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수학자의 사랑법 [드라마/예능]

수학, 좋아하세요?
글 입력 2022.01.0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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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무해하고 당당한 거야 

그 자체로 선하고 목적을 갖지 않아 

끝없이 뛰노는 아이 같아"

 

- 드라마 '멜랑꼴리아' 中 -

 

 

 

멜랑꼴리아 '백승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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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아]는 대한민국 명문으로 불리는 아성 고등학교가 사실은 각종 비리와 특혜의 온상이었음을 밝혀내는 스승과 제자에 대한 이야기다. 자신만의 고집과 강단으로 아이들에게 수학의 즐거움을 가르치는 수학 교사 지윤수 역할에 배우 임수정이, 수학을 좋아하지만 과거의 상처로 인해 지금은 수학을 외면하고 있는 자발적 아웃사이더 수학 천재 백승유 역할에는 배우 이도현이 열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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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꼴리(melanchole)는 주로 우울감, 침울함을 뜻하는 단어다. 또한 '모든 천재는 멜랑꼴리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천재들에게 주로 나타나는 기질적 특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멜랑꼴리'는 어린 시절 수학 천재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더는 수학을 사랑하지 못한 채 우울감에 빠져있는 백승유를 잘 나타내 주는 단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특별한 재능에 트라우마가 있는 백승유에게 '네 재능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수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그 시선이 특별하다'고 말해주는 지윤수는 아마도 마음의 부담을 덜어 내주는 한 줄기 빛이자, 위로였을 것이다.

 

동시에 드라마는 수학이라는 어려운 소재를 친근하게 풀어냄으로써 시청자들의 부담도 덜어준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처마, 나뭇가지, 창호 등의 아주 일상적인 풍경에서 수학을 찾아내기도 하고, 궁금하고 재미있는 주제들을 적절히 제시하면서 자연스럽게 수학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에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마치 내가 수학이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하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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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세계 수학자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로만 오팔카, 에셔, 쿠사마 야요이, 빈센트 반 고흐 등의 미술 작품을 수학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내용이 매우 인상 깊다.

 

특히 유형과 무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로만 오팔카의 《1965/1–∞》연작을 소개했는데, 이 작품은 검정 바탕에 흰색 물감으로 좌측 상단에서부터 숫자 1을 그리기 시작해 무한대로 이어지는 일련의 숫자를 차례대로 배열한 작품이다.

 

로만 오팔카는 1965년부터 2011년 자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캔버스에 숫자를 빼곡히 적어가며 예술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캔버스에 잡아두었다.


이를 두고 지윤수는 '어떤 숫자까지 쓸지 알 수 없으니 무한이고,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있을 테니 유한인 것'이라며 수학적 시선을 담아 설명한다. 무형의 것이 유형으로, 나아가 예술과 수학으로 연결되는 그 해석이 매우 아름답고 흥미로웠다. 

 

 

 

형수님은 열아홉 '강승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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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기, 백승유와 다른 듯 닮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드라마 [형수님은 열아홉]의 강승재다.

 

[형수님은 열아홉]은 가수 god 출신의 배우 윤계상과 고(故)정다빈 배우의 출연작으로 수학을 좋아하지만 어린 시절의 실패로 길을 잃고 방황하던 주인공 강승재가 결국엔 돈도 안 되고 때깔도 안 나는 배고픈 수학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유쾌하고 통쾌한 드라마다.

 

물론 전체적인 드라마 내용은 수학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기보다 주변 인물들 간의 갈등과 복수, 권선징악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1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엄마의 허영심과 언론의 상업성에 이용당하고,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면서 수학을 좋아하는 마음에 상처받고 좌절하던 강승재가 다시 수학을 마주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 [멜랑꼴리아]의 실패한 천재 백승유의 모습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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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멜랑꼴리아]에서 지윤수가 수학을 향한 백승유의 시선과 순수한 마음을 알아줬듯이 [형수님은 열아홉]의 한유민도 그렇게 좋아하는 수학을 외면한 채 두려워 방황하는 강승재에게 이렇게 외친다.

 

"왜? 천재가 아니라서 겁나?

13살짜리가 문제를 틀릴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북극성만 별이냐? 별똥별도 별이야"

 

스스로 자신에 대한 증명을 끝내지 못한 채 기나긴 두려움과 고통 속에 괴로워하던 강승재에게 한유민의 말이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됐을까? 주인공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수학을 놓아버리지 않게 곁에서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며 나 또한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음을 이 글을 빌어 고백한다.


 

 

수학자의 사랑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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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하고 정확하기만 할 것 같은 수학도 사실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하다. 사랑도 그렇다. 그러므로 수학자들에게 사랑이란, 증명하고 싶지만 증명할 수 없는 난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난제의 답을 찾아 헤매는 것 또한 수학자의 삶이라 여기며 답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순간을 잠잠히 기다린다. 문제가 자신을 찾아왔던 그 어느 순간처럼 말이다.

 

두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고 아프게 잃어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일까? 백승유와 강승재의 사랑은 어려운 상황에서 더욱더 단단하고 견고하다. 혹시 예기치 못하게 계속 문제가 어려워진다고 하더라도 각자의 풀이법으로 최선을 다해 문제에 임한다.

 

그러고 나서 결국, 자신의 사랑을 증명해내며 아름다운 결론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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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이런 수학자의 사랑이 딱딱하고, 어렵고, 지루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답을 얻기까지 몰두하지만 얽매이지 않고, 좋아하지만 집착하지 않는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방해할 수 없는 혼자만의 긴 싸움이라 할지라도 끈기를 가지고 이루어낸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깨끗하다.

 

우리는 대부분 삶의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기다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 과정이 매우 지루하고, 복잡하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때로는 답이 나오든, 안 나오든 문제를 푸는 동안 느껴지는 떨림과 흥분, 불안과 몰입이 더 큰 행복이 될 수도 있음을 두 드라마는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수학, 좋아하세요?'라는 원초적 물음에 마침내 긍정을 말하게 되기까지 주인공들은 수많은 좌절과 고통을 겪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포기하지 않는 중' 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삶은 답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제를 만나고 답을 찾아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큰 행복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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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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