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중요한 건 마음 - 모두 깜언 [도서]

‘어른다움’을 지닌 당신, 고맙습니다
글 입력 2021.10.31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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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우리 집까지 올라왔다 간 게 꿈만 같았다. 작은엄마를 도와 저녁을 준비할 때도, 설거지를 하고 방 청소를 할 때도 나도 모르게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리고 싱글싱글 웃음이 났다. 아주 가끔 상상을 했었다. 우주랑 같이 우리 집으로 올라오는 오솔길을 걷는 상상, 찔레꽃을 함께 맛보고 향기를 맡고, 우리 집 아래 계곡의 왕바위에 앉아 우주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상상. 그런데 막상 그 상상이 현실이 되고 보니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우주는 가끔씩 나를 현실에서 벗어나 신비한 우주를 헤매게 만든다.

 

 

강화도에 사는 평범한 시골 여중생 유정이는, 도시에서 전학 온 성공회 성당 신부님의 아들 우주가 왠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아직 좋아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자꾸 머릿속으로 우주와 함께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것을 듣는 모습을 그리게 된다.

 

우주는 마을의 ‘슈퍼스타’였다. 키도 훤칠하고, 시골 아이답지 않게 뽀얀 피부를 가졌다. 공부도 여간 잘하는 것이 아니라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유정이를 수월하게 2등으로 누를 정도였다. 같은 반 친구뿐만 아니라 한 학년 후배들까지 모두가 우주를 좋아한다. 심지어 전학을 와서 친구를 만들기는커녕 도도히 혼자 다닌다.

 

남들보다 특출나게 눈에 띄는 특징도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유정이에게, 우주와는 사귀는 건 물론이요, 친구로서 지내는 것도 요원해 보인다. 같은 반 친구이지만 그렇다고 친하지는 않은 데면데면한 상태가 이어지던 어느 오후, 우주가 우리 집까지 함께 발을 맞춰 주었다.

 

 

 

시골은 삶의 방식 중 하나일 뿐


 

유정이는 윗입술이 세로로 흉하게 찢어진 언청이로 태어났다. 유정이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갔다. 아버지도 자신의 어머니, 즉 유정이의 할머니에게 애를 던져주다시피 하고 연락을 끊었다. 홀로 남겨진 데다 딸이고 입이 갈라지는 바람에 젖병도 제대로 물지 못했던 유정이를 할머니는 윗목에 내버려 두었다.

 

모두의 무관심 속에 생의 불씨가 꺼져가는 유정이를 키우기로 한 사람은 작은아빠였다. 조카가 눈에 삼삼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작은아빠는 다니던 회사를 박차고 나와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농부가 되었다. 친환경 농민회의 회장으로서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가까운 학교와 어린이집에서 쓰게끔 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범위를 넓혀 인천과 김포에도 마을의 농산물을 홍보한다.

 

그렇게 열심히 논밭을 일궈 모은 돈을 유정이의 입술 수술과 언어 교정에 투자했다. 덕분에 유정이의 입술에는 작은 흉터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작은 아빠는 공사다망한 와중에도 시간이 나면 틈틈이 유정이를 놀이공원에 데리고 가기도 했고, 어두운 시골길을 같이 산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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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 패배주의가 너무 깊어요. 마을 어른들이나 형님들이나 배운 거 없고, 기술 없어서 농사짓는다는 생각이 커요. 농사지어서 먹고살기가 힘드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한데... 그러니 애들도 자부심이나 자신감 같은 것도 없고 매사에 의욕도 없어요.”

 

 

‘모두 깜언’이 배경으로 하는 살문리에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등장한다. 귀농한 작은아빠, 베트남 태생인 작은엄마,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같이 사는 친구 광수, 구제역을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애지중지하던 젖소를 살처분해야 했던 광수 아버지, 작은아빠와 작은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흔히 ‘혼혈’이라고 불리는 용민이와 용우...

 

근 몇십 년 동안 산업화와 도시화가 이루어짐에 따라 생활 양식, 심지어 사람의 인식마저도 도시를 위주로 바뀌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초중고를 나와 대학에 가고 취직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평생 살아가는 ‘전형적인 삶’을 추구한다. 전형적인 것은 곧 안정적이기도 하니까. 그리고 그러한 삶이 나에게도 (노력만 한다면) 무난히 펼쳐지리라 생각한다. 모두가 조금 달라질 수 있음에도 말이다.

