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참 필요했던 책,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

글 입력 2021.12.1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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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이날치 공연의 한 장면

 

 

 

1. 퓨전 국악에 대한 애정



처음으로 퓨전 국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씽씽밴드의 NPR Music Tiny Desk concert 영상을 접하면서부터였다. 참 독특한 의상을 입은 세 명의 소리꾼이 실력이 범상치 않았다. 그들의 창이 너무 좋아서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보다 씽씽밴드에 대해 찾아보았다. 소리꾼들의 이름은 이희문, 추다혜, 신승태…. 역시나 그들은 실력과 경력이 넘치는 소리꾼들이었다. 남자 소리꾼이 여자 옷을 입고 가발을 쓴 것에는 무속적인 함의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프로젝트 그룹은 내가 알기도 전에 이미 해체되어 있었다. 아, 난 왜 더 빨리 그들을 알지 못했나... 이미 지나간 그들의 활동을 찾아 보며 아쉬워할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온스테이지 채널에서 실시간으로 ‘덕질’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의 영상을 접했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하고 핫한 밴드가 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라는 무대였다. 처음 이 영상을 봤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이날치 소리꾼들이 부르는 자라가 토끼 토 생원을 호 생원으로 잘못 불러 '범 내려오는 대목'에서, 호랑이의 커다란 발 아래 모래가 ‘촤르르르르’ 흩어지는 모습을 노래할 때, 나는 처음 듣는 ‘소리’에 충격을 받았다. 가히 감각적인 충격이었다.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 있다니. 곡이 진행될수록 범 내려오는 대목 이야기와 발성, 가사 표현이 하나하나 다 새로워 일종의 문화 충격까지 받았다.

 

국악과의 퓨전이라 음악 자체가 새롭게 들리기는 물론이요, 어렴풋이 알아듣는 옛 우리말 가사도 참 새로웠다. 나는 씽씽의 <자진난봉가>,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약성가>,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등에 나오는 낯선 한자성어, 낯선 명사들, 지금은 대화할 때 쓰지 않는 옛 말투와 어휘들에 신선함을 느꼈다. 분명 시간으로 따지면 오래된 것인데 지금껏 국악보다 클래식, K-Pop, 해외 팝 음악에 훨씬 더 가까웠던 내게는 그것들이 다 새로움으로 다가온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물건일 LP가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는 새롭고 힙한 사물이듯이.

 

이날치에 빠진 이후 이날치는 물론이고 악단광칠, 상자루 등 온스테이지 영상에 출연한 다른 퓨전 국악 밴드의 영상도 음미하고 전통 음악을 접목한 케이팝 아이돌의 노래들도 소중하게 찾아 들었다. 한국 관광공사가 도시별 관광 홍보용으로 만든 ‘Feel the Rhythm of Korea’ 시리즈를 작년에 이어 올해 것까지 또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른다. 생각해보면, 잊고 있던 우리 것에 문화 충격을 받고 매료된 셈이다.

 

