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죽음을 그리다

글 입력 2022.01.0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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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에게 삶에 대한 성찰이란 그의 예술혼이 다할 때까지 꼬리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질문거리일 것이다. 많은 예술가가 인간의 본질, 즉 태어남과 죽음의 경계에서 생을 이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고 이에 대한 답을 자신의 예술작품에 투영했다.

 

도서 <죽음을 그리다>에서는 이러한 죽음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태도와 작품을 이야기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을 담은 여러 예술작품의 면면을 뜯어보며 동시에 삶이란 무엇인지 고찰한다. 죽음의 모습은 그 생명의 수만큼 방대하기에,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인간이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인 죽음 너머를 고찰한 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다채롭다.

 

<죽음을 그리다>의 저자가 들려주는 담백한 일화를 눈으로 훑다 보면, 미술의 언어로 그려낸 죽음이 그림 액자의 프레임 안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올 생의 마지막 순간을 제대로 바라보며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 또한 곱씹어 생각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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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집필한 저자 이연식은 미술사를 여러모로 살펴보며 예술의 정형성과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다양한 저술, 번역, 강연 활동을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그의 서술 방식은 한 작품을 분석하더라도 기본적인 미술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에 기초한다. 독자는 이러한 설명을 토대로 그림 이면에 숨겨진 맥락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타인에게 죽임을 당한 이들부터, 자신에게 죽임을 당한 이들, 병마에 맞서 싸우거나, 혹은 전쟁터에서 죽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무도 모르게 생을 마감한 이들까지. 죽음의 키스가 남긴 흔적을 가진 이는 나의 부모일 수도, 형제일 수도, 애인일 수도 있다.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죽고, 다시 누군가는 태어나 생의 순환을 이어간다. 나는 이 순환에서 어떤 점으로서 자리하는가. 나의 존재라는 점은 어떻게 이어져 선을 만들고 면이 되어 공간을 지배하게 되는가. 인간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숙명, 죽음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진솔한 문체로 역사적 사실관계와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나열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독자의 끝나지 않는 상념과 질문은 더욱 깊은 곳을 찌른다.

 

회화 작품에서 많이 다루는 소재 중 하나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위대한 인간은 어떻게 죽었으며, 모두를 구원하고자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어떻게 죽었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도 궁금한데, 그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사람들은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을 얼마나 알고 싶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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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

 

 

저자는 1장과 2장에서 이처럼 죽음을 맞이한 유명인들을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서 죽음을 맞이한 이들과 함께, 어이없이 암살당하거나 억울한 누명과 함께 죽은 이들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이 사람들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저자는 이 점에 집중하여 자신의 관점을 토대로 책을 집필했다.

 

당연히 모든 그림에는 죽음에 대한 화가의 주관적 감상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화가들은 각자 다른 지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림을 그렸겠지만, 누군가 임종을 맞이하는 순간을 포착하여 널리 알리고자 했던 욕망은 다들 비슷할 것이다.

 

상술했듯, 죽음은 여러 모양으로 나타난다. 물론 대부분이 원하는 호상(好喪)은 일말의 고통 없이 일생의 마무리를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겠지만, 모두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죽음을 그리다>의 네 번째, 다섯 번째 장에서는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택한 이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 곁을 지키며 죽음의 모습을 그림에 담은 화가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칼날을 자기 몸에 내리찍은 사울이 담긴 그림에서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의 메아리가 들리는 듯하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카미유를 그린 모네의 마음에는 도대체 무엇이 자리했는지 궁금해진다.

 

죽음을 받아들이거나, 바라보는 이들에게는 어떠한 감정이 있었을까? 울분이었을까, 아님 애도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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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무제>, 1962

 

 

역사적으로 그림에 죽음을 녹여낼 때 쓰인 색은 주로 검정이었다. 저자는 세 번째 장에서 이 검정이 왜 죽음이 색이 되었으며, 어떻게 죽음을 그려낼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단순한 명암의 대비에서부터 상복과 같은 복식에 쓰인 검정, 인상파와 추상 미술에서의 검정까지. 색채학과 결부된 미술사의 신화를 흥미롭게 서술하여 쉽게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검정’이란 색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임종의 순간부터 검정의 이모저모까지. 이처럼 역사를 풍미한 여러 회화에 담긴 ‘죽음’은 우리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약 이것이 현실을 넘어 상상의 나래와 만났을 때는 그 영향력이 더욱 강력해진다. 바로 죽음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침범한 사례, ‘유령’이다. 망자의 모습으로 불가침의 경계를 넘어온 유령은 인류에게 공포와 선망을 주는 대상이고, 성서나 고대 신화와 같은 유구한 기록을 넘어 현대 대중문화에서도 자주 다루어지는 소재다.

 

뮤지컬로도 변주된 영화 <사랑과 영혼>에서는 주인공 몰리가 영문도 모른 채 죽은 자신의 남자친구 유령, 샘을 마주한다. 카이사르를 암살한 브루투스는 자신의 모습을 띤 유령을 만나 죽음을 예고 받으며, <크리스마스 캐럴>에서는 못된 스크루지를 개도하기 위해 다양한 모습을 한 유령이 등장하여 가르침을 준다. 셰익스피어의 걸작 <햄릿>에서도 햄릿의 모든 행위는 아버지의 유령이 제공한 동기에서 시작된다.

 

가지각색의 유령은 그만큼 많은 수의 죽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유령들이 주는 문학적 즐거움이나 교훈 등을 뛰어넘어, 미학적으로 유령이 어떤 존재로서 미술사의 자리를 꿰찼는지 분석한다. 동시에 유령과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죽음을 바라보는 예술의 관점을 이야기한다.

 

<죽음을 그리다>의 마지막 장에서는 다시 생명을 얻어 무덤에서 걸어 나온 망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경에서 다루는 예수의 부활과 같은 소재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라자로의 일화도 비슷한 맥락에서 부활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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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 코레조, <나를 만지지 마라>, 1525년경

 

 

복음에 기초한 부활과 영생이라는 개념은 기독교의 근간이며, 죽음을 뛰어넘는 강력한 신의 힘을 증명하는 무기다. 저자는 이와 같은 ‘되살아남’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회화 작품을 통해 설명한다. 다소 어려운 주제지만 가만히 읽고 나니, 그동안 어렴풋이 알고 있던 성경의 내용이 미술사와 맞물려 알기 쉽게 이해되었다.

 

<죽음을 그리다>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다루지 않는다. 외면하고픈 감정을 일깨우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제공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자로서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며 마음 깊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책이다. 그러나 누구나 고민해볼 만한 죽음의 모습을 예술의 언어로 이해하고 싶은 이에게 이처럼 좋은 도서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죽음에 대한 답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나는 죽음이란 미지의 경험이 있기에, 삶이 더욱 경이롭다는 것을 다시금 알 수 있었다. 지금, 현재를 누리는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잊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싶다.

 

 

[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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