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만의 불협화음 '아-하: 테이크 온 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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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아-하(a-ha)’의 이름을 처음 보았을 때,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에 호기심이 일었다. 음악을 들으면 생각날 것 같아 대표 곡 ‘테이크 온 미(Take On Me)’를 재생했다. 간주가 흐른 3초 만에 익숙한 멜로디에 빠져들었다.
노르웨이 출신 밴드 a-ha의 탄생부터 수많은 히트곡에 숨겨진 비화까지 만나볼 수 있는 영화 <아-하: 테이크 온 미>로 초대한다.
영화의 방식
<아-하: 테이크 온 미>는 독특한 방식으로 a-ha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전까지 ‘밴드와 음악’ 영화라 하면 하나의 장르만이 떠올랐다. 3년 전, 극장을 뜨겁게 달군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만든 인상이었다. 온갖 실패를 딛고 모험을 떠나 성공하고 마는 극적인 스토리, 감동의 엔딩,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떼창’이 곧 나에겐 밴드 영화였다.
<아-하: 테이크 온 미>는 이것과 비슷한 면을 공유하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서로 다른 사람이 모여 밴드를 이루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만나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닮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전혀 다른 장르로 전달했다. 그리고 그 점에서 전에 만나보지 못한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다.
우선 영화를 연출하고 제작한 사람들이 지닌 관점과 감성이 달랐을 것이다. <아-하: 테이크 온 미>는 뮤지컬을 보여주는 것처럼, 기승전결 순서대로 친절하게 이야기를 다루진 않는다. 그보다는 여러 인물이 등장했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여러 에피소드가 동시에 등장하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 같았다. 조금 더 집중력이 필요하지만, 그래서 각자의 방식대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재미가 있는 뮤직비디오였다.
대표곡 ‘Take On Me’ 뮤직비디오의 연장선이기도 했다. 당시 과감하게 드로잉과 현실의 인물과 사물이 이어지게 만화처럼 비디오를 구성했는데, 영화 또한 중간중간 드로잉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멤버들의 인터뷰가 주를 이루는 영상으로 현실과 맞붙은 다큐멘터리의 모습을 띄다가, 드로잉으로 교차되는 순간 상상 속 이야기처럼 거리감이 느껴졌다. 독특한 구성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우리만의 불협화음
이렇게 영상을 연출한 방식이 영화에 독특한 감성을 입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특별하게 만든 건 바로 a-ha의 멤버들, 그리고 그들의 관계성이었다.
a-ha의 멤버는 보컬의 ‘모튼 하켓’, 키보드의 ‘마그네 푸루홀멘’, 기타의 ‘폴 왁타’ 세 사람이다. 그들은 흔히 밴드하면 떠오르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각별한 사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서로 성격과 가치관, 모든 것이 하나같이 안 맞아서 어떻게 저렇게 오래 함께 했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영화는 내내 그들의 지지부진한 다툼과 갈등을 보여줬다. 사소한 것에서도 의견이 달랐고, 서로 양보하고 있다고 느끼기도 했다. 객석에 앉아 지켜보는 나 또한 세 사람 중 누군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아닌지 조마조마했다.
긴 싸움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 곡은 사람들에게 평안함과 안정감을 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과정 또한 평탄하기만 했을 리는 없다. 영화는 하나의 창작물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아름답게 가공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울퉁불퉁해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은 어딘지 묘하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니지만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과정을 떠올렸다. 세상은 아름답고 완벽한 결과만을 바라보지만, 그 안에 담긴 무수한 싸움과 고민을, 내용은 달라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우리를 함께하게 만든 건 우정이 아니다. 음악이 아니었다면, 우린 각자의 길을 갔을 것이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의 음악성만은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a-ha의 세 사람, 성큼 다가가서 보면 불협화음만이 들리는 것 같다. 너무나 다른 성격 탓이다. 하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서면 층층이, 견고히 쌓은 화음이 들린다. 서로의 연주와 가창을 믿고,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로의 의견에 거세게 반대하는 그 모습들도, 완벽한 음악을 만들기 위한 온 마음을 쏟아부어서 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소원을 공유할 때 어떤 빛을 낼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성공의 의미
a-ha는 성공을 위해 때론 원하지 않는 것을 하기도 했다.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보이밴드’ 콘셉트로 잡지 화보를 찍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한다. 원했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게 되었지만, 그들이 추구한 깊은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내 보이밴드 콘셉트를 내려두고, 다시 본인들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사회가 제시하는 길과 본연의 내가 원하는 것은 다르다. 때로는 외부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자꾸 듣다 보니 그게 꼭 맞는 것만 같아서 그 길을 따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이라면, 반드시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힌다. 해소되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욕망이 자라난다. A-ha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a-ha는 전 세계 사람들이 사랑하는 밴드로 성장한다. 계속되는 월드투어와 수많은 팬들, 값진 선물이었지만 a-ha의 멤버들은 만족하지 못한다. 더 큰 것을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오래 바라던 목표를 성취한 후 찾아온 상실감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원하는 것을 손에 쥐었을 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성공을 이루기까지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뒤의 삶은 어떻게 나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a-ha는 성공을 거둔 뒤에도 꾸준히 앨범을 발매했다. 중간에 해체를 하기도 하고, 또 많은 싸움을 거쳐왔겠지만 분명한 건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장르와 편곡으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그들만의 음악들을 들려줬다.
지금까지 무수한 갈등 속에도 지치지 않고 달려온 a-ha의 음악과 이야기를 만나봤다. 음악 영화이자 삶에 관한 영화인 <아-하: 테이크 온 미> 직접 만나보길 추천한다.
[이수현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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