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설극장] 콘텐츠 혁신: 세계는 바야흐로, 에스파의 시대

글 입력 2021.10.27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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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기술의 산업은 보는 음악에서 듣는 음악의 시대로 콘텐츠 산업의 확장을 이끌었다. 다양한 영상 제작 기술과 송출 기술은 눈과 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의 제작을 촉진했고, 대중 역시 뮤직비디오와 퍼포먼스를 음악 산업의 일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보는 음악의 시대에서 나의 10대를 보냈다.


가속화된 기술 혁신은 뉴미디어의 시대를 열었다. 실시간 쌍방향 의사소통과 1인 미디어 기술의 발전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세대가 교체되었다. 뉴미디어 기술과 함께 탄생한 밀레니얼 세대들은 더는 보는 음악에 만족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 그 이상, 그 너머의 가치를 담은 콘텐츠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하였다.


나는 이 시대에 나만의 정의를 내려보고 싶었으나, 마땅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했다. 과도기에 과도기를 거쳐, 완성된 결과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끝없는 고민을 해야 했다. 혁신의 아이콘이 필요했다. 혁신적 매체가 아닌, 혁신적 콘텐츠, 그 상징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

 

뉴욕에 유학을 오고,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할 일이 늘었다. 스몰토크 주제의 8할은 케이팝 이슈이다. 최근 엔시티와 에스파의 새 앨범이 공개되면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한국인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쉽게 이야기의 중심에 설 수 있었다. 웬만한 SM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이야기엔 정보력 있게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나, 나는 에스파 이야기 앞에서 큰 혼란을 겪고 말았다.


에스파의 컨셉과 음악 스타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세계관이나 상징까지 찾아볼 생각은 못 했었다. 엑소의 초능력처럼, 팬들이 주로 찾아보고 즐기는 문화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외국인 친구들이 던진 질문은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블랙맘바 진짜 죽은 거야? 에스파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이게 과연 에스파에 대해 얘기 하자는 게 맞나 싶어 당황했다. '춤이 신선하다, 음악이 좋다, 스타일링이 매력 있다' 등등 내가 예상했던 주제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해외 팬들은 원래 이런 주제로 얘기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친구들은 나를 앉혀놓고 에스파의 세계관에 관해 이야기했고, 나는 에스파 뮤직비디오와 SMCU 영상을 볼 것을 숙제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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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랐다. 세계관이라고 해서 뮤직비디오가 연결된다거나 소품이 상징을 가지고 있는 정도를 생각했는데, 에스파라는 그룹 자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SM 엔터테인먼트가 보여주었던 실험적인 콘텐츠들의 완성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세계관, 스토리, 그리고 스타일링까지 다른 아이돌 그룹과는 확연한 차별점을 둔 새로운 그룹이었다.


아이돌 그룹이라는 측면을 벗어나서도, 에스파라는 그룹 자체가 가진 의미가 상당하다. 에스파는 기존에 존재하던 모든 미디어가 융합된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이다. 게임상에서 흔히 존재하는 세계관과 영화나 드라마의 전유물인 스토리, 그리고 트랜디한 음악과 뉴미디어를 통한 소통이 적절히 융합되어 에스파 자체를 이룬다.


게임, 영화, 음악 등 기존의 거의 모든 미디어의 경계를 허문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기존에도 게임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 영화가 공개되고, 영화 음악이 히트를 하는 등 다른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융합형 콘텐츠들이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모든 미디어를 완전히 융합하고 나서야 하나의 콘텐츠가 완성되는 경우는 에스파를 통해 처음 접했고, 나는 SM엔터테인먼트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 대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음악과 퍼포먼스만 놓고 에스파를 논할 수 없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아이돌 가수로 에스파를 정의하기엔 부족하다고 느꼈다. 중독성 강한 비트와 쉬운 가사들만으로 대중을 사로잡던 과거와는 달리, 에스파의 음악 안에는 그 세계관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것들을 완전히 이해한 후에야 비로소 "에스파"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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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맘바가 진짜 죽은 건지"에 관한 논지는 전혀 에스파에서 벗어난 이슈가 아니었다. 그 세계관까지도 에스파의 일부이며, 그들의 음악은 일종의 전달 수단이다. 그 안에서 에스파는 주인공이자 동시에 전달자이다. 뉴미디어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케 하였기에 에스파와 대중 사이의 경계 역시도 허물어진 지 오래였다. 대중은 더는 간접 경험에 머물러 있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 세계관 내에서 사고하는 주체자이다.


스토리를 따라 호흡하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흐름을 파악하는 재미는 앞서 언급한 "보이는 것 그 이상, 그 너머의 가치"를 가져다준다. 따라서, 에스파라는 콘텐츠를 향유하는 자세는 지금까지의 팬덤 문화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기존의 팬과 가수가 주고받던 영향력 이상의 그들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또 다른 문화로의 출발점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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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후크송도 처음엔 "난해하다"는 타이틀과 뗄 수 없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넘어가던 시기에, "퍼포먼스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떻게 가수냐"는 의견 역시 많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흐르며 아이돌 가수가 아티스트의 한 분야로 자리 잡고, 팬덤이 문화의 일부가 되면서 점차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생겨났다.


에스파도 첫 등장에 난해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나 역시 아바타라는 컨셉을 처음 마주했을 때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스토리가 결합된 진정한 에스파를 만난 후, 난해함이 신선함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SM 엔터테인먼트의 지향점은 더는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기술은 미디어의 영역을 확장하고, 콘텐츠는 미래의 문화를 창조한다. 어쩌면 아이돌이라는 콘텐츠 역시 지금껏 과도기를 겪은 것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혹은, 에스파의 지향점은 지금까지의 무엇에 국한할 수 없는 정말 "에스파스러운" 무엇인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로 발전할지, 또 어떤 형태로 소비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그 등장만으로 충분히 미래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생각이 든다.

 

*

 

한 번 에스파의 세계에 눈을 뜨니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나를 발견했다. 그들의 다음 이미지 컨셉도 궁금하지만, 이어지는 스토리가 너무도 궁금하다. 상징을 찾아내고 숨은 연결성을 찾는 일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웠다. 덕분에 친구들과의 대화도 한층 다채로워졌다. AI와 메타버스의 철학을 논하다가 우리가 지금 에스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랐다.


듣는 음악, 보는 음악의 시대가 가고 "에스파의 시대"가 왔다. 다른 말로 어떻게 정의할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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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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