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일상과 창작 사이 - 오래 해나가는 마음

글 입력 2021.11.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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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오래 하는 게 어려운 시절이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그 사이에 세상은 또 바뀌어 있다. 이런 때에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오래 하는 것보다 민첩하게 변화에 대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무언가를 오래 해나가는 사람의 마음이, 그걸 제목으로 내세운 책이 더욱 궁금해진다. 오래 해나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오래 해나가는 마음>의 작가 류희수는 싱어송라이터이다. 10여년 동안 때론 밴드로 때론 개인으로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 책에는 그동안 음악을 만들며 저자가 품었던 생각, 음악을 하는 마음과 습관, 자신의 직업인 '싱어송라이터'에 대한 고찰, 그리고 오랫동안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인지가 차곡차곡 담겨 있다.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특히 나와 다른 분야의 이야기는 나를 이입시킬 여지가 적기 때문에 더욱 더. 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기에 이 책 역시 다른 직업을 탐방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스튜디오 녹음을 우주 체험에 비유한 부분이나 하나의 음반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읽으며 어쩌면 평행우주에 있을지도 모르는, 음악 만드는 나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저 다른 분야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의 세계를 구경하는 마음이었는데, 읽을수록 음악이 업인 사람의 삶 속에서 음악을 분리해낼 수가 없고, 마찬가지로 음악에서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삶을 분리해낼 수 없음을 실감했다. 그러니 '계속 해나가는 마음'이라는 제목은 좁게는 저자가 자신의 업인 '음악을 계속 해나가는 마음'이지만 사실은 무언가 '만들기를 계속 해나가는 마음', 더 나아가 '살아가기를 계속 해나가는 마음'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10년 동안 음악을 했다고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이미지가 있다. 불규칙한 생활과 즉흥적인 영감 같은 것. 하지만 저자가 펼쳐 보이는 싱어송라이터의 삶은 통념과 달리 곡조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그걸 실제로 불러보는 일들의 끝없는 반복이다. 여기에 규칙적인 달리기는 덤이다. 게다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오로지 음악 외길을 파온 것도 아니다.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병행하던 시간도 길었고 한때는 음악을 그만둘 마음까지 먹기도 했다. 싱어송라이터의 10년은 그렇게 채워졌다.

 

 

내가 아는 한 어떤 일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오래 해나가는 사람의 마음은 결코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다. 그건 이를테면 매일 아침마다 꼭 한 잔씩 내려 마시는 커피처럼 더없이 수수하고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 존재한다. 거기에는 늘 특유의 시시콜콜함이 있고, 담백함이 있고 애써 멋 부리지 않음이 있다. 과욕을 부리지 않으며, 무엇보다 변명이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추구하는 바를 믿고 거기에 맞춰 조용히 존재할 뿐이다.

 

- 107쪽

 

 

흔히 무언가를 계속할 수 있는 동력은 외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특히 창작 분야는 내가 만든 것을 봐주는 사람들의 반응이 미미하다면 의욕이 꺾이기 십상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계속 해나가는 마음'이란 내 마음속 믿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끈기에서 나온다. 일시적이고 외부에 의존해야 하는 '기대'가 아니라, 오래 지속되고 내부에 존재하는 희망에서 나온다.

 

계속한다는 것은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늘 한결같이 한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창작을 계속하는 것을 달리기에 빗댄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10년 동안 변함없이 규칙적으로 달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몇 주 혹은 몇 달을 달리지 않으면 달릴 수 있는 거리 자체는 줄어든다.

 

하지만 달리기를 한번 꾸준히 해본 사람은 시간을 들여 다시 달리기를 규칙적으로 한다면 예전만큼의 거리를 달릴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더딜지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분명 그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달리는 것 자체보다는 그 믿음이 계속해나갈 수 있는 핵심인 것이다.

 

 

기대는 쉽게 끝을 맞이하고 또 금세 생겨난다. 그러나 희망은 제대로 형태를 갖추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나 일단 갖추어지고 나면 웬만해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일을 꾸준히 오래 해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속엔 늘 기대보다는 희망이 더 확실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 147쪽

 

 

세상에는 분명 자신의 것을 조용히 오래 해나가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우리는 그보다 눈부신 성취를 이뤄낸 사람을 더 쉽게 발견하곤 한다. 그 소수를 보며 쉽게 열등감이나 자괴감에 휩싸인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다. 계속해나갈 용기를 자주 잃어버린다. 그래서 이렇게 무언가를 오래 해나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많이 위로가 되었다.

 

1년 동안 뭘 했는가 회의에 휩싸이는 11월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꼭 무언가를 해내는 기준이 1년일 필요는 없다. 인생은 생각하는 것보다 길고 그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겠지. 너무 먼 곳을 내다보며 덧없는 기대를 하는 것보다,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매번 다짐하면서도 또 잊어버리는 일이지만 새롭게 결심하고자 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도 자신의 것을 묵묵하게 계속해나가는 사람들을 응원하고, 나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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