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녀는 무엇에 그토록 목이 말라있었나 - 연극 '슈미'

다섯 인물의 욕망과 그 끝.
글 입력 2021.11.16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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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는 슈미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전임 교수 임용을 앞둔 경만은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왔다.


이들의 친구 애경은 슈미와 경만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에서 깜짝 귀국한다. 그리고 유완이 영국에서 책을 발표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곧 나올 후속작은 자신이 집필을 도왔다고 이야기한다.

 
한편, 도규는 슈미와 경만을 호시탐탐 자극하며 슈미를 손에 쥐려 하는데...

 

 
슈미, 애경, 경만, 도규, 유완.
 
옛날부터 친구로 지내온 이 다섯 명은 경만과 슈미의 결혼 축하를 위해 오랜만에 모이게 된다. 극 초반,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슈미와 경만의 모습에서 신혼의 애정은 그리 느껴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영락없는 부부의 모습일지라도, 슈미는 어딘가 딱딱해 보인다. 본인을 의식적으로 제어하고 있는듯한 동작과 말투가 그녀의 특징이다. 슈미는 그녀의 깊은 속내가 드러나는 것을 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애경은 절제되어 있는 슈미와는 대조적이다. 애경은 감정 표출에 굉장히 솔직한 편이다. 그런 애경의 등장과 동시에, 무대는 그녀의 에너지로 가득 찼다. 경만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사랑스러움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이가 좋지 않아 보이는 슈미와는 아슬아슬한 말을 주고받으며 긴장감을 감돌게 한다. 런던에서 유완이와 있었던 일을 꺼내며 그에 대한 사랑과 걱정을 얘기할 때는 또 다른 감정이 그녀를 다채로운 인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도규의 등장은 유쾌했다. 경만과 슈미에게 장난을 치며 그들의 친근한 사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하지만 이면에는 친근함을 가장한 본인의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 슈미와 경만의 근사한 신혼집 마련 자금은 도규의 도움이었고, 도규는 이를 언급하며 본인이 우위에 있음을 강조함과 동시에 슈미를 향한 욕구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유완은 영국에서 새 책을 집필해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에서 유완의 책 집필을 도운 애경은 서로를 구원해 준 것이라 믿고 ‘구원이 곧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완은 그런 애경의 마음과는 달리 구원과 사랑은 다르다며 철저히 분리시킨다.
 
 
 
'포도 잎사귀를 머리에 장식하고 디오니소스처럼 아름답게'

 
슈미와 둘이 남게 된 유완은 슈미에게 ‘옛날에 우리가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알몸으로 함께 사랑을 나누었던’ 행위에 대해 본인이 느꼈던 극도의 자유로움과 주체성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슈미는 ‘단순한 일탈’이었다는 말로 그의 흥분을 시시하게 만든다.
 
유완은 알코올 중독자로 지내며 혼란 속을 헤맸던 과거의 행적이 있다. 지금은 그런 생활은 하지 않는다며 알코올을 입에도 대지 않는 유완에게 슈미는 끊임없이 술을 권한다. 그녀는 그가 다시 알코올의 늪에 빠져 망가지는 것에 일조한다.
 
옛날처럼 다시 술에 이성을 통제하지 못한 채 망가져버린 유완은 원고를 잃어버린 채 돌아온다. 하지만 잃어버린 원고는 슈미의 손에 있었고, 슈미는 유완에게 원고 대신 자신의 총을 건넨다. ‘자살은 스스로가 실현하는 가장 자유로운 행위’임을 운운하며 자살을 권한다. 유완이 나간 후, 슈미는 원고를 모조리 찢어 없애버린다. 애초에 이런 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유완의 죽음을 알리러 온 도규, 큰 충격에 빠진 경만과 애경, 아름다운 행위라며 기뻐하는 슈미, 슈미의 모습에 경악하는 친구들.
 
유완의 사망 소식과 동시에, 한자리에서 일어나는 여러 감정의 충돌은 정말 기이하고도 충격적이었다. 각자의 욕망이 빚어낸 ‘광기’ 이기도 했다.
 
사실 유완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 아니었다. 다시 원고를 살리기 위해 애경이 묵고 있던 모텔을 찾아갔고, 그 과정에서 모텔 주인과 실랑이가 벌어졌다. 실랑이를 벌이던 중, 유완의 허벅지에 꽂혀있던 슈미의 권총이 오발되었다.
 
권총 오발로 인한 유완의 죽음을 알게 된 슈미는 끝내 그의 죽음에 자신이 주체가 되지 못한 것에 괴로워한다. 그런 그녀를 향해 도규는 말한다. 유완의 죽음에 결정적 요인이 된 권총이 슈미의 것이라는 사실을 본인만 알고 있음을. 도규는 이를 그녀의 약점으로 잡고 슈미를 통한 본인의 욕망을 드러낸다. 도규에게 약점이 잡힌 이상 앞으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을 예감한 슈미는 남은 권총 한 자루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슈미는 광기 어려 보였다. 그녀의 언행이 보기 불편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을 향한 욕망이 그녀를 망가뜨린 걸까.
 
주체성
- 인간이 어떤 일을 실천할 때 나타내는
자유롭고 자주적인 성질.
 
그녀는 ‘주체성’을 추구했다. 스스로 느끼는 우월감도 엄청났으며, 자기가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 하지만 주체적인 자아를 향한 그녀의 갈구는 남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변질되고 만다. 슈미는 유완이 자신의 말이 아닌 애경의 말을 듣거나, 본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상황에는 큰 동요감을 표했다.
  
그리고 애경은 말한다. 유완은 더 이상 옛날처럼 술에 찌들어 방탕하게 사는 애가 아니며, 집필을 함께 하면서 '내가 유완을 구원했고, 유완이 나를 구원했음'을.
 
실제로 유완과 애경이 함께 만들어 낸 책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둘은 술을 끊었다며 입에도 대지 않는 절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때부터였을까. 슈미는 왠지 모를 질투감 같은 것에 휩싸인다. 스스로의 감정에 잠식된 슈미는 결국 유완을 죽음으로까지 내몰고 만다.

 

*

 

인간에게 욕망이란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이자 성정이다. 욕망은 인간의 고유성만큼이나 참 개별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관계 속에서 합을 위해 개개인의 욕망을 잠시 배제해두기도 한다. 개인의 과도한 욕망 표출은 타인의 욕망을 뭉개버리는 이기심을 발한다. 균형 잃은 관계는 곧 파국을 맞이하는 법이다.

 

 

슈미 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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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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