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편지하는 마음 - 괄호가 많은 편지 [도서]

글 입력 2021.09.26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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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슬릭’과 ‘이랑’이 주고받은 편지를 엮은 책, <괄호가 많은 편지>를 선물 받았다. 최근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펴낸 서간 에세이 시리즈 ‘총총’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그 문을 연 작품이었다. 두 사람이 비밀일기를 주고받듯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식이란 점에서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상상 속에서 인물과 사건을 엮어가는 소설이 아닌, 두 발을 디딘 이 땅의 삶에 대해 말하는 편지 형식으로, 그와는 완전히 달랐다.


또 하나, 문학동네는 어떻게 친분이 없던 두 사람을 함께 떠올려 편지 주고받기를 제안하고, 책이 탄생했는지 궁금했다. 슬릭과 이랑, 모두 음악 아티스트라는 것과 그들의 대표적인 노래 몇 곡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외에 정보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발표된 음악 아래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지, 서로 어떤 마음을 주고받았는지 들어보고 싶었다.

 

 

 

고양이라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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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욘욘슨> 앨범 표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이야기의 문을 열 때면, 어떤 대화 주제를 나누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야기가 먼 길을 떠돌다, 정확히 제 자리로 돌아오는 순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대상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떠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슬릭과 이랑의 대화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고양이라는 존재를 생각할 때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모습이 그려졌다. 슬릭은 고양이 ‘또둑이’와 ‘인생이’, 이랑은 고양이 ‘준이치’와 한 가족으로 산다. 슬릭은 두 번째 편지에서 또둑이가 집을 떠나 행방을 찾을 수 없고, 고양이 탐정까지 의뢰해 또둑이 찾기에 모든 시간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슬릭의 이야기에 이랑은 자신 또한 준이치를 잃어버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시절 집을 구할 돈이 없어 음악 동아리방에서 고양이와 함께 살던 때였다. 청소 아주머니가 열어둔 건물 현관을 통해 밖으로 나간 준이치였다.


두 사람이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다시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들어보면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가족처럼, 애틋하고 소중한 존재임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마음이 존재했다. 그들은 고양이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흘린 땀, 끊임없이 떠오르는 자책과 후회, 슬픔을 말했다. 그 마음을 나는 떠올려볼 수 있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건 따로 떨어져 살던 가족과 함께 살기로 결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같은 언어로 대화할 수 없는 존재와 함께 하는 건 형용할 수 없는 즐거움과 기쁨이 있지만, 그만큼 많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제때 몸이 아프거나 불편한 점을 알아채 해결해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은 보편적이지만 결코 그만큼 쉽지 않은, 많은 고민과 계획이 필요한 삶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썸바디와 노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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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속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가족의 한 사람으로, 저마다의 전공, 혹은 몰두하는 분야를 가진 학생으로, 회사의 구성원으로, 취미를 지닌 한 개인으로. 다양한 사회적 지위와 개인적 특색이 쌓이고 쌓여, 슬릭이 말한 ‘썸바디’로 살아간다.


집단과 사회 안에서 이름이 있는 썸바디로 살면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종종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들끓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만든 기대치가 버겁고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그 가운데 느끼는 힘들고 지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토로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슬릭은 ‘노바디’가 될 수 있는 순간을 찾아간다.


슬릭은 SNS에서 브라질과 온두라스에 사는 친구를 사귄다. 그들은 한국에서 아티스트 슬릭을 보는 시선을 알지 못한다. 그저 ‘지구 반대편에 사는, 호기심 많고 노래 만들기 좋아하는 친구 슬릭’으로 바라보고, 노바디가 된 슬릭은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고 말한다.


때때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친한 친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을 가볍게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무도 나를 호명하지 않는 공간에서, 마음 편히 내가 원하는 만큼 나를 개방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그러면 평소엔 만날 수 없는 편안하고 포근한 감정이 느껴졌다.


노바디가 되어 쉬어가는 건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한자리에 정착해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매일매일 노바디가 될 순 없다. 어떻게 하면 덜 피곤하고 조금 더 행복한 썸바디가 될 수 있을까.


이어진 이랑의 답장에서, 이랑은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친구에게 남긴 편지를 공유했다. 그 속에서 답을 조금은 알 것만 같았다.

 

 

"난 인간은 본래 변화하는 동물이라 생각해. 최근까지도 인간은 ‘발전’해야만 한다고 굳게 생각했는데, 그 생각이 나를 힘들고 지치게만 하더라. 그래서 발전은 내려두고 변화를 품기로 했어. 너와 나, 우리 친구들의 변화를 다 자연스럽게 안으려고 생각, 노력하고 있는데 잘되고 있는가 몰라. 우리들이 같이 보내는 시간보다 변화가 무지막지하게 빠르게 느껴질 때도 내게 다가오는 변화를 잘 안아볼래. 그 안에서 내가 너를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너의 시간 속에 잘 가닿아줬음 좋겠다. 우리 인생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잖아. 그저 사랑뿐이야."

 

- <괄호가 많은 편지>, 182-183p

 

 

끝없이 더 좋은 결과를, 더 높은 목표를 말끔하게 해내길 바라는 사회.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친구라도 과거의 내가 내린 결정과 행동에서 나의 이미지를 그리고, 나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하는 건 서운하다. 평소 생각했던 내 모습이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바라보는 이상적인 그림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변화, 그 결심을 있는 그대로 안아주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그 마음의 다른 말이 곧 사랑이 아닐까.

 

 

 

괄호가 많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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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릭과 이랑이 주고받은 편지에는 괄호가 많다. 이랑은 책의 첫 머리에서 편지 속 많은 괄호에 대한 당부의 말을 남겼다. 오탈자를 확인하기 위해 음성 읽기 기능으로 글을 들어보면서, 괄호에 담긴 말은 눈으로 볼 때와 달리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했다. 그래서 괄호 안 이야기는 마음으로 읽어달라고 전했다.


그들의 편지에 괄호가 많은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괄호는 부연 설명이 필요할 때, 두 문장 사이에 들어가기엔 어색할지 몰라도 꼭 전하고 싶은 말을 쓸 때 적는다. 편지를 통해 점점 마음속의 깊은 이야기를 꺼내고, 친밀해지는 그들을 보면서 괄호의 이유를 헤아려볼 수 있었다.


짧은 편지에 담기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그 안에 담기지 않는 마음이 너무 많아서 괄호가 자꾸만 많아졌다. 괄호가 많은 편지, 따뜻하고 슬픈 마음이 가득 찬 편지. 선선한 바람에 생각이 많아지는 계절, 두 사람이 주고받은 마음의 기록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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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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