존재한다. 북유럽 신화의 세계관에 이그드라실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신단수나 마을 사람들의 기원을 담아 동여 맨 붉고 푸르고 노란 천으로 알록달록한 서낭당 신목이 있다. <우리마을 소원의 나무>에서는 소원과 함께 나무에 길게 늘어뜨려 묶어두던 천을 영롱하게 늘어진 자개모빌들로 표현했다. 그것이 사면의 거울에 비치면 더욱 환상적이다. 서낭당의 강렬한 색감은 쏙 빠지고 흰색과 분홍색, 미색만 남아 있는 공간은 문화적 익숙함과 시각적인 낯섦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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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거울이어서 생기는 비일상적인 공간감, 세상이 확장되는 느낌이 우리가 새로운 세상으로 발 들이는 것을 수월하게 돕는다. 그리고 우리가 현실의 고분벽화나 서낭당에서 봐 온 것과 전혀 다른 색감을 사용하여 공간적, 문화적 이질감과 익숙함을 묘하게 섞어버린다. 전시 첫 설명 패널에 적힌 기획 의도가 천천히 펼쳐지고 있었다.

 

 

㈜디자인실버피쉬 홍경태 대표는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 설화 속 이야기들을 미디어 기술을 통해 새롭게 경험해 보면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경험한 것들과 미디어로 구현된 가상공간에서의 체험이 어떤 다른 지각 경험을 가져오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즐거운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3. 감상자의 움직임에 반응하다

 

일곱 번째 테마관 <도깨비 불을 만나다>는 참여형 전시 공간으로, 도깨비와 도깨비불에 대한 설명을 읽은 다음 디지털 미디어로 표현된 도깨비불을 직접 켜 볼 수 있었다. 센서에 손을 가까이 대면 저마다 다른 패턴의 도깨비불이 감상자의 눈앞에서 현란하게 휘휘 돌았다. 몇 개의 패턴이 돌아가며 나오는 것이지만 그래도 전시를 함께 감상한 분들의 도깨비불은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는지 서로 확인하는 재미가 있었다.

 

여덟 번째 테마관 <꿈의 도서관 / 소환의 서>에서는 감상자의 발걸음에 따라 오래된 책이 펼쳐지며 그 책의 삽화에 그려진 전설 속 동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영상을 보여주었다. 용, 봉황, 구미호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상상 속 동물들도 나오고 낯선 동물들도 나온다. 예를 들면 고양이 머리에 뱀의 혀와 몸을 가진 묘두사, 산처럼 거대하고 거북을 닮은 괴수 귀수산, 눈 세 개 달린 개 삼목구 등 처음 보는 동물들이 나왔다. 그런가하면 예전에 무속 주제의 만화에서 한번 봤었던 삼두일족응(머리가 3개이고 발은 하나인 매의 모습을 한 새)을 봐서 조금 반가웠다. 아는 동물은 이 전시에서 어떤 캐릭터 디자인으로 재탄생되었는지, 처음 접한 동물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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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가 몰랐던 한국의 요괴들에 대해

 

열 번째 테마관 <무시무시 기담>에서는 소환의 서에 실린 것보다 많은 상상 속 존재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상서롭기보다는 으스스한 요괴들이었다. 정말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요괴들의 목록을 보며 내가 우리 설화나 민담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살고 있었는지 실감이 났다. 다양한 요괴들의 이름과 설명을 읽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외눈박이 거인이자 인간을 잡아먹는 요괴 ‘대인’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키클롭스가 연상되었다. 몸집이 크고 12개의 큰 눈을 가진 물고기 요괴인 ‘신유육면’은 나타나면 흉사나 전쟁의 징조로 보았다는데, 어쩌면 큰 지진의 전조로 심해어가 뭍으로 올라온 걸 보고 이런 요괴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 보았다.

 

그 외에도 염매, 신기원요 같이 설명만 읽어도 무서운 요괴들은 무슨 사연으로 저런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을 비롯하여 다양한 요괴들의 모습은 전시에서 확인하시길. 조금 섬칫하지만 그 다음 요괴들의 클럽을 꾸민 공간을 보면 스토리룸에서의 으시시한 느낌을 털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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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환상의 세계와 증강현실이라는 또 한 겹의 세계

 

