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컨택트 [영화]

카페에서 영화 마시기, 다섯 번째 잔.
글 입력 2021.09.12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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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에서 외계인이 내려와 하는 말?


 

*

경고!

영화 <컨택트>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컨택트(원제: Arrival)>는 언어학자인 여자 주인공이 물리학자인 남자 주인공과 함께 지구에 착륙한 외계인들과 소통을 시도하는 영화다. 루이스 뱅크스는 이혼 후 희귀병으로 딸을 잃고 가끔씩 딸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리며 아파하는 저명한 언어학자다. 딸에 대한 기억을 반추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던 루이스는 어느 날 갑자기 전 세계 12개 지역에 외계 물체들이 착륙했다는 대형 뉴스를 접하게 된다.

 

때아닌 외계 물체 등장에 혼비백산한 미군의 SOS 요청을 승낙한 언어학자 루이스는 물리학자 이안 도넬리와 함께 외계 물체 내부로 들어가 외계인들과 대화를 시도해보기로 한다. 무턱대고 외계인들에게 말을 걸어 보던 루이스는 알파벳으로 대화를 시도하기에 이르는데, 그녀가 적은 글자를 본 외계인들은 원 모양의 문자로 그녀에게 응답을 보내온다.

 

외계인들이 시각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외계어 연구 속도는 급속히 빨라져 그들의 문자가 시제가 없는 도형 문자인 ‘비선형 문자’라는 사실까지 밝혀진다. 이후 루이스와 이안은 두 외계인에게 이름애봇, 코스텔로도 붙여주고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차근차근 영어 단어를 가르친다. 이로써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외계인들은 자신들이 지구에 온 목적을 이야기한다.

 

 

"Use weapon."

무기를 쓰다.*

 

*공식 자막은 "무기를 주기 위해서." 결말을 반영해 번역한 듯하다. 그러나 결말을 모르는 상황에서는 영화의 개연성을 저하시킬 수 있는 자막이므로 본 글에서는 이해를 돕기 위하여 "무기를 쓰다."로 직역한다.

 

 

‘무기’라는 단어가 언급되자 전 세계는 외계인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들끓고, 급기야 중국과 몇몇 국가들은 외계인들에게 전쟁을 선포한다. 전시 상황이라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통신을 끊어버린 국가들 사이에서 답답해하던 루이스는 결국 홀로 우주선에 들어가 외계인들과 대화를 이어간다. 그리고 ‘Use weapon’무기를 쓰다의 본래 의미는 ‘Give weapon’무기를 주다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컨택트' 말고, 'Arrival'



국내 개봉 제목이 '컨택트'였으므로 대부분의 한국 관람객들은 이 영화의 원제가 'Arrival'이라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아니, 모른다기보다는 원제와 국내 제목이 다를 수 있다고 의심할 생각조차 못 했을 확률이 높다. 번역된 제목이라기엔 '컨택트(Contact)'가 애초에 영어 단어이며, 또 영화의 내용 역시 외계인과 인간의 소통(Contact)을 다루고 있으니 너무나 그럴듯해 보이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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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rival'을 '어라이벌'로 쓰기엔 한국인들이 그 의미를 바로 떠올리지 못할 것 같고, 그렇다고 '도착'으로 쓰기엔 어색하다. 그렇지만 한 단어로 간결하게 이루어진 원제를 구구절절 '외계인의 도착'으로 풀어 쓰긴 싫다. 주제를 살리면서 영어의 그 간결한 맛을 살릴 제목이 뭐가 있을까? 아하! 컨택트!

