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기묘한 미술관 - 기묘한 도서관

글 입력 2022.01.03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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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가장 충격적이고도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모나리자 행방불명 사건이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의 시선을 이끄는 <모나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니? 가히 세상이 떠들썩해질만한 사건이다.

 

범인은 이탈리아 사람으로, 이탈리아 화가가 이탈리아 여인을 그린 작품이니 당연히 이탈리아에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저 <모나리자>를 고국에 돌려주려 했다는 범인의 주장은 슬프고도 아이러니하긴 하다. 결론적으로 범인은 징역형을 받고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 사건은 아직까지 명화 속 뒷이야기의 최고로 손꼽힌다.

 

<기묘한 미술관>은 코로나로 인해 일부가 제한된 시기에 맞춰 시작된 상상 속 미술관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여행을 하기도, 미술관을 자유롭게 관람하기도 힘든 이 시기에 흩어져 있는 명화를 한자리에 놓고자 했다. 이 책은 작품만 나열해 놓은 것이 아니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미술사, 작품의 사조와, 화풍, 기법 등도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명화의 뒷이야기를 좋아하는데, 문화를 자유롭게 향유하지 못하는 이 시기에 소설보다 재밌는 이야기들로 웃음 짓는 순간이 많아지길 고대한다.
 
 

 

시체를 찾아다닌 화가, 제리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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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르 제리코, <메두사 호의 뗏목> 1818-1819

 

거대한 해일에 둘러싸여 표류 중인 사람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아비규환이다. 어떤 사람들은 위태로운 상황에 포기한 표정을 하고 있고,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사람들, 넋이 나가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아래로 깔려있는 시체들이 보인다.

 

이 작품은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이다. 그리고 그림 속 모습은 실제 사건이다. 나폴레옹의 제정 시대가 무너진 후 프랑스 왕실은 세네갈을 재정비하기 위해 원정대를 꾸리는데, 20년간 항해하지 않았던 선장의 과욕으로 인해 배가 좌초된 사건이다. 이로 인해 150여 명의 선원들이 뗏목에 버려졌으며 그 속에서 끔찍하고 무자비한 폭동이 이어졌다. 작품은 그날의 일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선명히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제리코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실제 제리코는 작품에 넣을 시체를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영안실을 계속적으로 방문했다고 한다. 시체의 일부를 본인 작업실에 가져다 두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바다에서 표류하는 느낌을 경험하기 위해 노르망디 바다에서 폭풍을 관찰하며 영국 해협을 건너기도 한다. 지인들을 초청해 직접 포즈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니, 그의 노력과 열정, 예술혼이 한껏 느껴진다.
 
구조선을 발견한 사람들의 격렬한 움직임과 과감한 신체 표현, 원근법 표현은 뗏목과 구조선이 서로 멀어지는 듯한 착각에 들게 한다. 당시 사람들은 작품을 보고 그림의 기법과 근대성에 큰 호감을 표현했으나 고전주의 작품을 옹호하는 사람들과 사건을 감추려는 정부의 입장에서 불편한 그림이었기에 큰 환영을 받지는 못했다.
 
개인적으로 제리코의 짧은 생이 매우 아쉽다. 극사실적인 표현과 대담했던 구도, 강렬한 명암 등 그의 천재성이 발휘되었던 작품은 단 한 점이었다. 테오도르 제리코는 까다롭고 딱딱한 고전주의보다는 인간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예술가였다.
 
 
 
자신의 초상화를 거절한 코코 샤넬, 마리 로랑생

 

화가에게 그림이 되돌아왔다.
 
화가는 마리 로랑생, 20세기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다. 그녀는 피카소의 소개로 기욤 아폴리네르를 만나면서 화풍의 변화를 겪었다. 본래 어둡고 우울한 고독과 슬픔들이 묻어나는 화풍이었다면, 교제 이후에는 색감이 밝고 단순한 개성 있는 그림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마리 로랑생의 <자화상>과 <예술가들의 집단>을 비교해 보면, 선과 색채의 변화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화가의 그림을 거절한 인물은 바로 현대 여성 패션계를 대표하는 가브리엘 사넬이다. 장 콕토의 소개로 알게 된 로랑생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부탁하지만, 그녀는 초상화를 받자마자 돌려보낸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화>를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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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로랑생, <마드모아젤 샤넬의 초상화> 1923

 

 
초상화에서 샤넬은 하얗고 투명한 얼굴에 한 쪽 어깨를 드러내고 앉아있다.
 
유령처럼 창백하고 가녀린 몸, 아래를 지긋하게 내려다보는 시선이 마치 고단하고 지친 느낌이다. 목에 두른 검은 스카프와 그녀의 무릎에 앉아 있는 개의 모습도 우울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파스텔 톤의 색상으로 로랑생의 시그니처 스타일의 작품이나, 샤넬은 작품 속 모습이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림을 거절했다고 한다.
 
샤넬은 진취적인 여성을 대변하려 했던 인물이었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로랑생의 화풍과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다만 처음부터 그녀의 화풍을 알고 있었을 텐데 의뢰한 것에 의문이 든다. 로랑생 또한 우울함을 특히 강조했는데, 아마 같은 여성 동년배로서 성공을 향해 쉼 없이 달리던 샤넬의 감춰진 외로움을 위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미술관에서 직접 명화를 감상하면서 실제 화풍을 가까이에서 보기 때문에 큰 감동을 받는다. 옆에 작품 설명을 통해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작품을 이해하면서 오래도록 기억한다.
 
<기묘한 미술관>이라는 상상 속 미술관은 책이라는 매개체로도 이를 모두 만족하게 했다. 특히 미술관에서도 볼 수 없는 명화가 숨겨둔 이야기를 재밌는 필력은 단숨에 읽혀 작품을 각인시켰다.
 
전공이 역사학이라 역사적으로 관련이 많은 작품은 유독 곱씹어 읽게 된다. 그리고 잘 알려진 명화라도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발견할 때가 너무 좋다. 비밀스럽고 기묘한 누군가의 이야기를 찾아낸 것 같아서 말이다.
 
모든 예술이 아름답진 않다. 겉으로는 아름다울지라도 삶과 죽음, 시련과 좌절, 추함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 속에 더러움이 있을지라도 결국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우주를 표현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예술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던지려 했는지,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려 했는지 말이다.
 
 
 

컬쳐리스트 황희정.jpg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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