실제와 같이 느낄 수 있는 전시를 위해 ㈜디자인 실버피쉬와 전시 연출 팀은 다양한 시청각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전시장에 AR기술을 도입했다. 전시장 벽면마다 숨은 그림처럼 붙어 있는 어떤 동물 형상의 실루엣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그 실루엣의 주인인 상상의 동물이 화면에 떠오른다. 마치 포켓몬 Go를 할 때처럼, 전시장 벽면을 비춘 스마트폰 화면 안에 상상의 동물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환상의 세계와 증강현실은 닮은 구석이 있다. 어떻게 보면 상상의 동물, 요괴, 귀신, 신을 본다는 것은 그 순간 눈꺼풀을 하나 더 가진 셈이다. 평소 보지 못하던 것에 눈이 뜨였다는 뜻이니 말이다. 아니면 일상적인 세상이 한 꺼풀 벗겨지거나, 새로운 것이 한 겹 더 덧씌워진 세상이 되는 일이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 눈앞에 존재한다.

 

서양의 종교화를 공부하다 보면 기도를 드리던 수도승이나 성인이 천사나 성모, 상서로운 빛 등 천상의 존재를 목도하는 비젼(vision, 일종의 종교적·영적 환영)의 장면을 그린 그림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현대인들이 만들어내는 디지털 영상, 특히 홀로그램 영상 같은 것들이 그런 비젼의 기술적 현실화를 이룬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눈앞에 생생히 보이지만 손으로는 잡을 수 없는 것, 다만 우리의 눈이 바뀐 것이 아니라 외부에 틀어진 영상이 존재하는 것. 그러나 그 영상에 빠져 있는 동안 우리 마음에도 존재하는 것.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그런데 비젼과 디지털 미디어에 관한 생각이 정리도 되기 전에 이 세상의 기술자들은 AR 기술, 즉 증강현실을 만드는 기술을 만들어냈다. 실재하는 세계와 디지털 세계는 이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사이 어딘가에 또 한 겹의 세상을 만들어 우리의 환상을 존재하는 것으로 만든다. 처음에는 이 전시가 요즘 기술의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AR 기술을 도입한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집에 와서 전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인간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축적해 온 상상의 세계, 환상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데에 증강현실 기술이 제격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가택신과 함께 살고 있다> 테마관에서는 AR 기술을 도입한 포토존에서 우리와 함께 살았던 혹은 살고 있는-언제나 믿기 나름이다- 다양한 가택신들을 만나볼 수 있다. 현대의 기술에 힘입어 숨겨진 또 한 겹의 세상을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는 특수한 포토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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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택신들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열한 번째 테마관

 

 

 

나만의 동양 별자리, 나만의 요괴 그리기 - 우리 것과 친해지는 시간


 

매표소에서 관람객은 자기 생일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등록하고 바코드를 받게 된다. 바코드의 정체는 전시의 중반에서 드러난다. <기원을 지나 별을 만나다>에서 개인 바코드를 찍으면 서양의 별자리가 아닌, 나만의 한국 전통 별자리를 알 수 있다. 서양의 별자리는 대략 한 달의 시차를 두고 정해진다면 (예를 들어 1월 20일에서 2월 18일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물병자리가 된다) 우리 별자리는 생년월일시의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오늘의 운세나 사주 앱처럼 태어난 시각까지 쓰게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다.

 

전시에 깊이 몰입하게 된 것도 나의 동양 별자리를 알게 된 순간부터인 것 같다. ‘나만의 ~’는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과 친밀감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나만의 별자리, 수호천사, 나의 탄생석, 탄생화 등등…. 우리 전통문화에서 별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도 신기한데, 생년월일시라는 훨씬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로 정해지는 별자리라니 월별로 정해지는 서양식 별자리보다 더 ‘나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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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유의 천문 읽기는 어떤 체계로 이루어졌을까?

 

 

또 하나 이 전시를 개인적으로 친근하게 만들어준 파트가 마지막 테마관이자 체험 공간인 <나만의 수호신 / 귀신 그리기>였다. 자기만의 수호신이나 귀신을 그린 다음 역시 개인 바코드를 찍어 벽면에 자기가 창조한 상상 속 존재를 띄울 수 있다. 나는 노래와 놀기를 좋아하고, 머리 근처에는 나뭇잎이 자랐지만 기다랗고 유연한 몸통은 흰색 털로 뒤덮인 요괴를 하나 그렸다. 이 몸통은 위급할 때나 장난을 칠 때 투명하게 변할 수 있다. 같이 간 분들은 자신의 동양 별자리를 활용해 자기만의 수호신/귀신을 그리셨다. 커다란 이벤트도 아니지만 전시장을 나서기 전에 소소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역시 ‘나만의 무엇’을 찾아주거나 만들게 하는 전략은 빠져나갈 수가 없다.

