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들의 죽음은 어쩌면 헤피엔딩일지도 모른다. [도서/문학]

과연 이생과 최랑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난 것일까
글 입력 2021.09.24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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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이라는 단어를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흥부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등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전래동화가 생각날 것이다. 국어국문학과 학생인 나는 정수정전, 박씨전, 유충렬전, 원생몽유록을 더 제시할 수 있다.

 

고전소설이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될 것이다. 나도 그렇다. 평소에 자기계발서나 현대소설을 읽지, 고전소설은 국문학 시간에나 학문으로 접했다. 이야기 주제가 대부분 유교적 도덕관에 입각한 권선징악, 탐관오리 비판, 신분을 초월한 남녀 간의 사랑 등으로 진부하고 평범했다. 소설의 주인공들 또한 선인과 악인이라는, 평면적인 구조로 설정되었다.

 

하지만 모두가 어렴풋이나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주축이 되는 고전소설 갈래가 있다. 바로 애정(愛情) 소설이다. 애정 소설은 말 그대로 남녀 간의 사랑이 소재가 되는 소설이다. '사랑'은 시대를 막론하고 문학에서 가장 중심적인 제재로 다뤄졌다. 그래서 남녀 간의 사랑 문제야말로 독자들의 원초적인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매력적인 소재였다. 앞서 말했듯이, 사랑은 누구나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이고, 서사 속 갈등이 미묘하고 농밀하게 전개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오늘 소개할 <이생규장전>도 남녀 간의 진실한 사랑을 담아낸 소설이다. 15세기를 대표하는 조선의 문인이자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에 수록된 작품 중 하나로, <운영전>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애정 소설로 손꼽힌다. <이생규장전>의 줄거리를 간단히 말하자면, 유복한 집안의 남녀가 부모의 반대로 헤어졌다가 재회하지만, 현실적인 고난 앞에서 사랑이 좌절된다고 만다는 이야기다.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같은 <이생규장전>은 우리가 알고 있던 애정 소설과는 어딘가 좀 다르다. 이생과 최랑이 재자가인(才子佳人: 재능이 뛰어난 남자와 아름다운 여인) 유형의 인물이라는 것은 여느 고전소설과 비슷하지만,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사랑을 다룬 명혼(冥婚) 소설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두드러진다.

 

이생과 최랑은 왜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라는 기이한 관계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까. 왜 그들의 사랑은 <춘향전>처럼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으로 마무리되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음으로 끝난 그들의 사랑이 과연 비극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이러한 독특한 서사는 파헤쳐보고 싶은 구미가 당긴다. 이 글에서는 현실과의 대결을 패배한 이생과 최랑의 사랑을 살펴보고, 그들의 사랑이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

 

 

 

이생규장전


 

고려 때 개성에 살던 수재, 이생은 서당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최진사 댁의 딸인 최랑을 보게 된다. 아름다운 최랑을 보고 한눈에 반한 이생은 시를 적은 편지를 최랑이 사는 집 담 안에 던진다. 이생의 진실된 마음에 설렌 최랑은 황혼에 만나자는 답장을 쓴다.

 

날이 어두워지자 그녀의 집을 찾아간 이생은 최랑과 백년가약을 맺기로 약속한다. 그 이후로 이생은 최랑의 집을 계속 드나들지만, 이생의 아버지가 이를 알게 되어 이생을 엄하게 꾸짖고 울주로 쫓아낸다. 최랑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오지 않는 이생의 소식을 듣고 앓아눕는다. 최랑의 부모님 최랑과 이생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중매쟁이를 이생의 집에 보낸다.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끝에 이생과 최랑은 부부가 되었고 이생은 높은 벼슬에 오른다.

 

하지만 홍건적의 난으로 둘은 헤어지는 또 다른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그 와중에 최랑은 겁간당할 위기에서 도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만다.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이생은 영혼으로 돌아온 최랑과 함께 이웃, 친척과의 왕래도 끊은 채 여생을 즐겁게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최랑의 혼은 저승으로 돌아갔고, 이생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생과 최랑의 성격


 

이생과 최랑은 상반된 성격을 지녔다. 황혼에 이생이 최랑의 집을 찾아갔을 때, 이생은 규중의 여인과 만남을 가진 사실이 누설될까 사회의 시선을 걱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최랑은 친정의 꾸지람을 듣게 되더라도 자신이 혼자 책임지겠다고 한다. 여기서 사람들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최랑의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돋보인다.

