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상 속 진짜(uncool)를 찾아 [영화]

락앤롤과 함께하는 우리 모두의 성장기, <올모스트 페이머스>
글 입력 2021.10.19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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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한 번쯤 우상을 가져본 적 있다. 그 이유와 대상은 제각기 다르겠지만, 우리는 한 번쯤 어떤 대상을 막연하게 동경해 본 적이 있다. 동경의 대상은 우리의 친구일수도, 연예인일수도, 우리의 부모님일 수도 있다. 우상을 가진다는 건, 닮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우리 모두가 거쳐온, 우상에 대한 회고록이다. 막연한 동경을 버린다는 건 성장을 의미한다. 그래서 <올모스트 페이머스>속 주인공의 성장기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며 어른이 되어 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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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주인공 윌리엄은 숫기없는 소년이다. 윌리엄은 누나, 어머니와 함께 산다. 대학 교수인 어머니는 보수적이고, 누나는 락앤롤을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십대. 어머니와 누나의 갈등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누나가 자유롭게 살겠다며 집을 떠나기 전 까지만 해도, 윌리엄은 제대로 기를 펴지 못하는 소년에 불과했다. 우상도, 반항도, 일탈도 꿈꿔본 적 없는 그런 아이 말이다. 엄마 앞에서 사이먼 앤 가펑클의 ‘America’를 틀어놓으며, 집을 떠나려는 이유를 항변하려던 누나는 정말 차에 짐을 싣고 떠난다. 떠나기 전, 누나는 윌리엄의 어깨를 붙잡고 속삭인다. “침대 밑을 봐. 그게 널 자유롭게 할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인다. “언젠가 넌 멋진 사람이 될 거야.”


누나가 자유를 찾아 떠난 뒤, 윌리엄은 침대 밑, 누나가 수집한 락 음반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건 윌리엄이 인생에서 처음 겪는 엄청난 변화의 순간이 된다. 침대 밑에 있던 비치 보이스, 밥 딜런, 조니 미첼, 크림… 의 앨범들. 누나가 윌리엄을 위해 침대 밑에 남겨놓은 것은 하나의 세계였다. 누나가 들으며 자유와 반항정신을 배웠으며, 분노와 설레임, 사랑을 공유했던 락앤롤의 세계. 누나는 본인이 먼저 발견한 락의 세계로 윌리엄을 초대했고, 윌리엄은 그 초대에 응한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소년은 마음에 락앤롤이라는 씨앗을 품기 시작한다. 동경하는 무언가를 처음 가지게 되었다는 건 소중한 일이다. 동경하는 대상은, 우리에게 ‘이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동경은 이상과 연결된다. 막연한 동경에서 이유를 찾게 되는 순간, 그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되고,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이상을 그린다.