 

 

 

‘전시’로서 아쉬운 점


 

즐거운 전시였지만 형식 면에서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전시를 설명해주는 패널의 가독성 문제였다. 우선 전시 내용의 이해를 돕는 ‘글’이라는 면에서 패널 자체에 오타가 있거나, 해당 이미지를 기술하는 부분에서 이미지의 특징과 상응하지 않는 형용사를 써서 내용을 헷갈리게 한 점 등이 아쉬웠다.

 

두 번째는 설명 패널과 조명 문제였다. 전시실, 특히 영상 전시 공간으로 넘어가기 전의 ‘스토리 룸’에는 감상자가 읽을 정보들이 벽에 적혀 있다. 그러나 조명 문제로 읽기 힘든 정보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돌과 나무에서 시작된 이야기> 스토리룸은 신비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조명을 천장 한가운데에 쓰느라 벽 모서리에 가까운 패널은 어둑해져서 읽기가 어려웠다. 전시실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조명 사용임을 알지만, <한국의 신비로운 12가지 이야기>는 주최측에서 말하듯 미디어 ‘전시’이다. 영상과 디지털 미디어 기술, 참여객으로 이뤄진 단순 플레이존이 아닌 것이다. 패널용 조명을 따로 구해 어두운 부분에 붙여줬다면 어떨까 싶다.

 

더 안타까운 부분은 다섯 번째 테마관 <우리마을 소원의 나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방의 사면을 거울로 채워 거울이 서로를 반사하고 있는 마당에 이 공간에 대한 설명 패널을 거울 위에, 그것도 하얀 글씨로 붙여놓았던 것이다.

 

전시의 형태를 띠고 관람객을 불러모은 것인데 설명 패널의 글자가 읽기 힘들게 되어 있다면 전시의 기본을 챙기지 않은 것이다. 설명 패널은 전시 대상 하나하나의 개별 설명을 전해주는 것은 물론 전시 전체의 스토리텔링을 해설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정보를 읽는 관람자의 눈이, 생각이 멈칫할 때마다 전시 전체의 스토리 구성에 몰입하기 힘들어질 수 있다. 물론 이 전시가 학술적인 전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런 디테일까지 신경 썼다면 훨씬 더 퀄리티 있는 전시가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재미있게 관람했지만 전시로서의 아쉬움이 남는다. 몇몇 패널의 낮은 가독성과 분위기 조성에 치우친 조명 연출 문제 때문에 전시보다는 기술적으로, 디자인적으로 잘 만든 캐릭터 페어, 캐릭터 디자인 보고회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환상의 세계를 나오며


 

리뷰의 서두에 <한국 요괴 도감>과 숨겨진 세상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이 책을 다시 내달라 소원한 사람들은 본래 신화, 설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유형의 관람객이었다.

 

어릴 적부터 신화 읽기를 좋아한 나는 책장에 각종 문화권의 신화책과 신화학 도서들을 꽂아놓았다. 나는 한창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자란 세대였고, 그리스 로마 신화로 시작해서 이집트, 인도, 중국 그리고 한국의 신화 책을 찾아 읽었다. 처음 접한 판타지 세상이 그리스 로마의 것이라 그런지 서양 미술에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 전통의 것을 사랑하게 된 것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신화 기반의 TV 애니메이션 <신비 아파트>를 보고 자라고 있다. 그들은 게임과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서구와 일본의 신화적 세계관에 익숙해지며 자란 아이들과는 또 다른 결의 세계관을 더 자세하게 내면화하며 자라게 될 것이다. 즉, 우리의 신화적 세계관을 자연스레 익혀가는 요즘의 아이들에게 (보호자 동반으로) 이런 전시를 보여주면 재밌어하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꼭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우리 신화, 설화에 관심을 키우는 사람들에게 입문 전시로도 좋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후속 콘텐츠를 기대하게 되는 전시였다. 전시에서 접한, 현대적으로 재창조된 한국 신화 속 문의 신, 가택신들과 각종 상상의 동식물과 요괴들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동화책을 내거나 애니메이션 같은 콘텐츠를 낸다면 재밌게, 반갑게 볼 것 같다.

 

우리 신화와 민담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도, 잘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관람한 전시였다. 이런 미디어 실감형, 체험형 전시로 디자인 재탄생된 요괴들을 보며 친근해지면, 전통에 대한 관문-고루하고 어렵다는 생각-은 낮아지고 우리 것이 우리에게 더 사랑받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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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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