 

이생의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면모는 아버지의 꾸지람을 들었을 때도 드러난다. 이생의 아버지는 공부를 소홀히 하고 명문가 집안의 아가씨나 엿보러 다니는 경박한 행동을 했다고 이생을 엄하게 꾸짖고 울주로 보내버린다. 이생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최랑과의 관계에 대한 자기 뜻을 적극적으로 내비치지 않는다.

 

그리고 최랑은 홍건적의 난 때 자신을 겁탈하려는 도적에게 크게 호통치며 정조를 지키려는 의지가 꿋꿋한 모습을 보인다. 난이 끝나고 나서도 최랑은 죽었음에도 혼령의 모습으로 이생을 찾아와 사랑을 이어가려 했다. 이러한 면에서 최랑은 여러 장애물 앞에서도 이생과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임이 드러난다. 두 인물의 성격은 사랑을 좌절시키는 현실과의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대비된다.

 

 

 

이생과 최랑의 사랑을 방해하는 현실


 

<이생규장전>은 최랑의 죽음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에서는 주인공들이 문벌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랑을 성취해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에서 주인공들은 세계와의 대결에서 실패하여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홍건적의 난으로 이생과 최랑은 헤어졌다. 재회하지만 이생은 산 사람으로, 최랑은 죽은 사람으로 만나는, 비현실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다.

 

따라서 이생과 최랑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가부장적 권위이다. 전반부에서 이생의 아버지는 명문가 집안의 규중 여인인 최랑과 이생이 만나는 것을 경박한 행동이라 판단하고 이생을 울주로 보낸다. 남녀가 연애 결혼을 할 수 없는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와 아버지의 뜻에 순응하는 이생의 모습에서 당시 가부장적인 권위가 지배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최랑 부모의 설득과 이생 아버지의 허락으로 두 인물은 갈등을 극복하고 사랑을 잘 이어가는 듯했으나, 두 번째 비극 앞에서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바로 황건적의 난이다. 전란으로 이생과 최랑은 예기치 못한 이별을 겪어야 했으며, 최랑은 겁탈당할 뻔한 위기에서 죽임을 당했다. 최랑의 혼과 금실 좋게 살아가려 했던 이생은 아내가 저승으로 돌아가면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승과 저승이라는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초월한 사랑마저도 결국 세계 앞에서 실패하고 파국으로 치달은 것이다.

 

 

 

그들이 죽음은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


 

김시습은 이처럼 ‘갈등-갈등해소’의 구조가 반복되는 이야기를 쓰면서 세계와의 대결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극적인 결말을 담아내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갈등을 겪는 인간의 인생사야말로 가장 극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달리 생각하면, 이생과 최랑이 사랑을 성취하기 위해 난관을 감내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절절하게 사랑했는지를 강조하는 역할을 했다. 최랑의 혼과 이생은 부부의 연을 이어가기 위해 저승과 이승을 초월하기까지 했다.

 

<이생규장전>을 처음 읽은 사람은 그들의 사랑이 비극으로 끝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다. 최랑이 저승으로 돌아가고 이생이 최랑을 그리워하다가 병으로 죽은 것은 현실적 갈등이 해소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결말이 어쩌면 해피엔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생이 최랑의 혼과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저승에서 완성하려 했다고 보면, 갈등이 어느 정도는 해소됐다고 보고 싶다. 홍건적이 끝난 후에 이생과 최랑은 저승이 중첩된 이승에서 사랑을 이어나갔다. 여기서부터 그들의 사랑을 방해했던 현실이 저승이라는 비현실적인 요소가 가미되면서 흐려지기 시작했다.

 

최랑의 혼이 저승으로 돌아가면서 언뜻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다시 분명해진 것 같다. 그러나 이생은 최랑을 그리워하다가 저승으로 넘어갔다. 두 사람을 굴복시켰던, 현실적인 고난이 없는 저승에서 혼령으로 사랑을 이어나가는 것이 더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 미완성으로 남은 그들의 사랑은 비현실에서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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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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