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21년, 휴학하고 인턴하겠습니다. - 2분기

글 입력 2021.10.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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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회사를 출퇴근한 지 7개월 차가 되었다.

 

작년 겨울부터 인턴을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의무감에 계속해서 지원했지만, 서류부터 버려졌던 탓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마지막 서류를 보내고 개강을 맞이했다. "휴학하고 인턴할거야"라는 다짐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게 벌써 8달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1년을 분기별로 나누어 그 다짐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담아보려고 한다.


[에세이] 2021년, 휴학하고 인턴하겠습니다. - 1분기

 

 

 

2021년 2분기는 상승 구간



이제는 내려올 만큼 많이 내려왔으니, 설레는 마음으로 올라가는 구간이 다가올 줄 알았다. 올라가긴 올라갔지만, 꾸역꾸역 무동력으로 아무런 서포트 없이 혼자 올라가야만 했다.

 

평생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충분한 학생으로서 본분을 채우면서 살아왔다.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등교하고, 수업 듣고 공부하고, 하교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정해진 것에 잘 따르고 굳이 다른 길로 도전하지 않는 평범한 ISTJ의 표본이기도 한 사람이었다.

 

대학에 와서도 큰 일탈 같은 건 잘 하지 않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나에게 크나큰 변화가 다가왔다. 학생이 아닌 직장인이라는 본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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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이 피어난 회사 옆 공원 산책, 점심시간의 소소한 힐링

 

 

회사에 출근하면서 3달 정도는 그 본분의 변화에서 오는 괴리감이 컸다. 주어진 것을 잘 해내고 싶어 하는 욕심과 그를 이행했을 때 오는 인정과 칭찬이 생각보다 나에게 중요했음을 깨닫기도 했다.

 

인턴에게 주어진 것은 많지 않았다. 큰 역할이 아닌 만큼, 큰 책임도 없었다. 그랬기에 조그만 것임에도 잘 해내지 못했을 때 오는 나의 속상함이 커졌다. 학생으로서 본분은 그냥 열심히 공부하고 경험을 많이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나름의 성과를 인정받고 기록해나가는 재미로 살 수 있었다.

 

인턴으로서 8달 남짓 스쳐 지나가는 이 사무실의 적당한 무관심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겠어 긴장의 연속으로 눈치만 보다가 끝나는 날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일의 피드백이나 사소한 대화에서도 상처를 받았다.

 

아주 어릴 때 생긴 아픈 기억 때문인지, 나에게 인정을 해줄 대상에게 칭찬받은 성과로 자존감을 높이며 살아온 것 같다. 내적인 동기로 자존감을 키워나가야 함을 알면서도 이를 바꾸는 게 쉽지 않았다.

 

학창 시절엔 칭찬과 다독임, 격려, 좋은 평가를 해줄 선생님이 있었고, 대학 생활엔 상을 주는 공모전이나 나의 역할로 이어나가는 대외활동들이 있었다. 하지만 인턴으로서 일하는 것에는 그런 존재가 필요하지 않았고, 직장에는 그렇게 듣기 좋은 말만 해주는 사람이 없는 게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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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자취 선물로 만든 썬캐쳐, 해의 기운으로 근심이 물러가길

 

 

그렇게 나는 2분기 동안, 무동력으로 롤러코스터의 상승 구간을 스스로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를 움직이던 동력은 인정과 칭찬이었는데, 무관심 속에서 이 정도면 적당히 선이 넘지 않는 업무를 하면서 오는 무력함으로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남으로부터 오는 인정과 평가를 동기 삼아선 길게 이어나갈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이를 바꾸지 못했기에 힘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분명히 하고 싶었지만, 입 밖에 나오는 말은 "죄송합니다, ㅠㅠ"뿐이었고 부디 직원분들께서 나이를 핑계로 일에 있어서 미숙함과 부족함을 정당화하지 않길 바랐다. 또한 나 자신도 졸업장 없이 휴학하고 들어와서, 어려서 일을 못 하는 거라고 변명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더 경계했다.

 

그래서 더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러지 못한 나를 자책하기 일쑤였다.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디며, 활발하지도 않고 붙임성이 없는 내 성격을 탓하기도 했고 회사는 소리 없는 전쟁터라는 말이 깊이 와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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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 산책에서 만난 고양이 무리, 묘생은 어떨까

 

 

장난 어린 대화나 농담 반 진담 반 꾸중에서도 나의 능력에 대한 한계를 구분 짓는 무의식적 언어를 만났고, 정말 사소한 지점들이 나를 더 뒤로 하강하게 만들었다. 꾸역꾸역 일해나가면서 부족한 자신과 그나마 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아야겠다는 마음속 다짐을 꺼낼 날이 오기라도 할까 의심하면서 2분기를 보냈다.

 

겉으로 보기에 상승 구간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 한 인턴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설레는 롤러코스터의 하강을 기다리며 재밌게 올라가는 척을 했을 뿐, 힘겹게 버티고 있는 나부랭이였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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