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에 다시 재즈 클럽의 의미를 찾기 위한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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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즐기는 일에서만큼은 나는 참 운이 좋았다. 부모님은 내가 읽을 책을 사고 영화관 구경을 함께 가는 것에 인색하지 않으셨다. 열세 살 언저리에, 세상에 좋은 음악이 참 많다는 걸 깨달으면서는 공연이 그 지출에 따라붙었다. 이맘때 재즈 공연에서 곧잘 들리는 "Autumn Leaves"는 어릴 적 웹서핑 중에 우연히 재즈를 알게 해준 곡이었다. 방학이면 부모님은 대학생이던 누나를 볼겸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열세 살 여름방학에는 홍대의 재즈 클럽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재즈밴드의 공연을 보게 되었다. 뭐든 흡수가 빠를 나이여서 돌아오는 걸음이 절로 바운스되었던 밤이었다.
스무 살이 되어서 서울에 올라오니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데가 그때 들렀던 재즈 클럽이었다. 그곳을 다시 찾은 날이 하필 잼세션이 열리는 월요일이었다. 정확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몰랐지만 며칠 뒤에도, 그 다음에도 음악을 들으러 갔다. 홍대 "에반스"는 대학생활에서 술 다음으로 외로움을 기댈 거리가 돼주었다. 이때만 해도 국내 뮤지션들을 하나 하나 알지는 못했고 관객으로서 연주를 다 따라가지도 못했지만 무작정 믿는 종교처럼 몸을 흔들며 들었다. 직관적으로 귀가 반응하게 되는 때도 있었다. 기타리스트 준킴님과 김형준님이 "Face to Face" (2015) 앨범을 발표하면서 에반스에서 긱을 열었다. 재즈기타의 묘미를 좀더 알아가게 된 것은 더 나중이었지만, 선명한 헤드 멜로디와 그림을 그리는 듯한 솔로 연주를 듣고 그 자리에서 앨범을 샀던 기억이 난다. 오늘같이 흐린 날에 창밖을 보며 듣기 참 좋은 음악이다.
그후로 조금씩 클럽 구경의 반경을 넓히게 되었다. 이태원 "부기우기"와 "올댓재즈", 2018년에 문을 연 성수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 등 여러 곳을 다니면서 곳곳의 고유한 분위기는 저마다 어떤지, 좋은 연주가 무엇인지는 계속 잘 모르지만 몰입도 높은 연주는 어떠한지도 차츰 귀에 익게 되었다. 수요일마다 교대 "디바야누스"에서 보컬리스트 말로님이 공연하신다는 얘기에 갔던 적 있다. 동그란 안경 차림의 말로님이 역시 동그란 안경잡이였던 존 레논의 "Imagine"을 부르셨다. '재즈가수들은 원래 팝도 자주 노래하는 건가?' 그때는 역시 몰랐다. 무엇이든 노래하고 연주할 수 있다는 걸. 뮤지션이 스스로 내키기만 한다면. 그리고 조금 지난 뒤에 기타 가방을 매고 쏘다녔던 적이 있었다. 다시 야누스를 찾았는데 보컬 잼세션이 열리는 일요일이었다. 스탠더드곡 "Come Rain Or Come Shine"을 정말 멋지게 노래하신 분이 있었는데 자기도 아마추어라고, 주말마다 마이크 앞에 서고 다른 분들 노래도 들으려고 온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열거한 곳들 중에 잠시 쉬는 곳도, 아쉽게 문을 닫은 곳도 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많은 게 달라지고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에반스와 야누스는 지난 9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일요일의 야누스 잼세션은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새롭게 문을 연 곳도 있다. 후암동 "사운드독", 연남동의 "연남5701", 구의동 "디도 재즈라운지" 등 이들은 '2세대 재즈바'라고 불리며 지금의 재즈 공연에 물꼬를 트고 있다. 그렇지만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될지 알수없는 때이다. 지방은 피해가 더 심각하지 않았을까. 부산 "몽크"는 안녕을 고했다. 대구 "올드블루"는 여전히 공연 일정이 비어있다. 불가피하게 일상이 정지되었던 시기에 문화예술계 역시 예외일 순 없었다. 비대면 전환이 대안으로 자리잡히면서 공연도 온라인 중계 방식을 택하는 곳이 많아졌다. 특히 음악페스티벌이 그렇다. 