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햄버거 엔터테인먼트의 힘 – 아케인 [영화]

2편 : 새로운 프렌차이즈의 출현
글 입력 2022.01.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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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시방과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피시방을 자주 가는 편은 아니다. 한창 PC게임을 할 때는 비교적 저사양 게임을 주로 했고, 그것도 진짜 심심할 때만 켜서 했기 때문에 굳이 피시방을 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PC 사양이 좋은 것도 아니고, 스팀을 이용할 정도로 게임에 열성적이진 않았다. 물론 지금처럼 PC게임이 대중화되기 이전엔 플레이스테이션이나 X-BOX와 같은 비디오 게임기로 타이틀을 하나씩 사서 하긴 했다. 근데 그것도 PC 시장의 확대와 게임 플랫폼의 다양화로 비디오 게임기 ‘독점작’이라는 의미가 퇴색된 이후로는 시들해졌다. 그때 나는 아마 특정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꼭 특정한 플랫폼을 이용해야 한다는 아날로그적인 프로세스에 매료됐던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고, 품이 많이 드는 것들을 좋아한다.

 

머리털 나고 피시방에 제일 많이 갔던 시절은 고등학교 때도 아니고, 신입생 때도 아닌 군 복무 시절이다. 아무래도 군대는 디지털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다 보니 항상 컴퓨터에 대한 향수로 절여있다. 피시방을 가기 위해 외출을 쓸 정도로 말이다. 군대에 있을 때도 피시방에서 한 게임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동기들이 배틀 그라운드나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할 때 피파 온라인만 주야장천 했던 것 같다. 거기엔 이런 심리가 작용했다. ‘배틀 그라운드’는 고사양 게임이라 피시방에서 밖에 못 하잖아. 거기다가 난 피시방을 잘 안 가기도 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는 나온 지 10년이 넘은 게임인데,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서 하기가 싫어. 전역하고 나서 복학할 때쯤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피시방에 가 몇 시간이고 ‘배틀 그라운드’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게임을 하기 위해 피시방을 간다는 건 나에게 조금 낭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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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했을까..습관처럼 게임을 실행한다.


 

‘배틀 그라운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피시방을 다니긴 했다. 하지만 게임이란 게 성취가 있어야 할 맛이 나는데, 난 게임에 특출난 재능이 없으므로 치킨은 고사하고,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 바빴다. 차츰차츰 ‘배틀 그라운드’에 흥미를 잃을 때쯤, 친구들이 다시 ‘리그 오브 레전드’를 시작했다. 나로선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나온 지 10년이 넘은 게임을 아직도 한다고. 거기다가 ‘리그 오브 레전드’를 할 땐 온순한 사람도 눈을 이글거리며 거친 말을 했다. 다른 게임은 다해도 저것만은 안 해야지. 고인물도 너무 많고, 게임 구조상 남 탓을 할 수밖에 없으니까 분명히 하게 되면 괴로울 게 뻔했다. 게임으로 스트레스받기 싫고. 딱 한 번만 해보라는 친구들의 권유를 한사코 거절하면서 저것만은 안 하리라 다짐했는데….

 

2022년 새해가 밝은 지금 그 게임을 아직도 하고 있다. 10년 넘게 서비스하면서 매년 국제대회도 크게 하는 게임엔 다 이유가 있더라. 피시방을 굳이 안 가도 되고, 과금을 안 해도 된다. 거기다가 매번 새로운 캐릭터가 출시된다. 자잘한 업데이트 때문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또 게임의 판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영역으로 게임 세계를 확장하려고 한다. <아케인>이 바로 그 첫걸음이다.



애니메이션 : 세계관의 확장



나는 ‘상황’에 과몰입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역사, 물건, 인물 가릴 것 없이 그것이 처했던 상황을 찾아보는 걸 좋아한다.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행동했고, 이 물건이 이렇게 만들어진 근거를 찾아본다. 좀 더 정확한 단어를 찾아보면 ‘상황’보단 ‘스토리’에 몰입한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게임도 마찬가지다. ‘세계관’을 중요하게 여긴다. ‘게임’은 유저가 직접 세계관 속 존재하는 가상의 인물을 플레이한다는 점에서 체험의 예술이다. 그리고 수많은 개발자가 뼈와 살을 갈아 세계관을 그래픽으로 구현한다. 스토리와 캐릭터는 가상의 세계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독창적이고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관일수록 게임을 돋보이게 한다. 물론 게임의 근본은 ‘재미’이기 때문에 세계관만 비대하고 실상 게임이 재미없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의 세계관은 어딘가 조악하다. 방대하긴 한데,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다른 여러 매체의 오마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롤이라는 게임의 시초를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100명이 넘는 캐릭터 모두를 ‘독창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게임 유저들이 익숙한 요소들을 가져와 재창조 하는 게 유리하다. 가능하다면 ‘오마주’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하게끔 말이다. 롤은 판타지나 SF소설에 나오는 것들은 물론 매니악한 서브컬쳐 요소도 과감하게 차용해 캐릭터를 만들었다. 취향에 맞춘 음식을 가득 진열한 뷔페식처럼 말이다. 유저들은 본인의 게임 스타일이나 취향에 맞추어 캐릭터를 고를 수 있다.

