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TMBP 11. 내게 글쓰기는 물컵이다

내 안에서 출렁이는 것의 정체를 알아가는 과정
글 입력 2021.10.17 22:00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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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BP[Too Much 'B'formation Project]

 

TMB프로젝트는 한국말로 구구절절이라는 뜻의 '투머치인포메이션'이라는 단어에서 영감을 얻은 프로젝트로, Inforamtion의 I 대신 제 이름 첫 글자이자 마지막 글자인 B를 넣었습니다. 나로 시작해서 타인에게 가닿기 위한 에세이 프로젝트입니다. 〈내게 글쓰기는 물컵이다〉로 다시 시작합니다.

 

 

컵_물_글.jpg

 

 

남겨질 글이 벌써 부끄럽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달리 24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기록이 무섭다. 내가 이곳저곳에서 본 좋은 문장을 수집하는 것처럼, 앞뒤 문맥을 제하고 누가 내 글 속의 문장을 가져가 오해하진 않을지 후환이 두렵다. 만약 내가 유명해진다면 나 같지 않은 나의 파편들이 이곳저곳에 떠돌아다니다가 나를 찌를 테다.

 

작년 4월에는 에세이 프로젝트 TMBP를 시작했다. 쓸데없는 정보가 많아도 너무 많다는 뜻의 TMI(Too Much Information)에 내 이름 ‘비'의 이니셜을 넣어 변주한 제목이다. 지난날의 나는 TMBP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로 시작해서 나로 끝나는 에세이 프로젝트'. 한 해 동안 총 10개의 글을 내보냈다. 누가 볼까 싶었지만 당시 한 편당 평균 조회수는 1만이었다. 이 조회수는 내가 취업을 하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콘텐츠 마케터 면접 당시 나는 나름 비장의 무기로 내가 쓴 글들의 조회수를 촤르륵 뽑아 들고 갔다. (그래봤자 한 장이다.) 면접의 결과로 나는 타인의 흥미로운 생각을 다듬고 요약해서 더 많은 이에게 보여주는 일을 한다.

 

TMBP의 기획의도는 에세이는 결코 나를 빼놓고는 쓸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인공이 다른 인물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고 갈등을 반복하며 핵심 메세지를 전달하는 거라면, 에세이는 일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느낀 바를 독자와 공유하고 그렇게함으로써 나의 시선에 특별함을 부여하는 장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자극을 줄 거리들을 찾아다니며 그럴듯한 메시지를 도출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겪을 만한 일들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참고할 만한 메시지를 주는 것. 결국 그게 내가 하고싶었던 것 같다. 에세이를 씀으로써 도출한 메세지는 내가 에세이를 쓰지 않았으면 평생 알지 못했을 중요한 가치들을 인식하게 한다. 일상은 익숙하고, 익숙한 건 늘 같다는 거고, 비슷한 건 눈여겨보게 되지 않게 되니까.

 

글 쓰는 건 부끄럽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너무 귀찮다. 글을 쓰지 않는다면 안 해도 될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지나칠 법한 것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좋다' 한마디면 끝낼 일을 남들에게 전할 땐 내가 어떤 맥락에서 좋다고 느꼈는지 설명해야 하니까 나름의 논리적인 이유를 생각하고 덧붙여야 한다. 마감이 다가올 때의 압박감은 거의 죽을 맛이다. 마감 당일날 한 문장도 쓰지 않았을 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잘 써내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마감은 이렇게 미룰 거면 진작 대충 쓰고 편히 쉴 걸 정도의 퀄리티가 나온다. 그렇게 마감을 해내고 나면 부끄러움과 후회가 밀려든다. 누군가 읽어달라고 글을 썼으면서도, 누가 앉은 자리를 고쳐 앉고 읽는다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이런 글들은 돈이 되지 않는다. 돈을 쓰게 하는 건 설득의 영역인데, 나 자신도 작품에 자신이 없다면 누가 돈을 쓰겠는가. TMBP를 그만둔 것도 돈값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였지만 정작 1년 동안 나는 장문의 글을 하나도 쓰지 않았다. 글을 쓰는 건 시간을 내야 하는 일이다. 글쓰기보다 재밌는 게 많다. 누가 나보다 훨씬 재미있게 쓴 글을 손가락으로 휙휙 넘기며 읽거나 애써 만든 것들을 가볍게 볼 수도 있다.

 

근데 왜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을 쓸까. 내게 글쓰기는 ‘물컵’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컵으로 여기고 싶다. 대학교 때, 내가 전공생도 아니면서 연기학과 수업을 들을 때 어느 날 교수님이 다음 수업에 머그컵 하나를 준비해 오라고 했다. 마땅한 컵이 없어서 편의점에서 얼음컵 하나를 사서 얼음은 커피를 부어 먹고 컵은 씻어서 가져갔다. 거울로 되어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연습실에서 나를 포함해 연기학과 전공생 20명 정도가 각자의 컵을 들고 모였다. 교수님은 가져온 컵에 물을 담고 싶은 만큼 담으라고 했다. 그동안 교수님은 바닥에 테이프로 원을 그렸다. 물을 다 채운 사람은 교수님이 그린 원 안에 들어갔다. 멈추거나 물을 쏟는다면, 퇴장하는 규칙의 게임이었다. 20명의 학생들은 각자의 물컵을 들고 원 안에서 서로 부딪치지 않게 아무 방향으로 걸었다. 내 컵은 컵의 너비가 넓어 아주 작은 움직임에도 물이 출렁, 출렁거렸다. 물컵을 들고 걸으니 보폭이 좁아졌다. 바닥에 발을 조심스레 놓게 되고,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에 더 미세하게 반응하게 됐다. ‘물을 쏟으면 안 된다’는 목표가 있으니 평소 걸을 때와 다른 행동이 나온 것이다.

 

교수님은 이 놀이 끝에, 관객을 잊으려면 내가 무엇을 목표로 이 연기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무대에 서거나 카메라 앞에 서서 긴장될 때면 ‘물컵'을 떠올리라고 했다.

 

연기는 그만뒀지만 물컵을 갖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물컵을 갖는다는 건 어쩌면 관점을 갖는 것이다. 내게 글쓰기는 타인의 시선 속에 살지 않고 나의 중심을 지킬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고, 끝까지 지키고 싶은 물컵이다. 내 안에서 찰랑대는 무언가를 쥐도 새도 모르게 흘려 버리지 않고 꼭 지키고 싶다. 이 글을 시작으로 앞으로 2주에 한 번씩 내게 마감을 주고자 한다. 다음 에세이 주제로는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들에 관해 써봐야겠다. 글이 술술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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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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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neholyland
    • 내 물컵을 지키자..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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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빈
    • 역시나 시작마저 좋은 TMBP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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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현빈
    • 잘 읽었습니다  생각이 많아지네요
    •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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