한국, 외국 할 것 없이 전통과 유물을 사랑하던 마음은 아주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그 마음이 퓨전 국악과 판소리에 깊게 꽂혔다. 이날치의 <수궁가> 시리즈가 호응을 얻으며 퓨전 국악의 세계가 대중에게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그 흐름을 타고 나의 ‘덕심’ 또한 더 자극받았고, 실제로 아트인사이트 지원서에 퓨전 국악과 K-Heritage에 대한 글을 쓰고 싶노라고 적었었다. 우리 전통 중 하나가 막 현재에 살아 숨 쉬는 대중문화의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는 참인데, 그 즐거움과 가슴 벅찬 느낌을 다른 분들도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막상 퓨전 국악에 대해 쓰는 일은 어려웠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단출한 소감이지 한 편의 글까지 될 것 같지 않았다. 내게 아직 퓨전 국악의 좋은 점과 전통의 유지와 차용, 변용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쓸 언어가 없는 것 같았다. 요컨대 애정은 가득하지만 지식이 부재한 상태인 것이다. 아무리 아마추어 글쟁이라도 그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아야 글을 쓸 수 있다. 적어도 내 경우는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의 문화초대 메시지를 받았을 때, 아 나는 지금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사설이 길었지만 그만큼 내가 이런 책을 만나길 바라왔다는 절실한 마음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라는 책을 만나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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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의 저자 김희재는 본인이 바로 21년차 젊은 소리꾼으로, 판소리의 인문학적 가치를 말하기 위해 문화콘텐츠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대중과 국악, 판소리 사이의 낯설음과 거리감을 줄이기 위해 ‘청춘소리꾼 희재’라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해당 채널에서 판소리의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국악은 지루하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하기 위해 직접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 책은 그 활동의 또 다른 경로이자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대중과 전통 음악을 이어주는 다리 같은 책이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마음이 판소리에 대한 애정과 함께 이 책 전체에 녹아 있다.

 

 

 

2. 국악이라는 용어


 

본격적인 판소리 이야기로 넘어가기 전에 저자는 ‘국악’이라는 용어를 짚고 넘어간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봐도 국악이라는 용어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국악이 ‘나라 음악’이라면 국악의 종류는 하나이고 그 음악 안에 든 의미도 다분히 프로파간다적인 내용뿐이어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가 국악이라 분류하는 음악은 판소리, 민요,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연주하던 정악, 국악의 뿌리 중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굿 음악, 산조 등으로 그 종류가 다양하다. 각 음악마다 소리도 다르고 표현 기법과 주제, 향유층의 차이까지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악이라는 용어는 일제 강점기 이후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아주 옛날부터 우리가 우리 전통 음악을 국악이라 부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예전에 주워 듣기로 이누이트족은 눈에 대한 다양한 표현을 지녔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그냥 새하얀 눈으로만 보일 수 있는데 그들은 눈에서 훨씬 더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아온 것이다. 눈은 그들의 삶의 장소이자 날씨의 척도이기 때문에 관심을 안 가지려야 안 가질 수 없는 그런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많은 전통 음악이 ‘국악’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만 불리는 데에서 대중과 우리 전통 음악이 현시대에 얼마나 동떨어져 살아왔는가를 실감하게 해 준다. 어쩌면 학창시절 음악책과 문학책을 덮은 이후로 판소리를 제대로 접한 적 없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정도로 거리가 멀다면 전통 음악의 세밀한 구분은 머리 아프고 어려운 일일 터이다.

 

그럼 우리는 전통 음악의 종류를 영영 모르고 지나쳐도 될까? 당연히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관심을 받지 못하는 시간예술은 사라지기 쉽다. 더군다나 판소리는 악보로 기록되지 않고 스승에게 목으로, 눈으로, 온몸으로 직접 배우는 음악이다. 판소리와의 거리감 때문에 언젠가 판소리가 사라진다면, 이는 문화적으로 큰 소실이다. 오랜 시간 축적되어 온 예술에는 다시 만들어낼 수 없는 정서가, 이야기가, 문화 그 자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 민속음악이든, 정악이든 구분이 뚜렷한 음악들을 그냥 국악으로 퉁치기에는 우리가 가진 수많은 개성있는 전통 음악이 한 장르에 모두 담기지 못하는 겁니다.’

 

p. 15

 

 

관심이 간다면 하나의 덩어리로 보이던 것도 세밀하게 구분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전통 음악을 전부 ‘국악’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부르기 저어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이것은 복합적이고 다양했던 한국 전통문화를 단순화·축약화했던 일제 치하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그 시기에 수많은 장르명이 탈락되어버린 거지요.’


p. 15

 

 

국악인들이 국악 용어에 느끼는 버거움과 고충에 대해 읽으며 이 책은 표지가 주는 느낌보다 훨씬 묵직하고 진지한 책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고민을 거듭하다 본 도서에서 부득이하게 ‘국악’과 ‘전통음악’이라는 용어를 혼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독자들을 위한 의미 규정을 알린다.


