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슈미' - 다섯 인물의 다섯 욕망

글 입력 2021.11.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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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슈미>를 소개한다. <슈미>는 노르웨이의 모더니티 사회를 냉철하게 그려낸 사실주의 작가 헨릭 입센의 <헤다 가블러>를 한국을 배경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다섯 명의 등장인물이 서로 얽혀 이어지는 줄거리를 통해 인간의 이면을 비춘다. 분열, 파괴, 긍정, 허영, 나르시시즘 등과 같은 다양한 자아의 모습을 과장되게 그려내며 이 시대 인간의 모습을 재연하고자 하는 ‘정신탐구극’이라 할 수 있다.

 

<즉각반응>의 대표이자 연출가 하수민은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정말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리고 타인을 긍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과장과 허상이 가득한 이 시대에 이번 작품을 통하여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 더 필요한 시대임을 말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필자는 솔직하게 말하면 어려웠다. 등장인물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연극이 나빠서가 아니라, 데이터 부족의 문제에 가깝다. 단순하고 긍정적인 편인 나에게 <슈미>의 인물들은 우울하고, 혼란스럽고, 욕망과 신념이 너무나 맹렬하고,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로 느껴졌다.

 

내가 겪은 평범한 사람들로는 이 등장인물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인물들을 다시 돌아보며 극의 의미를 제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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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 도규, 그리고 유완


 

슈미는 정신 분열을 겪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정된 사람처럼 보이다가도 누구보다 분열된 사람 같았다.

 

처음에는 경만과 부부라는 관계 속에서 괜찮게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나쁘지는 않지만 평범하고 좋은 ‘경만’이라는 남자를 남편으로 두고 말이다. 사랑하지는 않아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경만의 아내가 된 슈미를 처음에는 이해타산적인 계산과 신념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슈미는 극이 진행되면서 내 예상을 넘어 더 무서운 사람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슈미는 ‘스스로 빛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해’ 하며 자신에게 잔뜩 취했고, 도규와 유완을 통제하려 하였으며, 유완이 자살하는 것을 황홀한 자유로 여겼다. 자신의 존재, 믿음, 세계에 도취하여 결과적으로 자신이 아닌 유완을 파멸로 이끌었다. 이 점에서는 슈미가 비겁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자신의 세계에 강렬하게 빠져있었다면 스스로 행동하면 될 텐데, 왜 본인은 고고하게 가만히 있고 유완을 움직여 죽게 만들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슈미는 유완에게 자신을 투영하여 자신을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렇기에 슈미를 이해하기가 더 어려웠고, 혼란스러웠다. 슈미가 정말 자신을 사랑하였는가, 그리고 ‘사랑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다.

 

유완과 도규 역시 슈미처럼 광기를 가진 인물이기는 하였으나 슈미가 가장 선명하고 단단하게 불안과 광기를 가진 인물이었다. 다른 네 명과는 다르게 슈미만이 맨 발이었다는 점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애경과 경만


 

앞선 인물들과 비교해서는 어떤 인물도 평범하게 느껴질 것 같다. 애경과 경만도 욕망이 간간이 번쩍거리는 인물이긴 하지만, 앞선 인물들에 비해 꽤 현실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다.

 

애경은 자신 덕분에 유완이 변했다고 믿고, 유완과 함께 쓴 글에서의 자신의 지분을 자랑스러워한다. 약간의 자아도취와 뽐내는 마음 정도. 외교관인 남편의 돈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도 애경이 겪은 과거와 상황들로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경만은 극이 진행될수록 안쓰러워지는 인물이다. 교수가 되고 싶고, 슈미에게 큰 집을 주고 싶어 하는 등의 욕망은 쉽게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유완에게 질투심이 생겨도 유완의 원고를 찢어 없애버리지 않고 그의 성취를 기꺼이 인정해준다. 욕망이 일더라도 이것이 파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선을 지키는 것이다.

  

다섯 인물 모두 각각의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슈미, 도규, 그리고 유완은 욕망에 온몸을 맡겨버리려고 했고, 애경과 경만은 그래도 욕망을 통제 아래에 두었다는 점에서 달랐다. 슈미는 자신이 느끼는 모든 욕망까지도 사랑하여 욕망을 통제 없이 자유롭게 느끼려 하다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되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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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한다’는 의미


 

나의 몸, 생각, 감정, 가치관, 욕망, 욕구, 바람, 취향, 버릇…….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의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일까.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나를 가로막는 게 있다면 사랑하는 나를 위해 전부 거부해도 되는 것일까?

 

슈미는 ‘스스로 빛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고 외친다. ‘포도 잎사귀를 머리에 장식한 디오니소스처럼 아름답길’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믿는 가치와 욕망에 충실했던 슈미의 모습은 오히려 자기 파괴적으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정말 슈미가 자신을 사랑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적으며 ‘나를 사랑한다’는 의미를 고민해보았는데 아직 잘 모르겠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문을 떠넘기며 글을 마친다.

 

 

 

이진교 에디터 (아트인사이트 태그).jpg

 

 

[이진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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