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카오스'가 왔지만, 그럼에도 다시 시작해보자! - 십개월의 미래 [영화]

임신을 둘러싼 현실 "카오스"가 산뜻한 "미래"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글 입력 2021.10.22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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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제 2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그야말로 정말 '재밌는' 영화를 하나 관람했었다. 바로 영화 <십개월의 미래>다.

 

'29살 게임 개발자 '미래'가 예기치 못한 임신을 하면서 벌어지는 10개월간의 이야기'라는 시놉시스만 봤을 땐, 얼마나 또 답답한 현실이 그려지고, 주인공의 갈등들이 안쓰러울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영화관에 들어섰었는데, 이는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러한 소재를 다룬 영화들 중에 이렇게나 산뜻한 재미를 주면서 현실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까지 놓치지 않는 영화가 있었을까.

 

그리고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지난 10월 14일 개봉을 하고, 일주일도 안되어서 1만 관객을 동원하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참고로, 독립영화 1만은 일반 상업영화 100만 만큼의 큰 가치 있는 성과로, 어려운 시기에 빠른 속도로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은 꽤나 좋은 소식이 분명하다.)

 

 

 

'미래'의 이야기에 담백하고도 유쾌하게 녹여낸 사회 문제.


 

* 영화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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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미래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되고 현실을 부정하는 순간부터, 태어난 아이와 인사하는 순간까지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꽉꽉 눌러 담되, 넘치지 않고 깔끔하게 담아냈다. 그렇기 때문에, '임신'과 '임신을 한 여성', 그리고 '엄마'라는 여성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역할을 둘러싼 사회에 관해 굉장히 현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의 가장 큰 차별점이자 호평을 받는 지점은, 이 영화가 전반적인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것에 집중해서 파고드는 것보다는 '미래'라는 한 개인의 외면적, 내면적 변화 그리고 임신이라는 하나의 가볍지만은 않은 사건을 통해 '한 사람이 성장하는 내용'이 중심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 어떤 감정적 공감을 억지로 요구하지 않고, 교훈을 주기 위해 주인공의 비극적인 서사를 부각하거나 꼬집어내지 않는다. 대신에, 주인공의 '십개월'을 가장 자연스럽고 또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관객으로서 전체적인 주인공의 스토리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한 사람 자체를 응원할 수 있게 한다.

 

그러다 보니, <십개월의 미래>는 끝까지 '유쾌한' 리듬을 유지하고 있으면서도 현실의 씁쓸함을 녹여내어, 더 부담 없이 임신을 둘러싼 사회 문제들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매력적인 영화다.

 

 

 

예상치 못하게 임신을 한 미래의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영화의 제목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십개월> 이었다고 한다. 영화가 말 그대로 미래의 임신 기간, '십개월'을 다루고 있으니 꽤나 직접적으로 영화를 표현하는 한 단어였던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주인공의 이름인 '미래'가 제목에 추가되면서, 미래가 앞으로 갈 미래라는 중의적인 의미가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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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다 보면 미래는 꽤 성실하고 유망한 게임 개발자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미래의 게임 회사가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미래는 '임신'중이라는 이유만으로 발목이 잡히게 되고, 그때 미래는 자신이 얼마나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는지 허탈하면서도 분노가 섞인 말투로 회사에 얘기를 하고 쓸쓸하게 회사를 나온다.

 

아이를 낳긴 하지만, 일단 중국으로 같이 넘어가자는 제안에 남자친구는 '넌 엄마잖아'라며, 미래가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무책임하다는 식으로 얘기한다. (본인의 책임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낙태 문제는 제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어렵고, 소소하게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맥주 한잔 마시는 것도 임신을 했으니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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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집에서마저도 미래는 영화 초반부터 영화가 흘러가는 동안 '20대 후반 결혼을 생각해야 하는 딸', 그리고 '혼전임신을 한 딸'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에 미래가 온전하게 미래가 되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은 미래의 자동차밖에 없다. 성에 차지 않는 무알코올 맥주와 함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자동차' 안에서다.

 

변해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의 태동을 느끼는 순간, 그리고 그런 아이에게 '카오스'라는 이름도 지어주는 순간도 자동차 안이다. 안정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이 미래의 '자동차'는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앞으로 미래가 사회에 떠밀려서 자신의 바퀴를 굴릴 것인지, 미래 스스로 엑셀을 밟으며 나아갈지, 미래의 '미래'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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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혼란스러운, 그야말로 '카오스'가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뜻한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영화 <십개월의 미래>. 미래는, 카오스가 마침내 세상을 마주하고, 미래를 만난 순간, 새로운 하루를 다시 시작해 볼 수 있을까.

 

경쾌한 영화 진행 방식 속 사회적인 이슈를 적절하게 다루며 명확한 주제의식을 끝까지 끌고 나가는 깔끔하고 재밌는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현재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나도 다시 한번 보러 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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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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