누나가 남긴 음반들을 시작으로 윌리엄은 빠르게 락에 매료된다. 소년은 점차 락스타들을 동경하게 된다. 블랙 사바스, 엘튼 존, 레드 제플린을 들으며 소년은 고등학생이 된다. 여전히 학교에서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소년은 혼자 노트에 락밴드들의 이름을 끄적이고, 집에 가면 락을 듣는다. 동경은 소년을 꿈꾸게 했다. 윌리엄은 록 칼럼니스트를 꿈꾸게 된다. 윌리엄이 살고 있는 샌디에고 주에 유명한 록 칼럼니스트인 레스터가 방문한 것을 알고, 윌리엄은 레스터를 찾아간다. 레스터를 졸졸 쫓아다니며 본인의 글을 보여준다. 중년의 남성인 레스터도 윌리엄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락밴드를 동경하며 칼럼니스트를 꿈꾸던 소년이었던 시절 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은 묘하게 윌리엄이 접하는 모든 인물에서 윌리엄을 오버랩시켜 생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윌리엄이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순수함과 순진한 동경을 가졌던 그 시절의 우리 말이다. 레스터는 윌리엄의 글을 읽고, 윌리엄의 글솜씨를 인정한다. 레스터는 윌리엄에게 유명 록밴드, ‘블랙 사바스’에 대한 기사를 써 보라는 과제를 내 준다.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스승을 만난 윌리엄은 과제를 잘 해내고 싶다. 그래서 윌리엄은 며칠 후, 블랙 사바스의 콘서트를 보러 간다. 패기 넘치게 블랙 사바스와 인터뷰를 해 보려고 하지만, 백스테이지로 향한 고등학생 윌리엄은 당연하게도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곳에 서 있던 윌리엄은, 블랙 사바스 콘서트의 오프닝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는 밴드 ‘스틸 워터’ 를 마주한다. (‘스틸 워터’는 감독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밴드이다.) 밴드 멤버들의 이름과, 그들의 음악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줄줄이 말하는 이 고등학생에게 ‘스틸 워터’는 관심을 준다. 윌리엄은 그렇게 스틸 워터를 따라 백스테이지에 들어가고, 무대 뒤에서 그들의 공연을 본다. 윌리엄이 그토록 동경하던 락스타들의 세계에, 윌리엄이 처음으로 발을 걸치게 되는 순간이다. 스틸 워터는 급기야 윌리엄을 그들의 미국 투어에 동행해도 된다며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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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윌리엄은 또 다른 세계에 발을 내딛는다. 동경하기만 했던 세계에 이제는 내가 있다. 동경하던 사람들은 내 곁에 있고, 잠시나마 나는 그들의 일원이 될 수 있다. 동경에는 함정이 있다. 우리가 동경하는 대상은, 우리가 그 대상을 완전히 모를 때 가장 아름답고 빛난다. 동경은 막연함에서 시작한다. 무결하게 완벽한 대상은 없다. 하지만 동경이란 건, 막연하게 동경의 대상이 완벽할 것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하지 않는가. 빛나던 우리의 동경의 대상은, 그 실체를 마주했을 때 흔들리고 부서지기 마련이다. 마냥 멋질 것만 같았던 락스타들도 결국 사람이었다.

 

밴드에서 가장 재능있으며, 눈에 띄는 기타리스트 ‘러셀’은 멤버들과 싸운다. 소신있고 세상 만사에 여유롭기만 해 보이던 락스타도 가짜와 진짜 사이에서 고민한다. 레설은 자신을 둘러싼 열기 가운데에서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를 찾고 싶어한다. 윌리엄은 “나는 이제부터 진짜만을 찾을 거야”라고 호기롭게 말한 뒤, 우연히 만난 청소년들의 파티에 합류하고, 약에 취해 아이처럼 행동하는 러셀의 모습을 본다. 윌리엄이 본 것은 우상이 아닌, 한 명의 사람이다. 자신의 우상인 락스타가 아닌, 고뇌하고 괴로워하는 사람.


윌리엄은 첫사랑에서도 쓴 맛을 본다. 윌리엄은 본인들을 ‘밴드 에이드’ 라고 칭하며 스틸워터를 따라다니는 그루피들 중 엉뚱하고 자유로워 보이는 ‘페니 레인’을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페니 레인은 이미 여자친구가 있는 러셀을 사랑한다. 러셀은 페니와 애매한 관계를 유지한다. 윌리엄은 러셀 때문에 마음 아파하는 페니를 옆에서 지켜본다. 하나를 선택 할 용기 없이 찌질한 락스타와, 그를 좋아하는 자신의 첫사랑. 윌리엄은 사랑은 마냥 순수한 마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다. 그렇지만 윌리엄은 용기를 내본다. 러셀 때문에 상처받고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페니. 윌리엄은 그런 페니를 끌어안으며 귀 옆에 속삭인다. “너는 이 말을 많이 들어봤겠지만, 나는 한 번도 안 해 봤어 … 어차피 넌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사랑해.” 소년은 그렇게 수줍은 입맞춤에 첫 고백을, 첫 사랑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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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하면 행복해질 줄 알았던 우상들의 세계는 소년에게 고민을 가져다준다. 마냥 속해보고만 싶었던 세계에서 정작 소년은 겉돈다. 영화 속에서 페니 레인은 윌리엄에게 말한다. “너는 락을 하기에는 너무 착해.” 전화로 고민을 털어놓는 윌리엄에게 인생 선배 레스터는 말한다. “락스타들은 너가 멋진 사람인 것처럼 느끼게 만들어. 그렇지만 난 너를 봤잖니? 넌 멋지지 않아.” 윌리엄은 솔직하게 대답한다. “알아요. 심지어 스스로 내 자신이 멋지다고 생각했을 때에도, 나는 멋지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당신이 집에 있어서 다행이에요.” ‘멋짐(cool)’을 동경했던 소년을 레스터는 위로한다. “나는 항상 집에 있어. 나는 멋지지 않지(uncool) … 이 파산한 세상에서 유일한 진짜 통화는, 네가 멋지지 않을 때 누군가와 나누는 마음이야.”


