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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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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레이(Man Ray, 1890-1976)
루시앙 뒤카스의 수수께끼(L'enigme d'Isidore Ducasse), 1920(1971) 
혼합재료, 99 x 29,5 x 31,5 cm
© MAN RAY TRUST/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만 레이의 작품 ‘루시앙 뒤카스의 수수께끼’다. 이 작품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을 나열하면 비슷한 결론들에 다다를 것이다. 짙은 고동색의 덮개, 거미줄처럼 동여맨 끈, ‘건드리지 마시오’의 의미를 공유하는 세 언어, 그리고 ‘알 수 없음’으로 설명될 물체. 작품을 만든 만 레이나 수수께끼의 출제자로 추정되는 루시앙 뒤카스가 아니고서야 덮개 아래로 놓인 것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감춰진 물체를 제쳐두고 이 작품을 논할 수도 없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함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지금부터는 눈을 달리 사용한다. 감각 뒤편의 직관과 상상의 눈을 뜨고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다.

 

이 작품을 가장 먼저 소개한 이유는 글의 주제가 될 초현실주의를 닮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초현실주의는 문명과 과학 그리고 논리에 대한 회의감을 불러온 1차 세계대전 이후 비이성과 비합리성을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미술 운동 다다이즘의 여파로 나타난 미술 사조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프란시스 피카비아는 “나의 사고는 이성에 반대하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미술 운동의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는데, 다다이즘은 아름다움 자체를 부정하고 반예술·무정부주의적 색채를 띠었던 반면 이후의 초현실주의는 예술을 통해 무의식과 욕망의 세계를 발견하고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아름다움을 지향했다는 점이다.

 

전시 <초현실주의 거장들 :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 걸작전>는 마르셸 뒤샹,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호안 미로, 만 레이, 막스 에른스트, 이브 탕가를 포함한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원화를 직접 볼 수 있는 전시다. 본 전시는 인상주의와 초현실주의 컬렉션으로 독보적인 보이만스 판뵈닝언 박물관의 소장품 총 180여 점으로 이루어지며, 2021년 11월 27일부터 2022년 3월 6일까지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진행된다.

 

전시는 1섹션의 초현실주의 혁명, 2섹션의 다다와 초현실주의, 3섹션의 꿈꾸는 사유, 4섹션의 우연과 비합리성, 5섹션의 욕망, 6섹션의 기묘한 낯익음, 총 여섯 개의 섹션으로 구성된다. 파랑, 청록, 보라, 빨강, 노랑 등 각기 다른 색으로 각 섹션을 이미지화함으로써 주제를 직관적으로 표현한 공간 디자인이 감상에 녹아듦을 경험하는 것 또한 묘미다.

 

