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또 다른 빛을 향해 – 샤갈 특별전 [전시]

Chagall and the Bible 샤갈 특별전
글 입력 2022.01.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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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들은 한 사람의 꿈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꿈을 표현한 것입니다

 

- 샤갈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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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시로 세이지 전시에서 성서를 주제로 한 샤갈의 작품을 스쳐봤던 것이 전부였다. 따로 종교가 없었던 나에게 성서란 묵직하고 고귀한 이야기로만 여겨져 이를 작품으로 담은 것이 신기할 뿐이었다.
 
샤갈 특별전을 감상하기 전 그의 작품을 가볍게 보았다. 가장 독특했던 것은 화풍의 특징이다. 또한 다양한 배경을 모티프로 삼은 것, 성서의 대부분 장면을 작업한 것이 굉장히 놀라웠다. 낭만적인 광경을 다채롭고 몽환적인 색채로 연출해낸 그의 작품들이 매우 기대되었다. 길고 긴 성서의 장면 장면을 어떻게 연출해 내었을지도 궁금했다.
 
 

 

SECTION 01 샤갈의 모티프


 

1956년경부터 제작된 샤갈의 석판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에칭 기법을 사용한 것이 인상적인데, 부식 작용을 이용한 판화의 일종이기에 여러 작품을 찍어낼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판화이기에 투박하지만 선명한 색채에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이 섹션에서는 샤갈이 주로 다뤄온 모티프인 자화상, 마을, 색채, 연인, 파리 등의 키워드로 나누어 그들이 상징하는 바를 탐구한다.

 

 
02. 투르넬 강변 〈파리를 향한 시선〉 (1).jpg
투르넬 강변 (파리를 향한 시선) 1960 ⓒ마이아트뮤지엄

 

 
위 작품은 샤갈이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프랑스 파리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파리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야수파, 입체파 등의 모더니즘 회화를 접하면서 점차 예술적 정체성을 찾아갔다. 투르넬 강변을 통해 낭만적인 파리의 광경을 선보인 이 작품은 마르크 샤갈이 어떻게 파리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우측엔 예수를 연상하게 하는 푸른빛의 인물이 십자가에 걸려있으며, 붉은빛의 모녀가 좌측 아래에 위치해있다. 좌측 위엔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껴안고 있다. 암울하지만 성스러운 구도로 인해 작가가 바라보는 프랑스 파리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샤갈의 운명론적 분위기가 압도적인 작품이었다.
 

1910년 파리에서 저는 반고흐와 쇠라에 열광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프랑스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저를 놀라게 했고, 시장, 나무 위, 구름과 사람들 사이로 떠도는 저에게 이 도시의 분위기는 생동감이 넘치는 팔레트와 같이, 삶 그 자체처럼 느껴졌습니다.


- 마르크 샤갈

 
 
 
SECTION 02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

 

예루살렘의 첫 방문과 성서 삽화 작업을 시작으로 샤갈은 성서라는 모티프를 적극적으로 탐구했다. 이 섹션에서는 예루살렘의 전경과 구약성서에서 선별한 105점의 장면을 에칭 기법으로 작업한 연작을 볼 수 있다.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하는 모습부터 이집트의 재상이었던 요셉, 이스라엘 민족을 구한 모세의 이야기 등이 연결되어 있다. 성서라고 해서 화려하게 꾸미거나 과장하지 않고 평범한 일상에 장면을 더해 완성해간 것이 큰 특징이다.


 
04. 모세.jpg
모세 1956 ⓒ마이아트뮤지엄

 

 
모세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연작 일부분의 표지인데, 각 성서의 이야기 중에 샤갈이 어떤 장면을 선별했고, 또 그 장면을 어떻게 생동감 있게 묘사했는지 주목하고자 했다. 석판화의 간결하고 자유로운 선과 색채가 샤갈의 독창적인 화풍을 드러낸다.
 
방주를 만들어 인류를 구한 노아, 아브라함, 이사악, 열두 지파의 아버지 야곱, 이집트의 재상 요셉, 홍해를 가른 모세, 가나안을 정복한 군사 여호수아, 솔로몬 왕의 지혜 등 성경에서 글로만 읽었던 부분을 연이어 감상할 수 있었다. 마치 오래된 그림 동화책의 서정적이고 교훈을 주는 느낌이랄까.
 

저는 예루살렘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 땅을 어루만지고 싶었죠. 저는 이런 확실한 감정들을 카메라도 없이 붓도 두고 온 채로 확인하러 갔습니다. 그곳에 갔던 경험을 굉장히 만족스러웠지만 저는 어떠한 기록도, 관광객으로 받은 인상도 적어두지 않았습니다.