· 국악: 대중이 인식하는 우리 전통 음악.

· 전통 음악: 위 사용을 제외한 ‘국악’이라는 용어의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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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 연등

 

 

 

3. 판소리 사설이 주는 재해석의 실마리와 디테일한 매력



판소리 사설이란 다른 말로 판소리 가사이다. 첫 번째 장에서 저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이자 노래이기도 한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읽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전래동화의 간추린 이야기가 아니라 판소리 완창 가사를 다 아는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이 훌륭한 밑바탕이 되어주고 있다.

 

이를테면 <별주부전>에서 우리가 흔히 아는 결말은 토끼가 자기 간은 몸 밖, 저 육지 위에 있다고 꾀를 내어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 <수궁가>는 토끼의 탈출로 바로 끝나지 않고 땅을 내달리던 토끼가 독수리에게 잡히고도 또 한 번 꾀를 내어 도망치는 얘기까지 들려준다. (이 부분을 다룬 이날치의 ‘의사줌치’ 뮤직비디오와 무대 있으니 한 번 들어보시길) 저자는 토끼가 자라의 꼬드김에 넘어가 용궁을 간 이유, 용궁에서 도망쳐 나와도 또 다른 천적에게 시달리는 모습을 두고 저자는 현대인도 공감할 수 있는 먹고 사는 것의 필연적인 괴로움과 위험을 읽어낸다.

 

<흥보가>에서는 조선 후기 장남상속제 때문에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쫓겨난 차남 흥부의 이야기에서 당대 사회를 신랄하게 그리고 해학적으로 비판하는 정신을 읽는다. 신분제가 사라진 지금이지만 계층의 차이는 겪는 현대인도 이해할 수 있는, 세상사에 대한 저항 정신이기도 하다.

 

<심청전>은 심청이 마음에서 우러나온 효에서 행동한 건지, 아니면 당시의 사회적 가치관 때문에 마지못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건지 토론을 불러내며 다른 매체로도 심심찮게 재해석되는 이야기이다. 심청의 행동을 두고 앞 못 보는 아버지를 두고 가는 것이 정말 효심이 맞기는 한지 논박하는 토론도 발생하곤 한다.

 

판소리 <심청가> 앞부분에 나타난 심청의 본태에 대해 알게 된다면 심청의 행동을 다른 맥락에서 읽을 수 있게 된다. <심청가>에는 심청이 본디 하늘나라의 선녀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는 모종의 일로 인간으로 태어나는 벌을 받게 되는데, 마침 아이를 간절히 원하고 성품도 어진 곽씨 부인의 아이로 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심청의 본래 하늘의 선녀였기 때문에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것이 자신의 본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관문일 수 있다고 해석한다. 이쯤 되니 자기 목숨을 내놓은 것이 진짜 효심으로 인한 건지 아닌지 하는 유교적 딜레마로 읽히지 않고 아예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천상의 존재가 본질적인 자기 모습을 되찾는 과정의 하나가 되는 것이다. 심청이 본디 선녀였다는 이야기를 나는 이 책에서 처음 읽었고,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또 다르게 읽을 수 있는 열쇠를 갖게 되어 흥미로웠다.

 

‘청춘 소리꾼 희재’의 판소리 스토리텔링에서 제일 놀라웠던 대목은 <춘향전>에서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여 곤장을 맞는 장면에서 춘향이 십장가(일명 ‘분노의 10행시’)로 자기 뜻을 갈수록 더 굳건히 밝히고 위계적인 압력과 실질적인 폭력에도 굴하지 않는 정신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춘향이 그 신분제 시대에 사또의 수청을 거부한 것만 봐도 심약한 사람은 아니긴 하다. 그런데 여태 그 강단과 신념은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열녀의 마음으로만 읽혔고, 나 또한 춘향이 그런 인물인 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십장가 가사를 읽고 있자니 춘향의 캐릭터가 사뭇 다르게 보였다. 너무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라 현대말로 풀어놓은 일부를 인용해본다. 춘향이 한 대, 두 대 곤장을 맞을 때마다 맞은 매 수와 맞추어 자기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마음을 피력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변 사또의 부당한 처사를 매섭게 꾸짖는다.


