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세상을 사랑한 화가, 샤갈 - 샤갈 특별전 : Chagalll and the Bible [전시]

샤갈의 그림을 통해 보는 그의 일대기
글 입력 2021.12.31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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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jpg

 

 

내가 화가의 일대기를 읽거나 작품을 보며 종종 했던 생각은, 거의 모든 화가들이 그림에 대해 정말로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대가들이 자신의 직업에 진심을 다한다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도 하겠으나, 나는 항상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했고, 그게 부럽기도 했다. 이번 전시장에서 샤갈의 작품을 보는 동안에도 나는 내내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림과 삶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아 거의 죽기 전까지 그림에 매진했던 화가 샤갈의 이야기가 마이아트뮤지엄이 개최한 <샤갈 특별전 : Chagalll and the Bible>에서 그의 일대기를 따라 전개된다.

 

샤갈은 그만의 독창적인 화풍과 소재로 미술사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어떠한 종파에도 속하지 않으며, 자신만의 다채로운 색감과 몽환적인 화풍을 이용하여 삶과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메세지를 전파하고자 했다. 이 단순하지만 본질을 꿰뚫는, 동시에 독창적으로 아름다운 그의 작품이 샤갈이 20세기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하나로 여전히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마이아트 뮤지엄'은 화가 샤갈에게 가장 중요한 예술 창조의 원천이었던 ‘성서’를 주제로 하여, 4가지 섹션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1부 : 샤갈의 모티프

2부 : 성서의 백다섯가지 장면

3부 : 성서적 메세지

4부 : 또다른 빛을 향하여

 

 

 

1부 : 샤갈의 모티프 (motif of chagall)


 

전시 제 1부에서는 샤갈의 작품 내에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인 요소인 연인, 동물, 악기 등의 주요 모티프들을 통해 그의 삶을 살펴본다. 또한 샤갈이 제 2의 고향으로 여기며 온 마음을 다한 찬가를 표현했던 도시 파리의 낭만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우리가 샤갈의 작품을 떠올릴 때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되는 것은 분명 중력의 힘을 받아 바닥에 붙어있어야 할 오브젝트들이 하늘에 둥둥 떠있는 그런 장면들이다. 샤갈과 함께 작업하던 이들은 그에게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는데, 그의 그림의 배경이 되는 각 모티프들이 가지는 함축성 때문이었다. 도슨트(화가 윤석화 님)의 설명을 통해 화가의 일대기를 듣고나자,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다양한 오브젝트들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01. 에펠탑의 연인들, 최종본.jpg

<에펠탑의 연인들 (1960)>

 

 

“만약 제가 유대인이 아니었더라면, 저는 예술가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적어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예술가가 되었을 것입니다.”

 

샤갈은 러시아 제국의 도시였던 비테스크의 독실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는 다양한 방면으로 샤갈의 예술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그 지점들은 작품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샤갈이 러시아의 유대인이었다는 점은 화가로서의 삶에 큰 제약을 가져왔는데, 그곳에서는 유대인들이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예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특징은 화가가 평생 이주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도록 했으며,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고향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다. 샤갈은 고향이 아닌 곳에서 수없이 반복하여 고향을 그렸고, 그렇게 해서 그의 그림 속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인다. 이는 그의 작품 전반에 깊은 슬픔이 내재되어 있는 가장 근본적 이유이다.

  

또한 샤갈이 유대인 중에서도, 모든 사물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하시드파'라는 점도 작품 세계의 본질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데, 그의 이러한 신념이 화가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류에 대한 애정과 일맥상통하기 떄문이다.

 

이렇게 해서 샤갈의 그림에는 유대교의 촛대가, 유대교의 인륜지대사를 함께한다는 바이올린이, 유대 문학의 뿌리인 날아다니는 동물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리고 그림의 배경으로 그의 고향 비테스크가 그리움의 대상으로, 이주를 반복하던 샤갈의 제2의 고향과도 같던 프랑스 파리가 환상의 공간으로 등장한다.