- 마르크 샤갈

 
 
 
SECTION 03 성서적 메시지

 

1930년대 후반부터 유대인 집단 학살을 목격해야만 했던 샤갈은 큰 충격을 받는다. 자연스레 그의 그림은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전쟁과 유대인의 운명을 주제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특히 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유대인의 희생과 결부 지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는 탈출기를 나치의 핍박으로부터 해방된 유대인들로 재해석한 부분이다.
 
샤갈이 동시대에 겪은 삶과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성서를 통해 재해석한 부분을 볼 때마다 왜 샤갈이 독보적인 예술가의 위치를 오를 수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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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다윗 왕 1967 ⓒ마이아트뮤지엄

 

 
다윗은 체구의 열세를 딛고 골리앗을 이긴 전략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울 왕을 이어 왕위에 올라 민족 영웅이 되었지만, 우리야 장군의 아내 밧 세바에 마음을 빼앗긴 다윗은 우리야를 전쟁터에 내보내고 밧 세바를 후궁으로 맞이해 첫 아들을 얻었지만 신의 노여움으로 잃고 만다.
 
샤갈이 작품에 주로 등장시키는 인물은 바로 다윗 왕이다. <푸른 다윗 왕>에서 다윗 왕은 아들의 반역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잊기 위해 음악을 연주하며 하늘을 수놓고 있다. 샤갈을 이 작품을 통해 나치로부터 고통받는 유대인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것에 대입했다고 한다.
 
왕관을 쓰고 하프를 켜는 모습의 다윗 왕은 샤갈이 유독 애정을 많이 쏟은 인물이다. 석판화로도 다윗을 표현한 작품들을 보면 마치 암울한 시대를 보듬는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성서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것이 역대 가장 위대한 시의 원천이라고 생각해왔고 지금도 생각합니다.
 
 
 
SECTION 04 또 다른 빛을 향해

 

종전 후, 남프랑스에서 노년을 보내며 작업을 이어갔던 샤갈의 행보가 담겨 있다. 샤갈은 예술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를 이어나갔으며,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하기도 했으며, 책 삽화 작업을 위한 석판화에 매진하기도 했다. 특히 신약성서에 대한 관심과 믿음은 노년 작품에도 반영된다. 자신의 삽화를 엮은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샤갈의 예술적 창작욕을 맘껏 느껴볼 수 있는 구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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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머니 1968 ⓒ마이아트뮤지엄

 

 
나의 어머니

만약 당신이 나의 어머니라면, 나의 도시여
당신의 아들은 멀리 있네
나의 색들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당신의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하고 있네

나의 어머니, 나는 그녀가 보이네
그녀는 문지방에서 나를 기다리고
그녀는 나에게
또 다른 희미한 운명을 물려주셨네

만약 당신이 나의 어머니라면, 나의 도시여
나는 이방인으로 남겠네
강물이 녹고 구름이 바뀌어가는 것을
당신은 보지 못하네

문 앞에는 나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네
그녀 곁에서 나는 희망을 배웠네
그녀의 가슴에서, 내 꿈은 키워졌고
밤낮으로 나를 위해 기도하셨네
 
 
샤갈이 자신의 고향을 자신의 어머니에 빗대어 고향에 대한 향수를 표현했다. 그는 동료 예술가들과 갈등을 빚고 러시아를 영구히 떠나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다. 시를 통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그의 애석한 마음이 물씬 느껴진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고마움과 애정을 드러내면서 고향의 존재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어머니가 자신을 품에 안고 다독이는 모습 뒤로 예수의 모습과 시계가 보인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과 푸근함이 가득 느껴진다. 그에게 있어서 러시아와 프랑스는 어머니이자, 그 자신이었으며 예술혼이 불타올랐던 그의 열정을 담아낸 장소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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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색, 뭉툭하고 과격한 선, 몽환적인 화풍. 샤갈은 위대한 예술가이자 이야기꾼이었다.
 
그는 평범한 삶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파하여 전쟁과 학살로 고통받는 인류에 위로를 전하고자 했다. 전시를 감상하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열정은 누구도 막아내지 못했을 거라는 것, 샤갈처럼 나는 좋아하는 것과 끌리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열정을 불태운 적이 있었나? 암울의 시대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었음에도 그는 생의 마지막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그의 독창적인 삽화도 그렇지만, 성서의 장면들을 재해석한 것은 잊히지 않는다. 그 시대에 살고 있던 역사적 인물들에 감정을 넣고 현대사의 족적과 연결 지은 것이 매우 인상적이다.
 
숨 돌릴 틈도 없었던 전시였다. 그만큼 작품과 뒷이야기의 양이 방대했기 때문이다. 아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창작욕이 어마 무시했던 그의 인생은 뜨거운 열정 그 자체였다.
 
만약 제가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컬쳐리스트 황희정.jpg

 

 

[황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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