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사.다.리' 네 번째 이야기 : '세대론'이 '새드엔딩'이 되지 않기 위해선 [문화 전반]

글 입력 2021.10.2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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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世代). 일정 기간을 두고 ‘공통적’ 경험을 바탕으로 ‘동질적으로’ 범주화된 의식과 태도, 행위 양식을 보여주는 집단을 이르는 말. 비록 그 기준(약 30년)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지만 세대에 대한 논의 즉, 세대론은 70여 년 만에 자주화와 산업화, 민주화를 이뤄낼 정도로 역동적인 사건 사고가 가득했던 대한민국 사회를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꽤나 매력적인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2030 MZ 세대가 새로운 사회 주체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세대론은 다시금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각종 언론 미디어와 마케팅 분야는 물론, 서점가에서는 90년대생 저자들의 현실 비판적이고도 자기 고백적인 이야기(≪청년팔이 사회≫, ≪K를 생각한다≫ 등)와 청년세대가 겪고 있는 심화된 불평등이 어떻게 구조화되고 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불평등의 세대≫, ≪세습 중산층 사회≫ 등)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정치권에서도 지난해 총선 이후로 일명 ‘이대남’, ‘이대녀’의 표심을 사로잡으려는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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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노동자연대)

 

 

사실 세대론에 입각해 청년세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이전에도 있어왔다. 지난 2008년 세대 간 고용 불균형 문제를 중심으로 ‘청년 담론’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88만원 세대”이 그랬고, 2011년 더욱 심각해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버티다 못해 버려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비참함을 보여준 “N포세대”가 그랬다. 그밖에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우후죽순 생겨난 “~세대” 꼬리표들은 청년 세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으며 어느샌가 그들의 ‘일부’가 아닌 곧 그들의 ‘전부’가 되고 말았다.


문제는 이러한 세대론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임의로 재단해버림으로써 집단 내 개개인이 갖는 복잡 다양성과 그에 따른 차이들을 무시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출생 시점(혹은 연령)과 그에 따른 사회 역사적 지위는 어디까지나 특정 집단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잠재적 요소에 불과할 뿐, 개개인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화역사적 요소들의 질적 양상에 따라 동일 집단 내에서도 불균형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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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동아일보)

 

일례로, 앞서 살펴보았던 “N포 세대” 중 사회 초년생으로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과도한 지출을 걱정하며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미루는 젊은이들을 이르는 “삼포세대”의 경우 전통적 의미의 가족이 갖는 ‘정상성’을 전제삼아 으레 “청년이라면 ~해야 한다”식의 잣대로 비혼이나 비출산과 같은 가치관들을 그릇된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이를 응용한 “오포세대”나 “칠포세대” 역시 때로는 막연한 두려움에, 때로는 무차별적인 혐오에 시달리고 있는 와중에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고자 하는 청년 세대에게 어떠한 희망도 심어주지 못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세대론이 이러한 프레이밍 과정을 통해 일련의 고정관년과 편견을 양산해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세대 간의 ‘절대적’ 우위를 비교하게끔 부추긴다는 데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386세대’(30대/80년대 학번/60년대생을 이르는 말로 최근에는 ‘586세대’라고 불리고 있는)와 청년 세대가 보여주고 있는 세대 갈등이다.

 

실제로, 지난 7월 KBS에서 방송된 시사기획 창 <불평등 세대가 586에게>팀이 조사한 각종 자료에 따르면 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신군부정권에 맞서 등장한 586 세대는 약 40여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정치권과 경제권, 주요 공공기관 및 권력기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우리 사회의 주요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더군다나, 지난해부터는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계 인사들의 자녀 입시비리 의혹이 하나둘씩 제기되면서 청년 세대가 느끼는 허탈감과 상대적 박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사회보험제도 개혁을 둘러싼 ‘세대 착취’ 논란 역시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심각한 저출생과 고령화 현상으로 2050년 즈음 고갈될 것으로 ‘확실시’된 국민연금은 이미 청년 세대의 공감대에서 크게 벗어난 이야기가 된 지 오래. 거기에 끝날 줄 모르고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국가 부채의 늪은 청년 세대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일도, 집도, 돈도 구할 수 없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과 ‘빚투’(빚내서 투자)라는 불확실성만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586 세대의 사정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결국, 오늘날 우리 사회가 당면한 수많은 문제들을 단순히 “세대가 달라서” 생긴 것이라고 귀결시키고 ‘편 가르기’와 ‘갈라치기’로 일관하는 그런 무책임한 세대론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세대가 다르기 때문에” 젠더/지역/인종/학력/장애/종교/빈부/민족 그리고 필자의 부족함으로 담아내지 못한 분화된 가치들까지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세대론을 펼쳐보아야 한다. 그 세대만이 내뿜는 어떤 ‘고유함’이라는 힘을 우리는 함께 나누어야 하고 나아가 공동의 문제 해결을 위해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왜 저출산을 2030의 문제라고 하는 거야?

고령화를 노인들의 문제라고 하지는 않잖아”

 

얼마 전, 한 온라인 대학 커뮤니티에서 많은 공감을 샀던 글이다. 어쩌면 일종의 감정적인 호소 혹은 토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오히려 이러한 솔직한 방식을 통해 우리는 우리 곁에 어떤 세대갈등의 문제가 있고 그것이 왜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게 만든다. 그렇다. 이 짧은 두 문장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외치고 있었다. 세대론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 누가 옳고 그르냐를 판가름하기 위한 승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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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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