 

 

 

2부 : 성서의 백다섯 가지 장면 (105 scenes of bible)


 

제 2부에서는 샤갈이 전하는 성서적 메시지를 만나본다. 신의 인간 창조, 아담과 이브, 인류 최초의 살해 아벨과 카인, 신비로운 예지몽을 꾸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는 요셉, 삼손과 들릴라 등 25년에 걸쳐 만들어진 105점의 장면의 구약성서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본격적으로 2부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슨트는 샤갈의 성서를 종교가 아닌 예술의 시선으로 보아주기를 바란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나도 종교가 없으며 성경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화가의 입장에 몰입하여 작품을 감상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샤갈에게 성서는 가장 중요한 창조의 원천과도 같았다. 화가는 성서의 장면을 인간 삶의 희로애락에 비유하여 인간적 관점으로 전달했다. 샤갈이 그린 성서의 이야기에는 당대 그들이 겪은 두번의 세계대전과 수없는 학살을 통한 인류의 고통과, 그들을 깊이 아끼는 화가의 마음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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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1956)>

 

  

샤갈이 모세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세는 그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는 탈출기(출애굽기) 일화의 십계명을 받은 모세는 샤갈의 작품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제다. 샤갈은 이 탈출기의 일화를 나치의 핍박과 전쟁으로부터 해방된 유대인들로 은유하여 표현했다. 이렇게 샤갈은 다양한 모티프를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 구약성서를 초월하여 현실의 민족의 고난과 희생까지도 작품 속에 등장시켰다.

 

 

 

3부 : 성서적 메시지 (biblical message)


 

성서에 나오는 주요 사건과 인물을 모티프로 샤갈이 자신만의 해석을 담아 그린 작품들이다. 십자가에 박힌 예수 그리스도,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탈출하도록 이끈 모세, 다윗과 골리앗, 지혜로운 솔로몬 왕 등을 유화, 과슈, 석판화 그리고 대형 태피스트리까지 작품의 매체의 경계를 넘어 한 자리에 모았다.

 

샤갈은 러시아계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히틀러의 인민 사회주의 나치즘으로부터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혔다. 그 과정에서 교회에서 화가의 작품이 철거되는 등의 탄압을 겪어야 했으며, 이후에는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망명을 가야만 했다. 계속되는 탄압 과정과 유대인 집단 학살을 겪으며, 샤갈의 그림은 점차 어두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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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슭에서의 부활 (1947)>

 

 

미국으로 망명을 간 샤갈은 유대인에 대한 핍박을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모티프로 하여 남겼다. 그는 때때로 자신과 유대인들을 예수에 이입하기도 했다. 화가가 성서를 그렇게 해석한 의도에는 유대민족들이 전쟁과 학살에서 겪은 고통을 모두 딛고,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가 돌아왔듯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강한 믿음이 담겨있다.

 

 

 

4부 : 또 다른 빛을 향하여 (towards another light)


 

샤갈의 다방면의 행보와 마지막 열정을 탐구한다. 시와 함께 석판화에 그린 종교, 어머니 등 다양한 주제를 바탕으로 그려낸 아름다운 삽화들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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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빛을 향하여 (1985)>

 

 

또 다른 빛을 위하여 (1965)

 

신이시여, 당신이 제 영혼에 부여한

또 다른 빛을 위해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당신이 제 영혼에 부여한

고요함을 위해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밤이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날이 밝기 전에 제 눈을 감게 할 것이고

그리고 저는 하늘과 땅 위해

당신을 위한 그림을 다시 한번 그릴 것입니다.

 

샤갈은 전쟁이 끝난 후, 남프랑스에서 정착해 노년을 보내며 계속해서 다방면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화가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고, 책 작업을 위한 석탄화에 매진했으며, 모자이크, 도자기, 벽화, 천장화까지 다양한 매체를 통한 작업을 시도했다.

 

작품 <또 다른 빛을 향하여>는 화가가 일흔 여덟이 되던 해에 그린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의 예술에 대한 열망이 노년기에도 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다. 노년기의 샤갈은 아직도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많은 화가였다.

 

*

 

샤갈의 예술에 대한 열망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샤갈은 그의 작품 인생 내내, 유대인으로서, 모더니스트로서, 이주민으로서 소외된 자들의 고통과 절망을 그려왔다. 그러나 이 소외와 고통 속에서도 그의 결론은, 그럼에도 삶이란 살아갈 만 하다는 것이었다.

 

샤갈의 그림의 동력은 사랑이었다. 화가가 지키고 싶었던 신념들이 전쟁을 통해 모두 무너졌지만 그가 쉽게 세상을 끝낼 수 없었던 이유 또한 그가 인간과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샤갈은 세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에게 그림은 세상과 소통하기 위한 수단과도 같았다.

 

"모든 생명이 필연적으로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그것을 물들여야 합니다."

 

마지막장까지 세상에 대한 애정이 담긴 작품들로 채워진 이번 전시가 추운 겨울 관람객들의 마음의 온도를 조금은 올려주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

 



[신지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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