 

 

글쎄, 확실히 한국인 입장에서는 '어라이벌'보다 '컨택트'가 더 한눈에 이해하기 쉬운 표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는 이 바뀐 제목이 매우 불쾌하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번역가의 명백한 실수다. 이 영화의 제목은 반드시 'Arrival' 이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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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컨택트>는 서로 다른 개체들 간 소통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영화가 맞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계 물체들이 전 세계에 상륙한 위험 상황에서마저 제 이익을 챙기려 정보 공유를 하지 않는 국가들의 모습은 현재 세계의 소통 방법의 문제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위험을 무릅쓰고 방호복을 벗어가면서까지 외계인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루이스의 모습은 순수한 의도로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할 때 상대가 소통에 응한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이안의 명대사 "한 언어를 배우면 그 언어에 맞는 사고체계를 가지게 된다"도 이 교훈을 뒷받침하고 있다.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곧 그 문명의 근본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해(소통)한다’는 것은 곧 그 문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는 것이므로 사고체계가 비슷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영화가 소통(Contact)을 주된 내용으로 다루고 있음에도 필자가 꿋꿋이 원제 Arrival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답변은 간단하다. 그게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번역가는 제목을 컨택트로 바꿔버림으로써 국내 관람객들이 해당 영화를 '소통'에 한정하여 이해하도록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 영화를 '소통의 소중함에 대해 다룬 영화'로만 기억하는 것은 관객 입장에서 너무나 큰 손실이다. <컨택트>의 숨겨진 주제는 바로 '운명의 도래(Arriva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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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작부터 결말에 대한 복선투성이다. 서사의 초반부터 중반까지 루이스는 이혼 후 딸을 잃은 여성이다. 때문에 필자는 도중에 뜬금없이 삽입되는 죽은 딸에 대한 장면들도 딸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주는 장면 정도로 여겼다. 그러나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뭔가 이상한 것을 느꼈다. 영화 전개상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 접어들면서 딸에 대한 기억들이 더욱 불친절하게, 더욱 자주 삽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혹시 죽은 딸에 대한 기억들이 외계어 해독에 도움을 주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진실은 그것보다 더욱 놀라웠다. 분명 외계인이 등장하기 전에 죽었을 딸이 점토로 헵타포드루이스가 지금껏 대화하고 있었던 외계인들의 학명. 다리가 7개여서 헵타포드다.를 만드는 장면이 루이스의 기억 속에 등장한 것이다. 반전은 그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간간이 삽입되던 기억 속에서 루이스의 이혼한 남편은 얼굴 없는 과학자로 등장해왔는데, 놀랍게도 이 남편이 바로 이안이었음이 밝혀진다. 그간 과거 회상이라고 생각해왔던 장면들이 실제로는 루이스가 본 미래였던 것이다.

 

사실 필자는 루이스가 미래를 '본다see'기보다는 '산다live’고 표현하고 싶다. 그녀는 단순히 미래를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살고 있으며, 자신이 현재 발 디디고 있는 ‘과거’를 위해 ‘미래’를 사용한다. 다시 말해 완벽하지 않은 미래를 보았음에도 과거를 바꾸려 들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보는 미래가 실현될 수 있도록 돕는다. 즉, 변화를 포기함으로써 미래가 '도래(Arrival)'한다.

 

 

 

시럽 추가: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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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보는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많다. 하지만 인물이 미래를 보면서도 그 미래를 바꾸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컨택트>만의 독특한 지점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이스는 이안과 결혼한 뒤 아이에게 병이 생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 뒷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그녀는 그로써 마침내 자신이 본 미래에 도착(Arrive)했을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선택의 순간들을 맞닥뜨리게 될 때마다 항상 '이 선택의 결과를 미리 알 수만 있다면', 하고 바란다. 그렇기에 결말을 알면서도 삶이 그 결말로 흘러갈 수 있게 가만히 두는 루이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때때로 사람들은 '행복의 끝'을 피하는 것이 더 확실한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고 쉽게 믿지만, 어쩌면 끝을 알고 있는 행복이야말로 변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실 영화의 모든 것은 결말에서 루이스가 딸에게 지어준 이름에 담겨 있다. ‘H-A-N-N-A-H’. 자신에게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알려준 헵타포드들의 언어를 기리기라도 하듯, 딸의 이름은 시제가 없는 원문자처럼 순환한다. 이 이름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 뻔하지만 여행을 떠나고, 다시 상처 입을 것이 뻔하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결말을 알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달라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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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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