 

“매우 치라!”

“예~히!”

‘딱!’

“일(一)이란 글자로 아뢰리다. 일편단심 먹은 마음, 한 명의 남편만 따르려는데 겨우 한낱 매질이 웬 말이오? 어서 급히 죽여주오!”

(...)

“두 대요.”

“두(二)번 지아비를 갖지 않는 이내 마음이, 당신이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 마음과 어찌 다르리까? ‘이비사적’이라는 절행의 비석글을 안다면, 과연 내가 두 낭군을 섬기리까? 가망 없고 안 되는 소리요!”

(...)

‘팔’자 낱을 ‘딱!’ 붙여노니

“팔(八)방부당(어느 면으로 보나) 옳지 않을 일을 힘으로 그만 찍어누르고 어서 급히 죽여주오!” 

(...)

“십(十)장가로 아뢰리다. 집이 열 채도 채 안 되는 적은 고을도 충렬이 잘 지켜지는데 우리 남원 이 넓은 천지에 열행(절개를 지키는 행동)이 없겠습니까? 나 죽는 건 서럽지 않으나 십맹일장(열 명의 맹인에게 있는 하나의 지팡이, 즉 귀중함) 날만 믿는 우리 모친이 불쌍하오. 이제라도 어서 죽여! 내 혼이 하늘 위로 높이 뜨게 되면 도련님 잠든 창문 앞으로 가서 꿈이나 깨게 하고 지고.” 

 


세상에, 봄의 향기 춘향이에게 이런 서릿발 같은 기백이 있었을 줄이야. 이 부분을 알고 나니 나는 이제 춘향이 가련하되 기특한 열녀보다는 자기 신념을 지키려는 박력 있는 한 명의 사람으로 느껴진다. 이 역시 사설을 몰랐더라면 못 얻었을 감상이다. 많은 것이 생략된 이야기만을 접했다면 나는 춘향의 이런 면을 계속 몰랐을 것이고, 누가 춘향이라는 캐릭터를 주체적인 여성으로 재해석한다 해도 이 정도로 크게 공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살아있는 문화가 되기 위해 현대적인 재해석을 한다 해도 억지 해석이라면 아무런 감동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첫 장에서 보았듯이 재해석의 실마리와 그것을 뒷받침해 줄 디테일은 이미 원문 가사 안에 들어 있었다. 구태의연하게만 느껴지던 가치관도 본래 사설 속 단서들을 포착해 새로운 읽기 방식을 마련할 수 있으며, 그렇게 고전은 새 생명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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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우리 소리가 무엇이지?


  

‘우리 소리 사용 설명서’라는 소제목이 붙은 '두 번째 마당'에서는 서양 음악과 우리 전통 음악의 비교를 시작으로 전통 음악의 특징, 구성, 장단, 판소리의 갈래 등을 설명한다. 이론적인 부분을 이곳에서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을 뽑자면 우리 소리는 우리 자연을 닮았다는 것이다. 서양의 딱 떨어지는 4박자와 달리 3박의 맛이 있으며, 수학적으로 음 위에 음을 쌓기보다 장단의 길이를 다르게 하기도 하고 모아졌다 흩어지는 허튼가락을 활용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주어진 상황, 한옥 마루에서 공연할 때 들리는 자연의 소리, 다른 연주자들 그리고 감상자들과의 상호작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판소리는 문학예술이기도 하다. 소리꾼은 온몸으로 소리를 내는 ‘통성’으로 자신이 부르는 대목의 텍스트를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듯 그려내야 한다. 이것을 ‘이면(裡面)에 맞게 소리한다’ 혹은 ‘이면을 그리는 소리’라고 하며, 이것이 판소리의 아주 핵심적인 부분이다.(p. 189) 판소리는 ‘정밀화와 같은 장면 구현’이 중요하며 이는 선조의 음악관과 연관이 있다. 옛사람들은 음악을 만물의 감응으로 생겨난 것이라 보았고, 만물의 이치를 언어로, 사람의 음성으로 정확하게 표현하고자 했다.(pp. 189-190) 그리고 그 이면을 잘 그려내어 훌륭한 감응을 일으키는 소리를 ‘성음(聲音)’이라 하고, 좋은 소리꾼을 ‘성음이 훌륭하다’고 말했다.(p.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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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리가 우리의 것을 즐길 때