 

반면 시골은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는, 도시로 올 형편이 안 되는, 현재의 흐름에 발맞추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인식되곤 한다. 상술한 마을 사람들은 ‘전형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기에 행정과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고 또한 쉽게 차별받는다. 게다가 현실은 점점 농업으로 먹고살기 팍팍해지고 있다. 시골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시골은 하루빨리 탈출해야 할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중요한 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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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시골은 인용한 소설 속 인물의 말처럼 패배주의만 가득할까? 문명의 이기와 유리되었다고 해서, 출신이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반드시 불행하지는 않은 것 같다. 김중미 소설가가 강화도에서 10년 넘게 살고 학교를 이끌어나가며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람의 투명한 마음이었다.

 

이 책에서 두 가지 부류의 마음을 읽었다. 첫 번째는 사랑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유정이가 우주를 좋아하고, 작은아빠가 유정이를 금이야 옥이야 생각하는 것은 사랑의 범주에 포함된다. 자연과 생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유정, 난생처음 엄마를 만나게 되고 사정을 이해하게 된 광수, 방과 후에 뿔뿔이 흩어지지 않고 재미있게 놀며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에게서, 오늘날 사라져가는 순수한 마음을 느꼈다.

 

 

“어머이, 주일을 그렇게 꼬박꼬박 지키고 믿음이 깊으신 양반이 왜 그러세요. 성경에 나와 있잖아요. 옳은 일을 하다 박해받는 이는 행복하다. 세상 다 망하고 목숨만 붙어 있으면 그게 산 거예요? 나는 이렇게 사는 게 좋아요. 내 자식들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농사 포기 못 하니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싸워서 바꿀 건 바꿔야지요.”

 

 

두 번째 마음은 어른들이 지닌, 움직이면 바뀔 것이라는 희망이다. ‘해도 안 된다’라는 패배 의식이 마을을 잠식해가는 와중에도, ‘하면 된다’를 외치며 열심히 마을의 농산물을 홍보하고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계획하는 작은아빠와 같은 사람이 있다. 농촌과 어른들을 두 눈으로 보고 있는 아이 앞에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위축된다면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우리 함께 목소리를 낸다면 시나브로 나아지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이에게도 더 긍정적인 미래를 우리 힘으로 선사해줄 수 있지 않을까. 소설 속 어른에게서 ‘어른다움’을 발견한 순간이었다.


**

 

 

옛날이야기는 행복하게 끝나는 게 정석이었다. (중략) 그런데 왜 용내천의 용마와 아기 장수 이야기는 이렇게 비극으로 끝나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용마와 아기 장수의 이 이야기가 무섭고 섬뜩하기만 했다. 그런데 지금 들으니 무척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엄마한테 죽임을 당할 때 그 아기 장수는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 엄마는 왜 아기를 데리고 산으로 숨거나 섬 밖으로 도망갈 생각을 하지는 않을 걸까? (중략) 지레 겁을 먹고 자기 자식을 죽여 버린 엄마가 어리석고 나약해 보였다.

 

 

마을에 구전되어 내려오는 옛날이야기를 유정이는 이해하지 못한다. 겨드랑이에 날개를 달고 태어나 장차 장수가 될 운명이었던 아기 장수는, 장수는 역모를 일으킬 것이라는 마을에 떠도는 흉측한 소문에 벌벌 떤 어머니에 의해 제 생을 다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다.

 

툭 불거진 못은 뿌리 뽑아야 뒤탈이 없을 것이라는 기성세대의 생각에 유정이는 동의하지 못한다. 내가 판단한 대로 살면 안 되는 걸까? 살처분 당하는 소의 모습을 보고 고기를 먹지 않고, 학교 버스에 치여 다리를 많이 다친 고양이를 동물 병원에 데려다준다. 유정이에게서, 내 마음속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어른다움’이 느껴진다.

 

 

졸업식이 끝나고 나는 친구들 앞에 처음 산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그리고 나도 살문리 단체 채팅방에 초대되었다.

“우리 하루에 한 번은 서로 연락하기다.”

“그게 되겠냐? 서로 기숙사 생활하다 보면.”

 

 

과연 살문리 친구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을까? 우주와 유정이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 매우 궁금하지만 하나 바라는 것은, 세파(世波)가 몰아쳐도 그 아름다운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그냥 문득, 내 주변의 어른답고 아름다운 사람들 "모두, 깜언(베트남 말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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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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