사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수수께끼는 ‘어떤 사물에 대하여 바로 말하지 아니하고 빗대어 말하여 알아맞히는 놀이’다. 작품을 ‘건드리거나’ 끈을 ‘풀어헤치거나’ 또는 덮개를 ‘벗기지’ 않도록 하자. 암호를 해독하듯 사유하고 통찰의 눈으로 작품을 들여다보자. 그것이 초현실주의 거장들의 수수께끼를 즐기는 데 가장 어울리는 놀이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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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린 아거(Eileen Agar, 1899-1991)
앉아있는 사람(Seated Figure), 1956
캔버스에 유채, 184 × 163 cm
Photo ©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위 작품은 에일린 아거의 ‘앉아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림 속의 형상이 앉아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할 것이다. 쌓아놓은 물건 더미 같기도 하고 인간의 신체를 연상시키는 부분들도 분명 존재하다만, 정답이라 부를 것이 없다. 정답을 찾아서 작품을 헤매는 감상자에게 또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 캐링턴은 이렇게 말한다. “이건 지적 게임이 아니다. 시각 세계다. 느낌을 쓴다.” 초현실주의를 창립한 앙드레 브르통은 초현실주의를 ‘순수한 상태의 심리적 자동화 기술’로 정의한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고자 다양한 기법을 시도했다. 콜라주 기법 그리고 꿈과 무의식의 흐름에 따라 자동적으로 기술됨으로써 이성이나 도덕성 또는 미학 따위의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자동기술법이 예시이며, 입체적인 질감을 지닌 대상 위에 종이를 대고 문질러 표현하는 기법인 프로타주는 어릴 적 했던 놀이로써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즉 초현실주의 작품과 무의식 사이에 다리가 놓이는 과정은 ‘우연과 비합리성’에서 비롯됨이 핵심적이다. 위 작품이 속한 4섹션의 제목이기도 하다. 같은 섹션에 전시된 또 다른 작품인 만 레이의 ‘행운’은, 우연과 무의식의 자동적 기술을 강조하는 초현실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처럼 본 걸작전은 작품 전시와 더불어 초현실주의의 역사와 가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은 전시다. 또 예술가보다도 남성 작가들의 뮤즈로 기록되어 왔던 여성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 또한 만나볼 수 있어 반가운 전시다. 앞서 소개한 에일린 아거를 비롯해 캐링턴, 우니카 취른, 메레 오펜하임, 엘사 스키아파렐리, 셀린느 아놀드, 총 여섯 명의 여성 작가의 작품이 14점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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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
금지된 재현(La reproduction interdite), 1937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81 × 65,5 × 2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전시의 포스터로 활용된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이다. 마그리트는 그림의 해석을 거부했다고 전해오지만, 감상하는 개개인에게 유의미한 암호를 작품에서 발견하고 나아가 암호를 문장으로 해독하는 과정은 발화 행위로써 감상자를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이끈다고 믿는다.

 

양복을 입은 사람은 책이 놓인 거울 앞에 서 있다. 책은 거울의 일반적인 원리에 따라 반전되어 있으며, 인물은 거울 안에서도 여전히 뒷모습을 유지한다. 과학을 거스른다.

 

위의 두 문장을 서술하는 과정은 방지턱이 연속으로 놓인 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았는데, 거울의 ‘안’이라 쓰며 거울의 어느 쪽이 안 또는 밖인지 알 수 없었고 거울에 비친 뒷모습이 ‘과학을 거스른다’고 쓸 때에는 거울에 비친 존재에 거울 밖의 대상만큼의 생명성을 부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기존에 알고 있던 거울이 무엇이었는지 잠시 동안 잊었으며, 다시 현실로 돌아온 뒤에도 마그리트가 불러온 낯섦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착시에 빠진 것 같았다.

 

마그리트의 작품뿐만이 아니었다.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여러 착시를 경험한 것으로 기억한다. 전복이 일어난 곳에서는 의심이 피어올랐고, 의심은 때때로 혼란이 되었으며 과정 틈새마다 이끼처럼 끼여있던 것은 ‘기이함’이었다.

 

그리고 ‘기이한 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기이한 것은 모두 아름다우며, 사실 기이한 것만이 아름 (앙드레 브르통, 1924) 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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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01_앙드레 브르통-초현실주의 혁명.jpg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 1896-1966)
초현실주의 혁명(La Révolution surréaliste)
간행물, 1924, 28,6 x 20,2 x 0,3 cm
© André Breton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이미지08_살바도르 달리-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jpg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
머리에 구름이 가득한 커플(Couple aux têtes pleines de nuages), 1936
판넬에 유채, 98,5 x 77 x 4,5cm(L), 87,5 x 72,4 x 4,5cm(R)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이미지13_폴 델보-달의 위상III.jpg
폴 델보(Paul Delvaux, 1897-1994)
달의 위상 III(Les phases de la lune III), 1942
캔버스에 유채 oil on canvas, 155 x 175 cm
© Foundation Paul Delvaux, Sint-Idesbald - SABAM Belgium / SACK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이미지06_르네 마그리트-삽화가 된 젊음.jpg
르네 마그리트(Réne Magritte, 1898–1967)
그려진 젊음(La jeunesse illustrée), 1937
캔버스에 유채, 184 x 136 cm
© René Magritte / ADAGP, Paris - SACK, Seoul, 2021
Collection of Museum Bojmans van Beunin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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