 

판소리에 붙는 흔한 고정관념 중 하나가 ‘한의 소리'다. 물론 우리 민족의 정서, 희로애락이 담긴 음악이니 한이라는 정서가 판소리에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판소리는 한의 정서 한 가지로 축약될만한 음악이 아니라는 뜻이다. 본인이 21년 경력의 소리꾼이기도 한 저자는 우리 민족의 정서는 한보다는 해학이라고 말한다. 한민족의 정서가 한으로 축약되길 바란 것은 오히려 우리의 다양한 문화를 없애던 일본 제국주의라 할 수 있다.

 

슬프고 한스럽고 고리타분하다는 선입견이 판소리와 현대 한국인들의 사이를 멀게 만든다. 이 상태에서 판소리의 세계화를 꾀해도 크게 효과적인 결과는 나오기 힘들 것이다. 판소리 사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등의 노력보다 우리가 우리 것을 즐길 때 반향은 더 크게 온다. 무언가를 널리 알리는 일은 사실 그것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퍽 즐거워 보일 때부터 자연스레 시작되는 것이다.

 

판소리 다섯 마당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담은 첫 장에서, 작가는 적벽가의 존재가 서민 예술이었던 판소리가 양반층에게도 사랑받는 예술이 되었음을 알려준다고 했다. 양반들이 판소리를 즐기기 시작하며 이웃나라의 고전이 판소리의 주제가 되기도 했고 어려운 표현들이 들어가며 판소리의 위상이 변화했다. 재미있어 보이니 자신들의 영역에도 들여와 다양하게 즐긴 것이다. 다른 국가의 관심도 한 국가 안에서의 변화처럼 ‘즐기는 누군가’를 보고 자연스레 생겨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우리가 즐겨야 남도 그 쾌미를 알게 된다는 말이다. 사실 옆에서 사람들이 재밌게 이야기하고 노는 일만큼 관심이 쉽게 가는 일도 없다.

 

저자는 한 예술 장르가 존재감을 톡톡히 세우는 데에 아마추어 애호가들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향유를 넘어 직접 소리를 배운다거나, 전통 음악 공연을 관람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 등이 그 예술 장르의 존재를 굳건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드라마나 영화, 만화 같은 콘텐츠에서 2차 창작 내지는 팬덤의 분위기가 활발할수록 그 작품에 대한 관심이 쉬이 식지 않고 새로운 팬들이 생겨난다. 우리 소리를 즐기는 아마추어 애호가, 나아가 우리 소리를 해박하게 들을 줄 아는 ‘귀명창’이 늘어날수록 판소리 문화의 풍토도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6. 예술적 끌림을 잇다, 조선 판소리


 

3장, 즉 세 번째 마당에서는 최근 국악의 이미지를 탈바꿈하게 만든 젊은 국악인들의 다양한 행보로 시작하여 그들 음악의 토양이자 본류인 판소리 명창들의 소리까지 소개한다.

