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도서/문학]

인간 김해경의 이해자가 되기 위해, 사랑하고 살기 위해
글 입력 2021.11.29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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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어떻게 이해고, 이해는 어떻게 사랑인가요?


 

얼마 전 ‘사랑은 좋은 삶에 필수적인가’란 주제를 내건 토론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필수적이라는 측에서 토론했었는데, 그건 별 중요한 얘긴 아니고, 중요한 건 결론이었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고, 사랑이 나와 타인의 세계를 공유하고 연결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것. 사랑이 어떻게 이해고 이해가 어떻게 사랑인지 의문이었다. 근데 마침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이상이었다.

 

 

 

이상과 김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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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인 이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글만 쓰는 사람이었다. 「오감도」, 「건축무한육면각체」. 제목부터도 무어를 말하려는 건지 알아챌 수 없었고, 글을 들여다봐도 그랬다. 나의 문학적 소질과 지식만을 탓하게 될 뿐이었다. 천재 이상을 이해하기에 나는 너무 바보구나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다 「거울」을 읽었다. 일단은 첫째로는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둘째로는 읽을 수 있으니 대충 해석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대뜸 시를 뜯어보기 시작했다. 이상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져 볼 기회 같아서였다. 이해의 실마리를 잡았다.

 

뭔가를 알려 하면 그 본질을 먼저 들여다봐야만 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거울」을 뜯어보기 전에 이상을 먼저 뜯어봤다. 위인전이나 전기를 쓰려는 건 아니니 정리해둔 것 중에서 시와 연관이 있는 몇 부분만 발췌해왔다.

   

 
이상(본명 김해경)은 1910년 09월 23일에 태어나 28세인 1937년 04월 17일에 숨졌다. 그는 세 살 때 친부모를 떠나, 아들이 없던 큰아버지(백부)의 집에 양자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백부의 집에서 살게 된 그는 백부의 후처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고, 자신을 친부모로부터 떼어놓은 큰아버지, 큰아버지에게 자신을 빼앗긴 친부모 모두 사랑할 수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이상은 일찍이 외로움, 깊은 회의감을 느끼며 자라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방황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는 거울을 늘 들고 다녔다고 한다. 이상의 여러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자기 분열적인 성향을 보였다.
 

 

시인 이상의 생애를 알아보려 했던 일은 인간 김해경을 알아보는 일로 끝났다. 그는 생각보다 더 다재다능한 천재였지만, 동시에 몸도 마음도 아팠다. 사실 어떤 인간의 감정이나 경향성을 마음대로 재단한다는 게 꽤 거만한 일이다. 이상이 그의 양부모와 친부모를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받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했을지 회의감을 느꼈을지 알 수 없다. 몸이 아팠던 건 맞는데 마음이 아팠다곤 말할 수 없다. 그래도 감히 오만한 태도로 단정 지어 보자면 그렇다는 거다. 이 무작정 일반화한 정보가 내겐 「거울」을 더듬이나마 읽을 수 있게 해준 기반이었다.

 

 

 

거울로 비춰보면 그 안엔 


 

의미 부여를 좋아하는 나로선 모든 구절 그리고 그 안의 단어를 분석하고 일일이 말하고 싶지만, 요즘은 괜히 시를 해체하는 게 살아있는 걸 해부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번 글에서도 역시 적당히 뜯어만 보겠다.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내게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握手)를받을줄모르는―악수(握手)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至今)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事業)에골몰할께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反對)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診察)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 [가톨릭청년](1933. 10)

 

 

시 전문이다. 단 한 곳도 띄어 쓰질 않았다. ‘나’와 ‘그’가 줄줄이 반복되는데 누가 나고 누가 그인지 알 수 없다. 나와 거울 속의 나는 언젠가 분리되는 존재인데 동시에 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퍼져있는 시를, 인간 김해경에 대해 알고 난 뒤, 처음으로 다시 읽고서 느낀 감정은 고립이었다.

