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웃 오브 이집트 - 그런가, 안 그런가? [도서]

글 입력 2021.10.2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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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개봉했을 때, 꽤 많은 주목을 받았던 영화라 한 번 볼까 말까 고민하다 상영 기간이 지나버렸다. 나중에라도 한 번 볼까 고민하다 안드레 애치먼의 원작 소설과 후속작인 ‘파인드 미’까지 문화 콘텐츠로 받아 읽었다. 그 여운이 너무 길었던지 이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싶어 영화를 보려는 시도는 저 멀리 던져버렸다. 배우들의 연기력이나 감독의 연출을 떠나 글로 된 작품을 내 머릿속에서 나만의 그림으로 풀어낸 게 변하는 게 싫었다. 그 여운을 곱씹으면서 이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기에 사랑과 열정을 이렇게 그려냈는지 궁금해졌다.

 

 

 

이집트; 열과 다양성



첫 챕터가 끝나면 그의 가족과 성장 환경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그 대략적인 서사가 나에게 두 작품이 어찌 그렇게 ‘열’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내 가슴 깊은 곳에 심어주었는지 아주 잘 알려준다. 이집트라는 나라와 개성 넘치는 그의 가족이 그의 시간 속에 남겨두었던 이 두 가지가 그의 소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나에게로 이어졌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고? 지금 장난해요, 빌리?" 플로라는 조롱하듯 말을 던지고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또 담뱃불을 붙였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녀는 역시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는 에스더의 아들을 바라보며 큰 소리로 비웃었다.

 

"결국은 항상 모래가 이긴다." 빌리는 놀라울 정도로 힘을 주어 다시 말했다. (중략) 이제 빌리가 늘 하는 그 말이 나올 차례였다. 그 말은 손가락을 푸는 피아니스트나 목을 가다듬는 배우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무대로 나갈 준비를 했다. 자신감으로 반짝이는 눈빛과 아치를 이루는 등,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의 떨림으로 시작하여 점점 높아지다 완벽한 높이에 이르렀다. "우린 전에도 기다린 적이 있고 이번에도 기다릴 거야. 여기 있는 우리는 모두 오천 살 먹은 유대인이니까. 그래, 안 그래?"

 

- 43~44p

 

 

이집트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중동 지역이 워낙에 덥고 건조한 나라인 것 정도는 알기에 별다르지 않았을 거라 짐작해본다. 그 열기로 가득한 이집트에서 자라온 나날과 더불어 마초적인 매력과 자유로움이 가득했던 삼촌 빌리, 전쟁이라는 쉽게 경험하기 힘든 격동적인 상황, 서로의 개성을 부딪치면서도 함께 잘 어울렸던 가족은 애치먼에게 알게 모르게 다양성과 여러 모습의 사랑을 가르쳐 줬다. 시트콤처럼 정신없이 부딪히고 뒹굴 던 생활에서는 오히려 그런 것들을 배우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노릇이다.


애치먼은 이집트를 벗어나 먼 나라에 정착했지만, 이집트에서 살았던 시간과 그의 가족이 안겨준 모든 것은 그의 깊은 곳 어딘가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웃 오브 이집트’라는 제목으로 자기 삶을 되짚어가지만 태어나고 자란 이집트를 떠난다거나 벗어났다기에는 그에게 아직 그 흔적이 너무 짙다. 누구나 때가 되면 부모의 품을 벗어나 독립하지만 가족과 고향에 여전히 머무르듯, 애치먼도 몸이 멀어졌을 뿐 그 시간과 추억은 고이 간직했다. 그런가, 안 그런가?

 

 

 

사랑;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 감정이 호르몬 작용으로 인한 결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거대로 이건 이거대로 맞는 말이다. 모든 감정은 같지 않고 측정할 수도 없어 정확하게 비교할 수 없다. 애초에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짓이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정확히 똑같은 정도나 양으로 사랑을 돌려줄 수도 없고 그 형태를 모방해 따라 할 수도 없다. 그러려고 한다면 받는 사람의 처지에서 되려 무례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자기감정을 우습게 여기냐며 역정을 낼 수도 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그저 각자의 고유한 형태로 사랑하는 것밖에 할 수 없고, 예나 지금이나 그저 그러고 있을 뿐이다.


연인은 서로 사랑한다. 가족도 서로서로 사랑한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 또한 부모를 사랑한다. 이 모든 것은 사랑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이지만 모든 형태와 정도, 강렬함은 다르다. 그중 사라져버리는 것도 있고 오래도록 남아 무덤까지 품고 가는 것도 있다. 안드레 애치먼이 누군가와 사랑으로 맺은 관계 중에도 이집트의 열기에 녹아버린 것도 있을 것이고, 흐르다 다시 굳어 그대로 남은 것도 있고, 애초에 녹지 않은 것도 있다. 녹지 말라고 해도 녹을 것은 녹고 녹으라고 해도 녹지 않을 것은 녹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회고록이자 넋두리는 나에게 사랑을 고민하게 한다. 아직 사랑을 제대로 모르고, 앞으로 얼마만큼의 사랑과 어떤 형태의 사랑을 겪을지도 모르지만 결국은 끝까지 기다리는 것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빌리의 말처럼 사막의 모래를 이겨내는 것이 없듯이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며 버티다 보면 내 손에는 자연스레 나에게 남을 것만 남지 싶다. 나는 그 남은 것들을 나의 시간이 허락하는 한 충실하게 사랑하며 살고 싶다.

 

 

아웃 오브 이집트_앞표지.jpg

 

 

[김상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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