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이야기를 향으로 표현한다면, 머스키 마일드(Musky Mild)

향으로 올 겨울의 나를 기록하기
글 입력 2021.10.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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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어떤 향수 냄새를 맡고 완전히 잊고 있던 누군가를 떠올린 적이 있다. 누군가의 너무 짙은 향수 냄새에 빨리 그 사람의 곁을 떠나고 싶었던 기억도 있다. 인간에게 주어진 다섯 가지 감각 중 시각이야말로 누군가의 인상을 결정하는 가장 빠른 감각이지만, 후각도 시각만큼이나 중요하다. 보지 않고도 누군가의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고 인상을 완전히 바꾸기도 하니 말이다.

 

그렇기에 향수는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자 한 사람의 취향을 드러내는 좋은 도구다. 향수에는 여러 가지 향료를 조합해 만들어진 무수한 향들이 존재하고,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각기 다른 이미지를 가진 향수 브랜드들도 아주 많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취향에 맞는 향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수많은 선택지 중 펄스테이(perstay)의 향수에 눈길이 간 것은 ‘다채로운 공간에서 발견한 이야기를 향으로 표현’한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원래 니치 향수('니치'(Niche)는 '틈새'를 뜻하는 이탈리아 단어로, '니치 향수'란 일반 향수와는 달리 특정 취향, 소수를 위한 특별한 향수를 뜻한다.)를 좋아하긴 하지만 단순히 향기로운 향을 위해 향을 배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향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펄스테이(perstay), 머스키 마일드(Musky Mild)


 

펄스테이(perstay)는 perfume과 stay의 합성어로, 1인 조향사 펄스(pers)로부터 설립되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여러 조향사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향수로서의 본질을 위해 화려함은 배제하고 미니멀리즘한 구성에 중점을 뒀으며 향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절제된 디자인으로 완성했다. 이번에 리뷰할 머스키 마일드(Musky Mild)는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향수다.



관련 이미지 2-1.jpg

 

 

‘폭신폭신한 침대에 몸을 누이자마자 구름 위에 떠있는 듯한 포근함이 온몸을 감싼다. 노을 빛과 함께 느껴지는 머스크의 맑고 깨끗함.’

 

 

지난 겨울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퇴근길에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과 구름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입니다. 해는 어느덧 넘어가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고 있었고, 그런 하늘 빛을 받아 오묘한 주황빛을 내는 구름들이 너무나 포근하면서도 따뜻해서 그냥 푹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감을 받은 이미지와 향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먼저 접하니 향을 뿌리기도 전에 왠지 어떤 향일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트러스 풍미의 머스크’라는 설명에 폭신한 구름와 포근한 하얀 이불을 상상하며 향수를 뿌렸다.

 

 

이미지 1.jpg

 

 

TOP:  mandarin, black currant

MIDDLE: orange flower, jasmine, tuberose

BASE: white musk, vetiver, vanilla

 


탑 노트는 만다린과 블랙커런트. 머스크의 달콤함을 기대했던 나는 예상과 다른 시트러스함에 잠시 의아했다가 주황빛의 구름 이미지를 보곤 이내 납득했다. 상큼한 만다린과 블랙커런트 향은 겨울보다는 봄이나 여름과 더 어울리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 뒤로 이어지는 자스민과 튜베로즈, 오렌지 플라워의 향과 베이스인 화이트 머스크, 바닐라, 베티버 향에 겨울의 이미지를 바로 떠올렸다. 펄스테이의 머스키 마일드는 달달하고 포근함으로 가득한 전형적인 겨울 향수에 의외성을 한 방울 더한 향수였다.

 

향을 맡고 나니 영감을 받은 이미지와 이야기가 그대로 그려졌다. 후각이 아주 예민하거나 향을 공부하지 않는 이상 향수에 쓰이는 향료를 이름만 보고 향을 바로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런 향수의 세계에서 길을 잃기 쉬운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런 선명한 이미지와 이야기는 향을 선택하는데 있어서 좋은 지표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직접 시향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향을 그려보는데 유용할 것 같다.

 

지속성도 인상적이었다. 다른 오 드 퍼퓸 향수를 가지고 있는데 머스키 마일드는 그보다 더 지속력이 길게 느꼈다. 늦은 저녁까지도 잔향이 계속 남아있을 정도였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과 새로운 만남의 앞에서, 당신이 몸을 뉘고 생각을 정리하는 그 공간에 서도 향기는 당신과 함께합니다.’라는 펄스테이의 소개글처럼 머스키 마일드의 향은 긴 지속력으로 일상을 보내는 내내 함께했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 향수


 

어릴 때부터 뻔한 것이 싫었다. 대다수가 선호하는 것에 괜한 반감이 드는 반골기질이 있었다. 음악 취향도, 취미도 뻔하지 않은 걸 찾아 다녔고 그건 향수도 마찬가지였다.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은 작은 향수가게에서 산 포근한 향의 향수가 내 첫 향수였다. 그 뒤로 구매한 것도 대부분 니치 향수였다. 향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기에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유일하듯 내 향수도 뻔한 향이 아니었으면 했으니까. 그런 점에서 머스키 마일드의 상큼한 포근함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는 향수를 종류별로 사 모으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신 해마다 계절에 따라 주로 뿌리고 다니는 향수가 있다. 그래서 그 해의 계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향이 있다. 3년 전의 겨울은 달콤하고 묵직한 꽃향으로, 작년의 여름은 숲이 연상되는 무겁고도 시원한 향으로 기억한다. 지나온 시절을 향으로 기억하는 방법은 사진이나 글만큼이나 선명하다.

 

펄스테이는 자신 혹은 그 누군가를 위해 향을 선택하는 일을 진정한 나만의 자유를 찾아 즐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말한다. 펄스테이가 선사하는 새로운 자유를 만끽하며 머스키 마일드로 이번 겨울을, 올 겨울의 나를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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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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