 

문제는 다양하고 캐릭터들은 한데 묶을 세계관이 조악하다는 점이다. 일단 롤이라는 게임 자체가 재밌고 완성도가 높으므로 자잘한 설정과 스토리는 등한시됐지만, ‘롤’이라는 10년 넘은 IP를 확장하고 새로운 유저들을 유입하기에는 ‘게임성’ 이외에 어필할 게 딱히 없다. 유저들은 고이고 고여서 라이트 유저가 처음 게임을 시작하기도 어렵기도 하고. (내가 그랬다). 캐릭터가 출시될때마다 기존 캐릭터와 설정이 충돌해 몇몇 캐릭터들은 설정과 스토리가 변경되기도 했다. 개발사인 라이엇 게임즈가 ‘발로란트’라는 FPS게임을 출시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들의 주요한 IP는 ‘롤’이다. ‘롤’을 바탕으로 오토 배틀 게임인 ‘롤토체스’와 수집 카드 게임인 ‘레전드 오브 룬테라’를 출시하는 것을 보면, ‘롤’의 IP를 십분 활용해 게임 영역을 확장할 계획임이 틀림없다. 그럴수록 탄탄한 세계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게임성과 별개로 게임의 몰입감과 역사를 부여하는 건 세계관과 설정, 스토리니까 말이다.

 

‘롤’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이용해 출시한 COG 게임 ‘레전드 오브 룬테라’의 공식 유튜브 채널에 ‘룬테라 이야기’라는 콘텐츠가 정기적으로 업로드되고 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따로 설립해 제작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는 콘텐츠인데, ‘롤’의 세계관을 구체화하고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키 겠다는 라이엇 게임즈의 의지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본인이 플레이하는 캐릭터가 살아 숨 쉬고 움직이는 모습은 보는 건 해당 게임의 유저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기쁨이자 경험이다. 게임이란 단일 매체 속 요소들은 애니메이션으로 확장되어 유저들에게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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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조종하던 캐릭터들이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건 높은 몰입감을 준다.

 

 

라이엇 게임즈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보단 자신들이 이룬 IP를 적극적인 활용하기로 마음 먹었다. 일단 재료들을 왕창 만들어놨으니, 잘 조합해 유저들의 입맛에 맞는 햄버거를 제공하기로. 룬테라 이야기는 최상의 햄버거를 위한 초석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햄버거는 유저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되 일반 대중들도 부담 없이 즐길만한 well-made 햄버거다. 그렇게 6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최상의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가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만 만든 익숙한 맛의 풍성한 햄버거 세트라면, <아케인>은 라이엇 게임즈가 수년간 정성껏 만든 재료들을 갈무리해 만든 최초의 프렌차이즈 햄버거라 할 수 있다.

 

 

 

<아케인>, 롤 유니버스의 시작


 

<아케인>은 애니메이션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퀄리티를 보여줬다. 3D 모델링과 2D로 빚어낸 세계관은 매혹적이고,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로 담은 가상의 세계는 몰입하고도 남을 정도로 생생했다. 입체적인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첨예한 갈등은 몇 세기 동안 인류를 끌어당기는 완벽한 비극 서사를 만들었다, 오해와 딜레마 속에서 점점 절정으로 치닫는 이야기의 흐름은 매끄럽고 몰입감 있었다. 롤을 즐긴 유저들에겐 자신들이 플레이한 캐릭터들이 살아있는 인간처럼 번뇌하고 갈등하는 모습을 보며 게임 유저로서의 경험이 확장되는 경험으로. 하나의 대중작품으로 <아케인>을 본 대중들에겐 서사, 캐릭터, 세계관 삼박자가 완벽히 어울러진 걸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아케인>의 등장한 캐릭터들은 내가 주로 플레이하는 캐릭터들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바이, 징크스, 제이스와 같은 인물들이 게임에서 사용하던 기술을 작중에서 사용할 땐 묘한 쾌감이 느껴졌다. ‘알던 것’을 다른 매체에서 색다르게 ‘보는 것’은 기존의 IP에 익숙한 소비자만이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다. 게임에서 간접적으로 봤던 설정이나 아이템들이 등장하거나 텍스트나 일러스트로만 봤던 세계관(자운과 필트오버)을 생생하게 보는 건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같은 유명 소설이 영화화됐을 때 느끼는 숭고함과 유사하다. 거기에 유저들이 애정하는 캐릭터가 등장해 극을 이끌어 간다면 더욱이 몰입될 수밖에 없다. 소설이나 영화와 달리 게임은 유저가 직접 조종한다는 점에서 다른 매체가 가질 수 없는 인물과 유저의 일체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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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 아케인>