 

굿판을 새롭게 가져와 환각적인 사운드를 만드는 ‘악단광칠’과 굿판을 형상화하는 ‘씽씽밴드’. 국악기와 전자 음향을 접목해 완전히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만들어낸 잠비나이. 전통 음악의 낯설음을 오히려 활용하며, 밴드 사운드와 판소리가 서로 양보 없이 자기 길을 가게 하는 ‘이날치’. 유럽의 민속 악기들로 구성된 에스닉 퓨전 밴드 ‘두 번째 달’과 <춘향가>의 만남. 시나위가 가지는 자율설, 즉흥성, 확장성에 집중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판소리 성음과 R&B를 절묘사게 섞어 쓰는 앙상블 시나위까지.

 

젊은 국악인들의 공통점으로 자신이 구축해나가는 음악 세계가 국악 안에 한정되거나 국악으로 불리기를 자처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창작을 이어가는 젊은 국악인에게 국악이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음악은 경계와 경계를 오가는, 독특함과 신선함으로 청중을 사로잡는다.(p. 242) 국악인은 아니지만 전통 음악의 소리를 자유자재로 곡에 접목하여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정재일 음악 감독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이후 저자는 작고하셨거나 현재도 활동을 이어가는 명창들의 소리를 소개한다. 이런 소개 순서가 예술의 시간을 되감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커피로 따지면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고 근본적인 옛 예술 장르에 바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캘리그라피를 배우다 서예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것처럼, 현대적이고 퓨전인 장르에서 시작하여 그것의 근본 되는 장르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수순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저자가 명창들의 소리를 묘사하는 방식에서 나는 그간 퓨전 국악을 넘어 판소리 자체에 끌리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선 우리 전통 음악 자체가 자연을 담았고, 판소리는 만물의 이치를 포착하고 눈앞에 생생하게 이면을 그려주는 음악이다. 음악 자체의 성격에 자연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명창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조차 자연의 묘사를 빌려온다.

 

이는 내가 좋아하는 표현법과 비슷하다. 내 글은 확고한 이미지를 하나 가지며, 그것은 주로 자연의 이미지이다. 그려내고자 하는 이미지에서 풍기는 감성을 또다시 자연 속 소재에 대한 묘사와 비유로 글을 이어나간다. (예전에 아트인사이트에 쓴 계절감 에세이 한 편이 그러한 특성을 가장 강하게 보여준다. 혹여 읽어보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읽어 주시길)

 

책의 후반부를 읽으며 알 수 있었다. 아, 그래서 내가 계속 끌렸던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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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때부터, 아니, 교복 입는 학생 때부터.. 아니, 사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던 어린아이였던 시절부터 나는 예술에 대한 사랑과 함께 살아왔다. 어떤 장르의 수작을 감상하는 행위와 더 깊은 감상을 위해 그 예술사조에 대해 배우는 것 또한 나에게는 인생의 여러 결 중 하나를 당당히 차지한다. 그만큼 뭔가를 배우기 좋아하고, 그것이 내가 푹 빠져 있는 예술일수록 더욱 그러하다.

 

<힙하게 잇다 조선 판소리>를 읽으며 예술을 사랑하는 나의 삶에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다. 명창의 소리 안에서 유영할 수 있을 정도로 귀명창이 되어 보는 것이다. 아마 무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또한 즐거움이다. 해서 이 책은 내게 한번 읽고 다시 펼칠 일 없는 책이 아니라, 판소리 감상 인생과 여러 번 함께 할 나침반 같은 책이다.

 

대중과 국악 사이의 다리 같은 책이 되길 바랐다는 저자에게 이 책이 내게 나침반이 되어줄 수 있는 이유, 그러니까 이 책의 방향성을 믿게 된 이유에 대해 이 리뷰글을 통해서나마 전하고 싶다. 작가님의 인생에 쌓여 있는 판소리에 대한 애정이 책 전체에 녹아들어 있어 이 책을 친구처럼 믿을 수 있다고. 참 필요하고 좋은 책을 써주셨다고.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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