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이밍을 지켜라 [영화]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
글 입력 2021.12.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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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기 완벽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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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보게 된 영화에 푹 빠질 때가 더러 있다. TV 채널을 돌리다가 무심코 발견한 낯선 제목의 영화들은 마치 강렬한 섬광처럼 번쩍이며 나를 압도하곤 한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유쾌하게 그리고 때로는 에로틱하게 화면 속에서 움직이는 사진들은 과하지 않은 몸짓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속삭이고 결국 나는 들고 있던 리모컨을 천천히 내려놓고야 마는 것이다.

 

인생은 타이밍!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말마따나 영화 역시도 타이밍이다. 오죽하면 관람시기를 조정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나름 최근(7월)에 개봉했던 영화 <모가디슈>(2021) 역시 개봉 당시 코로나19로 인해 극장 관람객 수가 하락하면서 그 흥행 여부가 모호했으나, 개봉 이후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과 같은 국제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장기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대단히 잘 만든 영화에도 타이밍이라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인데, 여기서 말하는 타이밍이란 바로 영화를 보게 만드는 타이밍이다.

 

*

 

고등학교 3학년 시험기간, 모두가 잠든 새벽에 혼자 깨어 있던 나는 귀신이 무서워 거실에 있던 TV를 켰다. 공부도 하기 싫었겠다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가다 멈춘 곳은 한 영화 채널(OCN이었던가?)이었는데 마침 영화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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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편지들이 한바탕 휘날리고, 앳된 얼굴을 한 배우 손예진이 집안으로 들어온 새들을 다 쫓아내고 난 뒤 들고 있던 편지를 읽어 내려간다. 편지 낭독 내레이션이 조승우의 목소리로 바뀌면서 영화는 자연스럽게 장면을 전환해 나간다. 그날 새벽 2시 내가 우연히 발견한 영화는 소설 <소나기>를 연상케 하는 한국 고전 명작 로맨스 영화 <클래식>(2003) 이었다.

 

새벽 감성이 활발해지는 시간대에 시험공부를 하라니 말이 되나. 뭘 해도 재미있을 타이밍에 18살 소녀에게 주어진 로맨스 영화는 마시멜로 따위로는 감히 대적하지 못할 막대한 존재였다. 영화를 보고 싶다는 욕구와 시험공부라는 현실과의 타협 끝에 나는 영화가 방영되는 2시간 동안 펜을 들고 TV 앞에 섰다 의자에 앉았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소파에 정착하게 되었다는 결말이다.


*

 

이 이전 이미 난 영화에 빠져 현실을 제쳐둔 전적이 있는데, 아주 옛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야기다. 학원 등원하기까지 시간이 조금 많이 남았던 시점에 TV 채널을 마구 돌리다 우연히 한 일본 영화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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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얼굴에 개구리처럼 큰 눈을 한 여인과 양복쟁이 아저씨라는 요상한 조합에 조금 묘한 눈길로 지켜보기를 수십 분, 어느새 코가 TV에 닿을 듯 얼굴은 앞으로 바짝 당겨져 있고 괜스레 내 마음은 어벙한 얼굴을 한 양복쟁이 아저씨를 응원하고 있었더랬다.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달려가는데 학원에 가야할 시간은 다가오고, 지금 나가야 늦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저 아저씨가 무사히 춤을 추게 되는지가 궁금하고, 이토록 어려웠던 선택의 순간이 있었던가.

  

물론 결국 엔딩 크레딧이 오르는 것까지 지켜봤다. 양복쟁이 아저씨의 아내와 똑같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다가 시간을 확인하곤 흐르던 눈물이 쏙 들어갈 정도로 헐레벌떡 학원까지 뛰어간 그 경험이 내 인생 첫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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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반전이나 긴장감 없이 당시 일본의 시대상을 반영한 잔잔한 일본 영화인데 그때는 그게 왜 그리 보고 싶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은 에로틱한 면이 있었다. 일단 유부남이 처음 보는 여자에 눈길을 준다는 것 도 그렇고, 같이 사교댄스를 춘다는 설정도 그 당시 내겐 파격적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춤바람 난다고 하지 않는가. 어린아이에겐 나름 자극적인 맛이었다. 그리곤 영화 제목을 알지 못해 성인이 될 때까지 개구리 같은 여자가 나오는 영화로 기억하고 있었지만 꽤 오랫동안 간간이 생각날 만큼 대단히 잘 만든 수작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동기는 시간에 쫓기는 촉박함이었을 것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야 하는 현실을 조금 비틀어 냄으로써 묘한 쾌감과 긴장감이 영화에 부여됐고 그 덕분에 영화를 더 집중해서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게 분명하다. 그 순간을 단연코 영화 <쉘 위 댄스>를 보기 완벽한 순간이었다 말할 수 있겠다.


- 영화보기 완벽한 순간 끝

 

 

 

감독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조금 더 나아가서 영화에 더 빠져들게 만드는 순간이 뭐가 있을까. 어쩌면 이런 경우도 있을 것 같다. 감독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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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들의 첫 작품은 그들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응축시켜 놓은 집합체 같아 보인다.


영화 <라스트 레터>, <하나와 앨리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을 아는가? 이 모든 영화들을 빠짐없이 챙겨 본 이라면 분명 영화 <러브레터>도 알 터이다. 감독을 본 떠 만든 듯한 첫 작품은 곧 감독의 세계 그 자체이다. 영화 <러브레터>가 ‘이와이 슌지’라는 장르를 만들어내고 수많은 팬들을 양성한 것처럼 그리고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면 어김없이 홍상수 감독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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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은 또 어떠한가. 그의 첫 장편 상업 영화 <플라다스의 개>(2000)에도 역시나 사회비판적 견해가 담겨 있었지만 조금은 창의적인 방식이다. 그에 앞서 영화 <지리멸렬>(1994)이 있다.