 

 

기존 캐릭터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의 완성도는 훌륭하다. 징크스와 바이의 연속적인 선택이 낳은 오해, 제이스와 빅토르, 하이머딩거를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나오는 도덕적 딜레마는 서로 맞물리며 애니메이션이 만든 세계관이 묵직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벤더와 실코 같은 오리지널 캐릭터들은 롤 캐릭터들의 서사적 공백을 완벽히 메꾼다. 동시에 인물들이 선택의 당위성을 부여하고, 그들 스스로도 입체적으로 변화하고 인물과 상황과 상호작용하며 개인의 서사를 개척한다. 빈틈없는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통해 세계관 속 사건과 인물들이 명확한 당위성 아래 흘러간다.

 

연출은 또 어떠한가. 6년이란 긴 제작 기간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로 압도적이고 강렬한 연출로 가득하다. 공을 들인 OST는 특정 신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압도적인 몰입감을 준다. 특히 ‘에코’와 ‘징크스’의 전투신은 <아케인>의 완성도를 한눈에 가늠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햄버거 엔터테인먼트가 종합적으로 작동한 장면이라 생각하는데, 에코와 징크스의 관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물론 ‘에코’라는 게임 캐릭터가 가진 능력 (에코는 ‘시간’을 역행하는 능력을 지닌 챔피언이다)을 연출로 보여줌으로써 기존 유저들의 경험을 애니메이션으로 가져왔다. 거기에 강렬한 비트의 음악은 에코와 징크스가 가진 스타일리쉬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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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 비해 바이는 내적 변화가 빈약하다..


 

아쉬운 점을 꼽자면 ‘바이’라는 캐릭터의 성장이다. 모든 사건의 중심에 있고 다채로운 사건을 경험하면서도 내적 성장이 전혀 없다. 폭력을 지양하고, 공동체의 보존을 위한 처세술과 리더쉽을 강조했던 벤더의 가르침이 무색하게, ‘바이’는 직선적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한다. ‘케이틀린’과의 러브신을 제외한다면, ‘바이’는 모든 갈등을 폭력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동생인 징크스나 동향 출신 에코와 비교하자면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인 인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징크스를 마주했을 때 바이가 보인 반응은 감정적인 호소밖에 없다. ‘여자친구랑 눈이 맞아서 자기는 안중에도 없지!’라고 절규하는 징크스의 행동이 납득이 갈 정도로 말이다. 후반부에 가선 목적을 상실해버린다. 징크스를 되돌리려는 것인지, 실코를 처치하고 자운을 정상화하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새로운 프렌차이즈의 등장



바이가 좀 아쉽긴 하지만, 거대한 이야기 흐름 속에서 감안할 수 있을 정도다. 나처럼 작정하고 비판할 구석을 찾지 않는 이상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중요한 건 <아케인>이 이룩한 성과다. ‘게임’을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 구현하려고 한 시도는 많았다. 게임, 소설, 애니메이션을 살아있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명암이 뚜럿하다. 기존 IP를 소비하던 대중을 고정 소비자로 유치할 수 있지만, 완성도의 문제, 기존 소비자와 불특정 다수 대중의 기대치를 만나게 하는 적절한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실패한다면, <카우보이 비밥 : NETFLIX>와 같은 엉망진창인 작품이 나온다.

 

<아케인>은 적절한 지점을 찾았다. 기존 팬들의 경험을 살리고, 적절한 팬서비스로 그들이 자신들의 IP에 보인 열정을 존중했다. 서사적 완성도와 연출, 캐릭터성을 견고히 만들어 대중적인 재미는 물론 애니메이션이란 예술을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인도했다. MCU가 DC코믹스에게 히어로 코믹스가 엔터테인먼트적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한 것처럼, <아케인>은 게임이란 매체가 제공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의 길을 보여줬다. 새롭게 탄생한 프렌차이즈 <아케인> 햄버거 세트가 보여줄 새로운 메뉴는 무엇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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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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