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사람]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다울 수 있도록
글 입력 2021.12.0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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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애가 싫어."

"왜?"

"시끄럽고, 떼쓰고, 뛰어다니고, 고집부리고, 소리 지르고, 마음대로 이것저것 만지고…"

"아, 뭔지 알아. 나도 그래서 어린애 싫어해."


*


고등학생 시절 수업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서 하셨던 이야기가 있다. 수업과는 전혀 관계없는, 어쩌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과 하게 된 사담이었다. 미래, 입시, 꿈, 그런 것을 이야기하다가 선생님은 문득 당신의 고등학생 시절과 임용고시생 시절을 함께 이야기하셨다. 그리고는 이야기했다. 자신은 절대 선생님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아직도 그 당시 선생님의 표정을 기억한다. 약간의 실소까지 담고 있는, 정말 터무니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저는 내가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요. 아마 과거의 나에게 가서 '고등학교 담임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도 콧방귀 끼면서 비웃을걸요? 내가 다른 일은 다 해도 저 일은 죽어도 하기 싫다, 싶었던 게 선생님이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선생님이 되었네요."


원래 인생이라는 것은 마음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겠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렇게 잘못 흘러가면 '이것만큼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느끼는 일을 생업으로 삼게 되는 것일까? 나도 언젠가 지금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고개 젓는 일을 하게 되는 날이 있을까?


그날 선생님의 이야기는 오래 뇌리에 남았다. 그 이후로 종종 나는 '내가 죽어도 하기 싫은 일'에 대해 생각하고는 했다. 특별히 싫어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싫은 일이 많으면 그중에서 어쩌다 한두 개는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 하기에 나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딱 하나, '싫어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자 바로 떠오른 것이 하나 있다. 아이 돌보기였다.


어린아이를 싫어하는 이유라면 수도 없이 많았고, 이는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많은 사람이 어린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중에서는 끔찍하게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와 '끔찍하게 싫어한다.' 중 중간쯤에 속해있었다. 좋아한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처음 '노키즈존'이 생겨났을 때도 크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무개념 아이와 무개념 엄마의 이야기는 툭하면 인터넷을 떠돌아다녔고, 많은 댓글에서 아이들로 인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런 글들을 읽을 때마다 내가 겪었던 어린아이들로 인한 고충들도 함께 떠올랐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깔깔거리고, 말도 안 되는 일로 고집부리다가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들.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다.


*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지 약 5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일주일에 두 번은 필수적으로 어린아이들을 마주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마침 교수님께서 전시 관련 인턴 자리를 소개해주셨다. 주저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이력서를 쓰고 제출하기 직전까지 내내 고민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어린이가 많은 전시장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 그토록 싫어하는 어린아이를 마주해야 한다는 것. 한참을 고민했다. '네가 담당하는 일은 어린이를 직접 마주칠 시간이 거의 없을 거야.' 그곳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는 지인의 말을 전달해주는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조금 안심스러운 마음으로 서류 제출 버튼을 눌렀다.


세상일은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나는 전시장에 출근하여 일주일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아이들을 마주한다. 무전기를 들고 다니며 전시를 살펴보며 이따금 전시장의 아이들에게 살갑게 인사해준다.


처음 출근했을 때를 기억한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꼼지락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앞으로의 출근에 대한 설렘보다도 피곤함부터 느꼈다. 앞으로 이렇게 작은 아이들을 상대해야 한다니. 이 아이들도 울고, 떼쓰고, 짜증을 부리겠지. 그러다 아이의 부모님이 수습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내가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기운이 빠졌다.


그날은 종일 어린아이들에 파묻혀 일했다. 전시장 내부가 무섭다고 차마 다 쥐어지지 않는 손으로 처음 보는 낯선 내 손을 잡고 의존하는 아이들에게서 풍기던 달콤한 어린이 샴푸 냄새. 따끈하고 부드러운 체온. 조잘거리는 하이톤의 목소리들과 환하게 웃던 미소들. 처음으로 느껴보는 그러한 것들과 온종일 마주했다.


그날 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바로 침대에 누웠다. 귓가에서 어린아이들의 조잘거리는 목소리가 맴맴 돌았다. 그토록 싫어하던 아이들의 하이톤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불쾌하지는 않았다. 피곤함에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는 못했지만, 잠들기 직전 오늘 마주했던 어린아이들을 떠올리며 눈을 감았다. 생각했던 것만큼 나쁜 하루는 아니었다.


*


여느 때처럼 전시장에서 일하던 어느 날, 어떤 아이가 갑자기 나에게 다가왔다. 기껏해야 6살 정도의 어린아이였다. 나는 고개를 숙여 아이와 눈을 맞췄다.


"도와줄 일이 있니?"


아이는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배시시 웃더니 내가 얕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넣어 뒀던 무전기의 윗부분을 잡고 조심스럽게 꺼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무전을 하는 내 모습이 이 아이에게는 신기하게 보였던 것일까. 잠깐 떨어져 있던 아이의 부모님은 내 앞에서 무전기를 만지작거리는 아이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으로 달려왔다.


"얘, 그러면 안 돼. 미안해요. 무전기가 신기한가 봐요."

"괜찮아요! 자, 무전기를 만져볼래? 직접 이야기도 해볼래?"


그때 갑자기 어떤 장면이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오랜 시간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 흰 병실이었다.


어린 시절 병원에 입원해있던 적이 있었다. 기껏해야 5살 정도의 어린아이였을 때다. 당시 병실이 지루했는지 어땠는지 그런 것까지 기억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친절하게 나를 대해줬던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사탕을 한두 개 챙겨주기도 하던, 다정하고 젊었던 간호사 선생님.


"혜빈아, 그러면 안 돼. 미안해요. 청진기가 신기한가 봐요."

"괜찮아요. 자, 청진기를 만져볼래? 직접 귀에 꽂아볼래? 어때, 무슨 소리가 들려?"


그때를 기점으로, 나의 어린 시절 어른들에 대한 기억들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아버지와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나에게 함께 배드민턴을 치자고 이야기해주었던 20대의 어른들. 조금 실수해도 괜찮다고 웃으며 이야기하고, 조금 잘 치면 빼놓지 않고 칭찬해주었던 다정한 목소리들. 실수해놓고 엉엉 우는 나에게 괜찮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사탕을 쥐여주고, 아이가 놀란 것 같다며 오히려 아버지에게 걱정의 목소리를 해주던, 정 많던 사람들.

 

*


어린아이니까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 어린아이니까 뛰어다니는 게 당연하다. 어린아이니까 세상일에 납득 못하고 우는 것이 당연하다. 어린아이니까 세상 모든 것을 궁금해하고, 직접 만져보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나 또한 그 당연한 수순을 밟아왔다. 그리고 그 당연한 수순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미숙함을 이해하고 배려해줬던 어른들 덕분이었다.


그날 퇴근하고 의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과거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을 아무렇지 않게 떠벌리고 다닌 것일까. 어째서 아무렇지 않게 어린아이가 어린아이다운 것을 싫어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일까.


나는 어떤 어린아이를 바랐던 것일까.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어른스럽게 행동하려고 조심스러워하는 아이를 바랐던 것일까? 미숙한 시간 없이 처음부터 무엇이든지 잘 해내는 아이를 바랐던 것일까? 그런,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아이를 바라며 어떤 이해심이나 배려심 없이 부끄럽지도 않게 어린아이는 싫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것일까?


어째서 이리도 멍청했던 것일까.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아이들이 미숙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올챙이 시절을 기억 못 하고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다. 적어도, 노키즈존을 보며 인과응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그런 생각을 오래 했다.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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