  

총 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해당 영화는 교수, 신문사 논설위원, 검사 등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인물들을 각각의 에피소드 속에 풍자적으로 그려낸다. 교수는 야한 잡지를 즐겨보며 여대생을 보고는 음흉한 상상을 하고, 신문사 논설위원은 남의 집 우유를 매일 아침 훔쳐 먹고, 검사는 술에 취해 길가에 용변을 본다.

 

이처럼 사회적 권력에 대한 비판에 익살을 더한 그의 방식은 과거 첫 작품에서부터 이어져왔다. 해당 작품을 인상 깊게 본 이들이 어떤 행동을 하겠는가. 자연스럽게 영화를 검색하고, 감독을 알아보고, 감독의 작품을 정주행 하면서 사랑에 빠지는 루트를 타게 되는 것이다.

 

*

 

또 다른 예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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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 건 영화 <어느 가족>(2018) 이었다. 영화는 물건을 도둑질하고 할머니의 연금으로 살아가는 어느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가려지고 감춰진 빈곤 사회 현실을 꾸준히 주목해온 감독의 시선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1991년 그가 감독으로 데뷔했던 다큐멘터리 <그러나 복지를 버리는 시대로>가 일본 복지제도를 고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영화 <어느 가족>(2021)을 계기로 시작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덕질은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바닷마을 다이어리>,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무도 모른다> 등 그의 영화 탐닉하기를 거쳐, 자서전 읽기, 소설로 읽기를 지나 각본집 구매에 이르게 되었다는 결말이다.

 

- 감독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끝

 

 

 

덕질하기 좋은 순간


 

작년 영상편집 수업을 듣던 때이다. 당시 수업에서 3분짜리 단편영화 만들기가 과제로 주어졌었다. 스토리보드를 미리 제출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막연히 인터넷을 뒤적거리다 우연히 영화 <기생충>(2019) 각본집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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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본집에 스토리보드북까지 세트로 묶어 파는 상품을 재빨리 구매하고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영화에서 나온 장면과 다른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로 읽고, 각본과 비교해가며 보고, 과제에 참고하면서도 보고, 나중에는 그냥 만화책 읽는 기분으로 읽기도 했다.

 

이미 오래전 상영은 끝이 났지만 영화를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지 인터넷이나 TV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다. 다만 아날로그 인간인 나는 여전히 손에 오래도록 남는 것이 좋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보단 인화한 사진이 더 오래도록 함께하듯, 영화 또한 한 권의 책으로 남아 만져지는 물질로서 영원하기를 내심 바란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이전에는 소장과 공부용이었다면 이번에는 덕질용이다. 내가 가장 애정하는 감독님의 영화를 손안에 영원히 간직해야겠다. 최근 코로나로 도서관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온라인 서점을 자주 방문하고 있는데 그러다 엄청난 걸 발견했다. 기생충 각본집을 제작한 회사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을 각본집으로 제작 출간한 것이다! 그것도 한 권이 아니라 여러 권! 올 11월엔 영화 <어느 가족>의 한/일 각본집이 출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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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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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보이>블루레이, <아가씨>, <캐롤>, <한여름의 판타지아>, <윤희에게> 그리고 최근에는 <센트럴파크 단편선 Vol.1>까지 아니 이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을 블루레이로 만든 곳이다. 영화 덕질을 해온 이들이라면 이 곳을 알고 있을 터이다. 블루레이와 각본집 외에도 영화 굿즈를 제작하거나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팬이라면 한 번쯤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소장 욕구가 마구마구 일어날 수 있으니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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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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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위에서 언급한 <센트럴파크 단편선 Vol.1>에 나오는 "센트럴파크"는 독립영화 배급사이다. 영상편집 수업을 들으면서 나름대로 마음 한편에 간직해 둔 꿈이 있다면 그건 바로 독립영화 예고편 만들기이다. 최근엔 독립영화 포스터를 만들어보자는 마음이 일어 사이트 이곳저곳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곳들을 헤집고 다녔지만 마땅한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곳이 바로 이 "센트럴 파크"이다.

 

"2010년부터 단편영화를 국내외로 소개해 온 독립영화배급사이다. 2014년 이후로 장편영화 제작 등 업무를 확대하고 있으며, 단편영화의 지속가능한 활로를 찾는다는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센트럴파크는 여전히 작고 가까운 회사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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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허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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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영화를 볼 수 있는 적절한 사이트는 없는 건가 싶은 순간 이전부터 꽤나 자주 눈에 띄던 한 사이트가 떠올랐다.

 

기말시험을 위해 필수로 관람해야 하는 영화를 구글링할 때마다 늘 한 번씩은 씨네 허브 사이트를 들어갔다 나왔다. 다만 그때는 가능한 익숙한 사이트,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돈을 내고 보기를 원했기 때문에 해당 사이트에서 영화를 관람한 적은 없었다.

 

이제야 알았다고 해도 뭐 어떠한가. 어떤 다양한 영화가 있을지 기대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차근차근 페이지를 돌아보고 그 안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두 번 보고, 어쩌면 나중엔 독립영화에 대한 글이 올라올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더 나중에는 제작한 포스터를 자랑할 수도 있는 일이고. 그리고 결국엔 세 번째 단계까지도 가는 걸까...

 

- 덕질하기 좋은 순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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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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