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몬드리안과 그 균형성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9.28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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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은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로,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데 스테일(De Stijl) 운동을 이끌며 추상 형식을 통해 보편적인 실재(reality)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은 대중에게도 매우 친근한데, 그 이유는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추상이 건축, 디자인, 패션 등 생활 속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은 자연 세계의 것들, 곧 물질적인 것들은 계속해서 변하므로 불완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우리 안의 ‘불변하는 어떤 것’을 중시했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불변하는 어떤 것’이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실재의 개념이다. 이 실재는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이며, 몬드리안은 이를 통해 우리가 모든 것과 단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만의 사상을 통해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 1878-1935)와 함께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한다.

 

 

 

몬드리안의 '조화' - 대립간의 균형


 

몬드리안의 글에 따르면, 조형적 표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극단적 요소로는 ‘외면과 내면’, ‘물질과 정신’, ‘개인과 보편성’ 그리고 ‘여성적 요소와 남성적 요소’ 등이 있다.

 

몬드리안은 이러한 극단적인 요소들이 어떻게 연관되고 관계되며 평형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조화란 곧 대립 간의 균형을 추구하는 것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원성의 대립을 강조한 몬드리안의 입장은 그가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신지학(Theosophy)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신지학이란 말은 그리스어의 신(Theos)과 지(Sophia)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으로, 종교와 철학이 융합된 것이다. 신지학은 합리주의로는 알 수 없는 직관적이고 신비한 경험을 중시했다.


이는 몬드리안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신과 물질, 여성적 요소나 남성적 요소 등의 이원론에서 출발하는 신지학은 몬드리안이 수평과 수직과 같은 이원론적 요소를 사용하여 그가 추구하던 균형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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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몬드리안, 하면 흔히 떠올리는 기본 색채인 적, 청, 황 삼원색의 사용도 신지학과 관련된 것이다. 몬드리안이 적, 청, 황을 가장 보편적인 색채로 간주한 것은 1914년 만났던 신지학자 쇤마커스(Schoenmaekers)의 영향이 크다.

 

당시 쇤마커스는 적, 청, 황을 유일한 색으로 간주했는데, 이것이 몬드리안의 색채 이론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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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대표적 기법인 이원적 구조의 사용 역시 그렇다. 몬드리안은 그의 작품에서 다양한 이원적 구조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몬드리안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1921)에서 쓰인 수평과 수직은 그가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이원적 구조이다.

 

그러나 그는 수평과 수직에 그치지 않고, <방파제와 바다>(1915)에서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형상처럼 다양한 구조를 사용했다.

 

몬드리안은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 자연과 물질은 개인적이고 지엽적이지만 이원적 구조를 통해 균형을 찾으면 이성을 넘어선 어떤 보편적인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그의 작품에 구현한 것이다.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신지학


 

몬드리안 작품에서 신지학의 영향은 특히 그가 쇤마커스를 만났던 1914년 이후로 더욱 급격하게 나타났는데, 수평과 수직을 사용한 몬드리안의 엄격한 구조 역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아마 이는 당시의 사회사적 상황, 특히 1914년부터 4년간 이어졌던 1차 세계대전의 영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이전의 전쟁과는 성격부터 다른, 인간의 폭력성과 잔인함이 여실히 드러난 전쟁이었다. 대중이 자랑스러워하던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극심한 파멸을 몰고 왔다.

 

이런 혼돈과 절망의 시기 속에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를 추구하고 균형을 맞춰가는 일, 그리고 이성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고 믿는 신지학의 교리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위안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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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바탕에서 출발한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는 이후 데 스테일 운동과 함께하며 헤릿 리스벨트(Gerrit Rietveld)의 <빨간색과 파란색 의자>(1918)와 같은 삼원색을 활용한 가구 디자인이나, 테오 반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의 간결한 조형성과 기하학적 구조를 중시하는 건축 이론 등으로 발전했다.

 

생활 속으로 확장된 데 스테일 운동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그들의 작품이 대중적으로 낯설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이러한 작품들을 그저 조형적인 감상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작품에 담긴 진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신조형주의의 시초로 불리는 몬드리안의 사상에 녹아든 당시의 사회사적 상황과 신지학에 관한 신념을 이해하는 것은 몬드리안뿐만 아니라 칸딘스키, 말레비치에서 몬드리안으로 이어지는 추상 담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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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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