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2021년, 휴학하고 인턴하겠습니다. - 1분기

글 입력 2021.10.2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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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회사를 출퇴근한 지 7개월 차가 되었다. 작년 겨울부터 인턴을 해야 할 것만 같다는 의무감에 계속해서 지원했지만, 서류부터 버려졌던 탓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마지막 서류를 보내고 개강을 맞이했다. "휴학하고 인턴할거야"라는 다짐은 수포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던 게 벌써 8달 전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1년을 분기별로 나누어 그 다짐을 이뤄나가는 과정을 담아보려고 한다.

 

 

 

2021년 1분기는 하강 구간



마지막으로 인턴지원서류를 접수했던 곳은 제일 가고 싶었던, 하지만 제일 벽이 높았던 회사였기에 포기하고 있었고, 더구나 텀블벅 프로젝트, 학교 강의, 이것저것에 버거웠던 시기라 번아웃에 빠질 위기에 처해있던 때였다. 변화가 필요했지만, 막상 변화를 시도할 자신은 없었다. 마음이 롤러코스터처럼 위아래로 흔들렸고, 마음의 하강 부분이 유독 길었다. 이쯤 되면 올라갈 만도 한데, 계속해서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번아웃에 이미 빠져있던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건강 관리에도 손을 놓게 되어 요요가 오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못난 나를 마주하기 싫었다. 자기 전 침대에서 혼자 복잡한 감정을 풀어내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스트레스나 여러 가지 쌓인 감정들을 푸는 과정에서 딱히 다른 사람은 필요하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나쁘거나 슬픈 생각들을 굳이 타인에게 전해봤자, 그 사람에게 해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 혼자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고민을 심각하게 나누면, 상대방이 이런 문제로 힘들어할까 봐 원천적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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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발걸음의 시작, 마로니에 공원

 

 

그래서 깊이 숨긴 감정 해소에 공연 관람이라는 취미활동이 나에게 적합했다. 무대 위 캐릭터를 만나면서 그들에게 공감하거나 말을 걸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물음과 감정들을 해소했다. 그들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인물들이었기에 나의 힘든 감정을 전해도 괜찮았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이 공간에서의 감정 해소와 극으로부터 마음을 정화할 수 있었던 경험이 제한되었고 나의 감정도 더욱더 혼란스러워지고 복잡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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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번아웃에 심하게 빠지려던 도중, 나에게 마지막 인턴 기회가 찾아왔다. 서류 발표일에도 별 기대 없이 텀블벅 리워드 제작 및 포장을 하고 있었고, 포장을 마무리하고 있던 5시 즈음, 서류합격 통지를 받았고 얼떨결에 4일 뒤 첫 NCS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NCS가 무엇인지 제대로 감도 잡지 못한 채 시험장에 들어갔고, 며칠 후 필기 합격이라는 결과를 받았다.

 

기쁜 마음이 들기보다 본격적으로 학교 시험 대비를 시작하려는 시기였고, 과제와 면접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가 원해서 모든 것들을 선택하고 진행한 것이었지만, 그것들을 여전히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열심히" 나의 인생 모토에 따라 면접 준비 상담도 하면서 어색하게, 엉성하게나마 면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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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으로 처음 가게 된 여의도, 벚꽃이 활짝 핀 3월 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면접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밀린 과제를 해치우고, 텀블벅 리워드를 후원자님들에게 보내기 위해 우체국, 편의점 등을 돌아다녔다. 배송에 문제가 생겨 이곳저곳 우체국을 돌아다녔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짜증이 올라오고 있던 오후 4시 정도였을까, 최종 합격자 발표가 났다는 문자가 왔다.


이번에 붙지 못하면, 그렇게 스트레스의 주범 중 하나인 학교 강의를 계속 들어야 하기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붙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다잡으면서 이름과 수험번호를 입력했다. 최종 합격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합격창을 열었던 우체국에선 회사의 건물이 보였다. 건너편 건물 15층, 내가 12월까지 일할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진짜인지 생각해볼 겨를도 없이 알바를 가야 했기에 황급히 학교에 전화해 휴학 문의를 했고, 휴대폰으로 휴학 신청서를 작성해 처리했다. 알바를 끝내고 집에 가서야 내가 1년 휴학을 했고, 12월까지 인턴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체감하였다. 1학기 수업 자료들을 정리하여 책장에 넣고 인턴 증빙서류들을 준비하면서 말이다.


내가 바라던 금융 공기업 인턴. 지긋지긋한 학교 수업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과 함께 이 은행에 대해 처음 알려주셨던 교수님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작년 내내 들었던 교수님의 수업은 내가 이 은행을 알게 된 계기이자 금융공기업에 대해 처음으로 흥미를 느끼게 해준 인생 수업 중 하나였기 때문에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금융 공기업은 딱딱한 이미지였고, 안정적인 고보수의 직장이라는 점 외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지 못했는데,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처음으로 이 은행에서 업무를 하면, 여러 방면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고 능력을 키움과 동시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면접 트라우마를 안겨준 장학금 면접에서도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기업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었는데, "내가 어떻게 거길 들어가? ㅋ", 이런 자조적인 태도로 숨기듯이 지나친 그 기업에 인턴을 하게 되었다니 참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렇게 그동안 내가 해왔던 여러 가지 활동들이 결국엔 어딘가에 쓸모가 있음을 생각하며 금요일의 합격발표 이후 바로 그 다음 주 월요일 출근을 준비했다.  4월달의 첫 월요일, 2분기를 대학생이 아닌 인턴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인생의 큰 변화가 생긴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이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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