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뎌진 보호자의 삶 [사람]

당신은 괜찮아요?
글 입력 2021.11.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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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없는 졸업식이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서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간신히 졸업식에 와준 엄마와 함께 급히 학교를 떠났다.

 

 

2004년 겨울, 아빠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았다. 고통스러워하는 아빠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가는 동안 온갖 생각이 멈추질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한참을 차에서 내릴 수가 없어서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부모님이 들어간 병원 문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연락을 받은 친척들이 하나둘 병원으로 모여들어 놀라고 당황한 엄마를 다독였다. 무서웠다.


사실 내가 아주 어릴 적, 엄마도 큰 수술을 받으셨다. 너무 어릴 때라 모든 상황이 다 기억나진 않지만 울고 또 울었던 기억만큼은 아주 선명하다. 물론 글로도 적지 못할 만큼 잊고 싶은 기억들도 많이 남아있다. 그런 경험 때문에 아빠가 병원에 실려 갈 때 더욱더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그때 그 수술은 잘 마쳤지만, 그 후에도 아빠는 두 번의 수술과 검사를 더 받아야 했다. 그리고 지난주, 또 한 번의 수술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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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챙겼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담요, 슬리퍼, 칫솔과 치약 같은 것들을 배낭에 하나씩 담았다. 나는 보온 도시락 가방을 챙겼다. '누가 보면 소풍이라도 가는 줄 알겠네' 하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일정을 확인했다. 그것도 경험이라고 능숙하게 준비물을 챙기는 우리가 슬프지만 웃겼다.

 

절대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던 것들인데 어느새 너무 자연스러울 정도로 익숙해져 있어서 서글펐다. 그래도 두려움만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에는 아빠가 중환자실에 머무는 기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아빠가 중환자실에 머무르게 된다면, 지정된 병실이 없기 때문에 보호자인 엄마가 꼼짝없이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에서 많은 사람과 불편한 생활을 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도 1명밖에 지정이 안 되고 외부인의 출입도 철저하게 제한하는 터라 더욱 불편할 것이다. 나는 오랜 기억 속에 남아있는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을 떠올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내 기억 속 중환자 보호자 대기실은

마치 전쟁 중의 임시 대피소와 같다.

누런 장판, 하늘색 모포, 작은 냉장고, 커다란 TV.

 

보호자들은 고작 30분의 면회 시간을 위해 전쟁 중의 대피소 같은 공간에서 긴 기다림을 견뎌낸다. 게다가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고군분투하고, 환자의 보호자들은 산 자와 죽은 자 그리고 아픈 자 사이에 치여서 고단한 생활을 이어간다.

 

혹시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고 해도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환자도 병에 맞서 싸우느라 많이 힘들겠지만,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하는 보호자의 삶은 생각보다 더 지치고 고단하다.

 

보호자들은 의료비 재난에 맞서기 위해 혹은 병원의 수익성을 위해 점점 더 좁은 병실을 선택하게 되기도 하고, 지정된 보호자 이외의 보호자들은 변변한 대기실 하나 없이 노숙을 방불케 하는 생활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 넓은 병원 어디에도 보호자가 마음껏 울 수 있는 곳이, 마음이 쉴 만한 곳이 없다. 병원 안에 환자의 자리는 있어도 보호자의 자리는 찾기가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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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문안을 하러 가면 모두가 당연히 환자를 제일 먼저 걱정한다. 물론 그게 맞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부터 환자 옆의 보호자를 더욱 신경 쓰게 됐다. 오랜 기간 환자의 보호자로서 살아 온 직업병이랄까. 잠은 편히 자는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내가 물으면 보호자들은 환자의 상태를 자동 응답기처럼 말해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는다.

'당신은요? 당신은 괜찮아요?'

 

답은 늘 똑같다.

'저는 괜찮아요, 아픈 사람이 고생이죠'

참 한결같다.

 

괜찮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도 방법이 없다. 그저 아무 말 하지 못하고 어깨를 끌어안을 뿐이다. 외롭고 고단한 보호자라는 이름의 무게가 잠시나마 나에게 옮겨지길 바라면서. 그리고 간절히 바라본다. 더는 보호자의 삶이 익숙해지거나 무뎌지는 일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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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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