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반오십 INFJ의 인턴 일지 Ep 1. 면접에서 하늘을 보다

글 입력 2021.10.24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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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 1-1. 면접, 면접, 또 면접



 
[서류전형 합격하셨으며, 면접에 관한 사항 안내드립니다.]
 

 

7월, 2021년의 하반기가 갓 시작된 무렵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mail.JPG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아무리 인턴을 뽑는 작은 스타트업이라지만, 서류를 제출한 지 3일도 되지 않았을 때라 놀라움 반 의심 반으로 일단 면접을 가겠다는 회신을 넣었다. (그래도 면접 날짜의 선택권을 준다는 점은 좋았다.)


아이러니한 점은, 서류에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임에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는 점이다. 참으로 배부른 소리가 아닐 수 없지만, 당시의 나는 꽤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상반기를 통째로 갈아 넣었던 공모전의 마무리와 더불어 계속 반복됐던 서류와 면접, 그리고 불합격 통보. 불합격에 익숙해지는 게 취준이라지만, 그때는 불합격에 익숙해짐을 넘어 합격을 해도 기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었다.



하… 또 면접이야?
 


메일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긴장을 많이 하는 나는 늘 면접에서 죽을 쒔고(지금 생각하면 떨어질 만 했다), 하필이면 6월은 공모전 막바지 불태우기와 난생 처음 경험해보는 대기업 면접 등을 겪고 번아웃이 온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게 7월을 맞이했다. 내 생일이 있는 7월은 나에게는 특별한 달로, 생일맞이 겸 휴식을 위해 본가에 내려갈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메일 한 통에 갑자기 생겨난 면접 일정은 그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만들고 말았다.

 

 
그래도, 상반기의 마지막 면접이 될 테니까…….
 

 

휴식 이후에 하반기를 준비할 계획을 세웠던 난, 이번 면접이 상반기 마지막 면접이라고 여기며 면접 이후에 본가에 내려가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반복되는 면접 탈락, 일명 면탈에 해탈했던 난 합격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Ep 1-2. 청심환을 먹지 않았더니



면접 당일, 신기하게도 긴장이 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평소 무덤덤한 성격과 달리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면접처럼 대면을 해야 하는 경우 긴장은 최대치를 기록한다. 때문에 작년 말, 첫 면접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사건 이후 면접 날 우황청심환은 나의 필수템이 되었다.


하지만 이번 면접은 왠지 청심환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라서 그랬을까? 청심환에 너무 의존하기 싫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어차피 또 떨어질 거라 생각해서 청심환을 구매할 5,000원을 투자하는 것도 아깝게 느껴져서였을까?


돌이켜보면, 정답은 ‘전부 다’인 것 같다. 덕분에 청심환을 먹지 않고도 면접을 볼 수 있다는 게 밝혀졌으니, 현명한 선택이었다.


각설하고, 청심환을 먹지 않은 평소의 나는 그대로 면접장에 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메일을 주고받았던 인사담당자 분께서 면접 진행 과정을 짧게 설명해주신 후 훗날 팀장님으로 밝혀진 면접관 T님이 들어오셨다.


전반적인 질문은 예상 질문과 다를 바 없었다. 왜 이 직무를 선택했는지, 어떻게 지원하게 되었는지, 이 회사의 플랫폼과 콘텐츠 느낌은 전반적으로 어떤지 등등…….


특이했던 점은, 늘 딱딱했던 다른 면접관과 달리 T님은 계속 유쾌한 분위기를 만드셨다는 점이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서술하자면, 면접자인 나보다 더 말씀을 많이 하는 면접관은 처음이었다.


T님과의 면접은 그렇게 면접인 듯 아닌 듯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개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는 이것이다.


 

“올해 몇 살이에요?”

“네? 한국 나이요?”

“그럼 한국 나이를 묻지, 뭘 묻겠어요ㅋㅋ”

“아… 스물다섯이요.”

“스물다섯. 스물다섯이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나가서 하늘을 봐야 하는데…….”

 


이력서에 나와 있으니 굳이 나이를 한 번 더 묻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해서 되물었던 반문이 무색하게 T님은 면접장에서는 어울리지 않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셨다. 경력 15년차 T님의 눈에는 이제 갓 졸업을 앞두고 있으면서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면접을 보러 다니는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하지만 당시의 나는 좀 삐딱해서, ‘그래서 어리니까 안 뽑겠다는 건가?’라는 생각부터 차올랐다. 불합격이 될 거라는 추측에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후에 밝혀지건대, 내가 이 회사에서는 어린 나이가 아니라는 것을 몰랐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그렇게 약 1시간에 걸친 면접이 종료되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일까, 준비했던 답안이 아닌 솔직하게 대화를 하고 나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놓고 말하자면, 그냥 떠들고 나온 것 같았다.


그날의 면접이 그렇게 느껴진 까닭이 청심환을 먹지 않았기 때문인지, 유쾌한 면접관을 만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독특한 면접 경험임에는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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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 T님의 말씀처럼 그날 내가 하늘을 봤는지 아닌지는 애석하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면접 중, 통유리로 비치던 여름 하늘은 참으로 푸르렀다.

 

 

 

Ep 1-3. 금요일 밤의 채용



면접이 끝난 후, 곧바로 집 근처에서 친구 H를 만났다.


보통 면접 이후에는 기운이 빠져서 아무도 만나지 않는 편인데, 그날은 약속을 잡고 말았다. 며칠 전, 약속을 잡을 때부터 이번 면접은 크게 긴장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체력이 남아 있으리라고 예견했듯이.


대형마트 앞, 집에 들르지도 못한 채 반 정장차림으로 H를 기다렸다. 곧이어 도착한 H는 나의 옷차림을 보자마자 나에게 물었다.


 

“뭔데 너 면접 봤냐?”

“응ㅋㅋ 근데 망했어~”

 

 

질문을 듣자마자 자동으로 튀어나온 ‘망했다’는 답. 세상에 잘 본 면접은 없기 때문인지, 혹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한 자기방어기제였는지는 알 수 없어도 당시는 정말 그렇게 느꼈다.


H와 나는 수고의 의미로 맛있는 걸 잔뜩 먹자고 했고, 과자를 많이 샀다는 핑계로 이틀 내내 함께 음주를 했다. 그리고 이틀째가 되던 금요일 밤 9시, 나의 자취방에서 H와 맥주 한 캔을 홀짝이던 중 예상치 못한 메일을 받았다.


 
[내부 논의 결과 OO님을 채용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근무사항은……]
 


사실 굳이 메일을 열어보지 않았더라도, 제목의 ‘채용확정’만 보고도 알 수 있었다.


기뻐야 했다. 수없이 많은 탈락 끝에 겨우 받은 합격 메일이니, 기뻐야 정상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쁨 대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마치 서류 합격 메일을 받았을 때처럼.


 
면접 본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금방 결과가 나온다고? 근데 왜 이 시간에 결과가 나오지? 금요일 밤인데? 이 회사 사람들은 퇴근도 안 하나?
 


별의별 생각 끝에 문득 찾아온 하나의 생각.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뜬금없었다.


 
나… 집 가야 되는데?
 


아마 그때 술을 먹었기 때문에 나온 생각인 듯하다. 혹은 입사 날짜가 하필이면 내 생일이었기에 헛웃음을 터뜨렸던지도.


다행인 점은 입사까지 약 일주일 정도의 기간이 남아 있었다는 점이고, 다음 날 본가에 가려던 계획은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마음먹고 휴식하며 다음을 준비하겠다는 계획은 결국 지키지 못했지만 말이다.

 

 

[주혜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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