 

시인의 실험정신으로서 모든 글을 붙여 쓴 걸까? 줄줄이 이어진 글은 한숨에 하고 싶은 말을 혹은 내면의 혼란함을 토해낸 것만 같다. 시는 본래 음성에서 기인한다. 시를 직접 낭독해봤다. 호흡을 끊을 구석이 없다. 시는 운율과 호흡으로도 우리에게 여운을 주는데 이 시엔 호흡이 없다. 숨 쉴 틈 없이 무언가가 조여온 걸 수도 있고, 숨 내뱉고 마시기가 겁날 만큼 심리적으로 몰려있는 걸 수도 있다. 감히 내가 느끼기엔 나와 나의 부딪힘 속에서 혼란과 혼재와 당황을 겪은 인간 김해경의 심정을 토해낸 것만 같았다.

 

이번엔 소재에 주목했다. 거울은 내가 나를 마주 보게 하는 유일한 도구다. 흥미로운 지점은, 오감도 시 제15호도 거울을 소재로 하고 있단 부분이었다.

 

 

나는 거울 있는 실내로 몰래 들어간다. 나를 거울에서 해방하려고.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침울한 얼굴로 동시에 꼭 들어온다. 거울 속의 나는 내게 미안한 뜻을 전한다. 내가 그 때문에 영어되어 있드키 그도 나 때문에 영어되어 떨고 있다.


- 오감도 시 제15호 中

 

 

오감도에서 화자는 거울의 나로부터 나를 해방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어됐다. 서로가 서로의 감옥이다. 거울은 나와 분열된 또다른 나를 비춘다. 영원히 분리될 수 없지만 또 맞닿을 수 없는 존재를 마주하면서 고통받는다. 「거울」에서 화자는 거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마저 거울 속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고통에 호흡을 내뱉으며 쓴 시에서, 마지막에 비틀린 자아를 진찰할 수 없다는 말을 툭 던진 게 자조와 유머로 와닿는다. 결국 끝끝내 화자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 그게 시인의 심정일테다.

 

 

 

이해가 사랑이고 사랑이 이해인 이유는


 

거울 속의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며 내 악수를 받아줄 수 없다. 화자는 결국 시인 이상이고, 그가 곧 인간 김해경이다. 동료 문인이자 친구인 박태원은 이상을 "그렇게 계집을 사랑하고 술을 사랑하고 벗을 사랑하고 또 문학을 사랑하였으면서도 그것의 절반도 제 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폐결핵으로 단명한 그의 건강을 말한 것이겠지만. 어쩐지 내겐 이상은 평생동안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 인간이었다는 말로 들린다. 이런 말을 더 애석하게 만드는 이상의 구절이 있다.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

 

애인과 이역만리로 야반도주한 여동생 옥희에 남긴 ‘동생 옥희 보아라’는 편지의 한 구절이다. 이 구절이 눈에 밟혀서 한동안 그 편지를 몇 번이고 읽었다. 사랑을 이렇게 잘 표현한 말이 더 없으리라 장담한다. 이해가 절실한 세상이다. 타인의 세계를 접하기란 무섭고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기꺼이 이해해주겠단 말은 나를 사랑하겠단 얘기다. 그래서 이해가 사랑이고 사랑은 이해다.


우리는 늘 이해자를 기다린다. 고립되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 나를 기꺼이 이해해줄 용의가 있는 사람이 구원자다. 이상은 자기 자신마저 이해하지 못하고 거울 속의 내게 총마저 쏘아버렸단 인간인데 타인을 이해하겠다고 나선다. 거울 속의 나는 여전히 소리를 못 듣고, 악수를 받아주지 않아서 숨이 벅찬데도 그랬다.

 

나마저도 아직 나의 온전한 이해자가 되진 못했으나, 시인 이상과 그 안의 인간 김해경을 조금이라도 사랑해보려는 이해자가 되려 한다. 전공이 전공인지라, 접했던 꽤 많은 이상에 대한 논문들, 그만큼 학술적이든 정신적이든 가치가 있는 일이 될 수 있을진 모르겠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남을 이해하겠다고 나선 인간을 그냥 지나치질 못해서 그렇다. 글을 읽은 단 몇 사람이라도 김해경의, 혹은 누군가의, 그것도 정 아니면 스스로의 이해자로서 사랑하고 또 살아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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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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