‘cool’‘uncool’ 사이에서 외롭게 떠돌던 소년은 이제 멈춰선다. ‘쿨’한 락스타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는 사실 uncool 이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내가 진짜 나를 마주하는 순간, 정착하지 못하던 ‘나’는 속할 곳을 찾는다. 결국 우리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내가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역설적으로 찌질하고 소심한 나를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소속된다. 한바탕 소동이 난 후에 스틸 워터, 밴드 에이드들, 그리고 윌리엄은 한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적막이 흐르던 버스 안에 엘튼 존의 ‘Tiny dancer’가 흐르고, 서로로 인한 서운함과 상처, 고민을 한 데 접어놓은 채 버스 안의 모두가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부르던 순간. “나 집에 가야해” 라 말하는 윌리엄에게 페니 레인은 대답한다. “너는 이미 집에 있어.” 아무 가면과 없이 음악 앞에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만큼은 그들 모두 진짜였기에. 우리가 진짜로서 존재할 수 있는 순간과 사람들은 우리의 안식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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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스타들과의 짧은 동행을 마친 소년 윌리엄은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성장은 순수를 탈피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막연히 응시하던 상공 위의 이상에 대한 환상과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순수를 버릴 때, 우리는 성장한다. 이는 참 씁쓸한 일이기도 하다. 순수함을 지운다는 건, 그만큼 동경할 대상이 줄어든다는 말이기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는 꼭 씁쓸한 일 만은 아니다. 깨지고 부딪히며 변하는 우리의 삶과 지워져가는 순수함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들은 존재한다. 그리고 이런 ‘변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가 순수함을 남겨두고, 더 높은 상공에서 벗어놓은 순수를 바라볼 때야 비로소 볼 수 있다. 집에 돌아온 윌리엄은 더 이상 막연하게 ‘쿨함’을 쫓지 않지만, 여전히 락밴드의 음악을 사랑한다. 윌리엄에게 쓴 소리를 듣고 마지막까지 uncool함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을 거부했던 러셀이지만, 락을 좋아하는 소년 윌리엄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기 때문에 그는 윌리엄을 다시 찾아가 진심으로 사과한다. 페니 레인은 이제 러셀과의 이뤄질 수 없는 관계를 인정한다. 사랑할 대상을 잃고 외로이 남겨진 페니 레인에게는, 여전히 윌리엄이 주는 관심과 사랑이 남아있다.

 

영원히 순수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은 곧 정체를 의미한다.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없으며, 누군가를 따라한다고 그 사람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사랑은 로맨스 영화같지 않다. 하지만 성장은 우리에게 순진한 이상과 동경 그 너머의 것을 준다. 초라함 속의 안정과 동질감, 사랑과 우정에 조금 더 진실할 수 있는 태도, 동경을 지우고 직시한 대상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애정. 성장은 결국 ‘진짜’로서의 나, 그리고 진정한 내 것을 찾아가는 과정이리라.

 

유년기에 남겨진 순수. 순수를 버리며 우리가 겪은 성장통은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순수는 추억을 남긴다. 버스 안에서 등장인물들이 Tiny dancer를 따라 부르던 순간처럼. 이미 지워져버린 순수가 그리울 때에는 순수를 추억하면 된다. 추억하고 성장하는 우리 안에는 윌리엄, 러셀, 레스터, 페니 레인이 있다.

 

 

[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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