재즈의 경우, '세계 재즈의 날' 기념 행사와 공연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비대면으로 관객을 찾아갔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전야 콘서트가 온라인으로 열렸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은 작년에는 온라인 개최라는 차선책을 택했다. 올해는 11월로 연기되어 치뤄진다. 작년에 개최가 취소되었던 '서울숲 재즈페스티벌'은 올해 당초 예정되었던 야외 축제가 취소, 온라인 공연과 일부 공연시설에서의 실내 공연으로 전환되어 아쉬움을 안겼다. 지자체 '청춘마이크' 무대도 비대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비대면 형식 공연의 한계는 어느 정도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성사될 수 있다는 점이다. 수익 면에서도 효율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재즈 공연의 주 무대가 되어온 클럽의 경우,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이나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여는 곳도 있지만 그 자체가 수익 모델이라기보는 현장 공연을 '보여주는' 형식이다. 재즈의 본고장 뉴욕의 클럽들을 사례로 들며 국내에서도 스트리밍과 함께 온라인 티켓 판매, 기부금 모금 등 체계적인 비대면 공연 시스템을 도입할 것을 제안하는 반가운 목소리도 있다. (김민지, 재즈계의 현황 - 코로나 시대가 만든 변화, 2021) 그러나 현장 버스킹 공연에서도 여전히 후원 모금이 미비한 한국에서 돈을 내고 온라인 공연을 보는 것을 선호하는 이가 얼마나 될지는 선뜻 낙관하기 어렵다. 재즈 공연이 관객에게 어떻게 향유되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민지님의 소논문이 지적했듯이, "손님으로서는 코로나로 여행도 못 가는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일상에서의 여가를 재즈 클럽에서 보내는 듯하다. (앞의 글) 이는 재즈 클럽들이 와인이나 칵테일과 함께 여흥을 즐기는 데이트 명소라는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으로, 업소 측에서도 이러한 인식에 기대어 마케팅 전략을 꾸리고 관객을 유치하고 있다. 업소 단위의 공연장이 온라인 관객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영업 시스템을 도입하기에는 이처럼 실제 공연을 즐기는 소비층의 욕구와 일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맹점이 있다.
물론 반례도 있다. '포지티브 제로 라운지'는 올해 들어서 매주 특정 요일에 "Jazz Time in Seoul"이란 제목으로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방식 공연을 진행했다.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공연 콘셉트에 맞는 신청곡을 받아 이를 뮤지션들이 들려주는 방식이었다. 김민지님의 앞의 글 참조. "스텔라이브"는 라이브앨범 녹음을 위한 공연을 진행하는데 역시 유튜브로 스트리밍을 하며 실시간 댓글을 통해 신청곡을 받는 등 관객과의 소통에도 신경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인다. 뮤지션 김이슬님은 "봉천동 예술방"이라는 포맷을 기획하며 자신이 이끄는 '김이슬 트리오 + 1'과 '헤나 쿼텟'의 라이브 공연을 유튜브 계정으로 중계하고 있다. 앞의 글(김민지)에서 제안하는 바가 "체계적인" 시스템 도입을 통해 '운영자는 가게 홍보와 운영에 보탬을, 연주자에게도 홍보와 수익의 효과를, 그리고 현장 관객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곡명 등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접하며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상황'의 여건을 조성하자는 것이니만큼, 이를 위해 여러 관계자가 머리를 맞댄다면 긍정적인 활로가 충분히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 인용 출처 <김민지, 재즈계의 현황 - 코로나 시대가 만든 변화, 2021>
[김경민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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