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두 남자 - 진파 [영화]

글 입력 2021.12.17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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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치 않게 양 한 마리를 차로 치어 죽이고 만 한 트럭 운전사.

 

양의 천장을 치러주기 위해 양의 사체를 차에 싣고 다시 길을 떠나던 그는 광활한 고원지대를 홀로 걸어가는 한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목적지까지 태워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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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모습부터 성격까지 정반대인 두 남자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어디로 가느냐는 트럭 운전사의 물음에 남자는 20년 전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사나에 간다고 답한다.

 

그의 품에는 날카로운 칼 한 자루가 있다. 실수로 살생을 저지르고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사원에 가는 트럭 운전사와 살생을 통한 복수를 꿈꾸는 남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선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진파'라는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남자를 목적지 근처를 내려준 뒤 일상생활을 이어가던 트럭 운전사 진파는 복수심에 차 있던 남자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그를 직접 찾아 떠난다. 어느 날 한 찻집 주인으로부터 남자가 '마르차'라는 이에 대한 정보를 묻고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남자의 원수로 짐작되는 마르차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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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남자는 마르차를 죽이지 않았다. 지난 20년간 복수의 칼을 갈아온 그가 복수를 포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남자가 자신이 내어준 차를 마시고는 울면서 나가버렸다며 당시의 순간을 회상하던 마르차의 곁엔 그의 어린 아들이 있었다.


다시 일상생활을 이어가던 트럭 운전사 진파는 어느 날 꿈을 꾼다. 진파는 꿈속에서 남자가 입던 전통 의상을 입고 그를 대신해 마르차를 죽인다. 꿈에서 깨어난 후 처음으로 선글라스를 벗은 진파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번진다.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마주한 티베트


 

티베트 출신 페마 체덴 감독의 영화 <진파>는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인물의 대조를 통해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티베트족 전통 의복을 입고 칼을 찬 채 용맹하면서도 강렬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캄파 티베트인으로, '원한이 있으면 꼭 대갚음해 준다'라는 캄파 전통에 따라 복수를 꿈꾼다.

 

반면 가죽옷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트럭 운전사는 찻집 주인으로부터 '여기 사람이 아닌 것 같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의 모습은 외부 문물의 유입으로 변화해가는 현대 티베트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복수를 꿈꾸던 남자에 대한 트럭 운전사의 집착은 현대 티베트 사회가 직면한 딜레마에 대한 감독의 시선을 드러낸다. 감독은 전통적 가치를 상실한 채 물질주의에 물들어가는 사회와 잘못된 전통의 답습으로 인한 악순환 사이에서 티베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원수의 어린 아들을 본 후 오랫동안 꿈꿔오던 복수를 포기한 남자와 그를 대신해 원수에게 복수를 하는 꿈을 꾼 트럭 운전사의 모습은 전통과 현대의 평화로운 조화,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시대적 희망을 의미한다.

 

 

 

'진정한 티벳 영화'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다


 

페마 체덴 감독은 티베트인의 시선에서 <진파>를 통해 진정한 티베트의 모습을 그려냈다. 현대 티베트 사회가 마주한 상황과 함께 티베트 특유의 풍경과 전통 종교문화적 분위기를 있는 그대로 전달한다.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순수한 티베트의 모습은 잔잔하면서도 느리게 관객의 오감을 지배한다.

 

배우들 역시 실제 티베트 출신의 인물들로 모국어 대사를 사용한다. 감독은 스타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아마추어 현지인 배우들을 기용했으며, 티베트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그 어떠한 발언 없이 날카롭게 표현해낸다. 꾸밈없는 진솔함은 그 어떤 것보다 더욱 설득력 있고 그 누구라도 존경할 만한 민족적 자긍심이었다.


티베탄 뉴웨이브를 선도한 감독 페마 체덴의 영화 <진파>는 단순해 보이는 내러티브를 통해 깊고 웅장한 울림을 주는 놀라운 작품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고요한 풍경 속에 요동치는 눈빛들을 읽어내는 순간, 당신은 당신도 모르게 페마 체덴의 세계에 꼼짝없이 빠져들게 것이다.

 

 

[정예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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