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실한 예술가들이 선사해 준 첫 경험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글 입력 2021.09.10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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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린 시아마 감독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마지막 장면에는 공연을 보는 여인과 그 여인을 바라보는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한다. 그들처럼 오페라를 보던 나는 엘로이즈가 되어 무대를 보았고, 마리안느가 되어 관객석 구석 자리를 바라보았다. 무려 1년 8개월 전에 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이토록 생생한 건 “각자 다른 것을 보는 것 같지만, 마리안느를 엘로이즈를 보고 엘로이즈는 무대를 보며 마리안느를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이라는 이동진 평론가의 해설의 영향이 컸다. 그날 나는 무대와 관객석을 번갈아 보면서 오페라를 보며 무언가를 떠올리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포스터(최종)_람메르무어의루치아.jpg

 

 

힉엣눙크 페스티벌은 세종솔로이스츠가 2017년부터 기획한 음악 페스티벌로, 페스티벌의 이름인 힉엣눙크(HIC ET NUNC!)는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Here, and Now)’를 뜻한다. 세종솔로이스츠는 1994년 강효 줄리아드 대학교수가 한국을 주축으로 8개국 출신, 최정상 기량의 젊은 연주자들을 초대하여 현악 오케스트라를 창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미국 ‘CNN’이 “세계 최고의 앙상블 중 하나”라고 극찬한 세종솔로이스츠는 카네기홀과 케네디 센터 자체 기획공연에 초청받은 유일한 한국 단체이기도 하다.

 

올해 열린 네 번째 힉엣눙크 페스티벌에는 피에르-로망 에마르가 자연을 배경 삼아 연주하는 야외 콘서트, 스티븐 김의 바이올린 리사이틀 등 페스티벌의 품격에 걸맞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그중 내가 관람한 건 지난 9월 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공연된 콘서트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였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공연 전반부에는 세종슬로이스츠의 전 악장이자 현 뉴욕필 악장인 프랭크 황과 메트오페라 오케스트라 악장 데이비드 챈이 선사하는 비발디의 더블 바이올린 콘체르토 무대, 세종슬로이스츠 초창기 단원으로 활약하며 함께 무대에서 보태시니 ‘그랑 듀오 콘체르토’를 연주했던 데이비드 챈과 커트 무로키가 같은 프로그램에 선다. 후반부에는 메트오페라 주역인 캐슬린 김과 데이비드 챈이 이끄는 세종슬로이스츠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주요 아리아를 콘서트 버전으로 연주한다.

 

꽤 성실하게 문화 활동을 즐긴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클래식이나 오페라 분야와 같은 미지의 영역에서만큼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평소와 달리 이 오페라를 즐기는 동안은 어떻게 감상을 기록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대로 이해한 게 없으니 내가 무엇을 느끼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중 건너편 벽에 붙은 구석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곧바로 저 멀리 자신을 향한 마리안느의 시선을 느끼지 못한 채 무대를 보며 마리안느를 생각하던 엘로이즈의 환영이 보였다. 엘로이즈는 나처럼 어떤 걸 느끼고 어떤 감상을 남겨야 할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생각하고, 가슴속에 차오르는 대로 느꼈을 것이다. 다시 고개를 돌려 공연을 감상했다. 그제야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이라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감상을 시작했을 때, 눈에 들어온 건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손끝이었다. 처음으로 록 밴드 공연을 실제로 보았을 때, 무대 뒤편에 있는 드러머의 손끝에 집중해 그가 드럼 스틱을 높이 쳐들면 숨을 참고 그가 강하게 스틱을 내려치면 숨을 내쉬며 동작 하나하나에 같이 호흡한 기억이 떠올랐다. 오로지 음원으로만 밴드 음악을 즐겼던 나로서는 처음 맛보는 공연의 희열이었다. 이 희열은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주자들이 활을 움직일 때마다 단순해 보이는 동작 하나하나가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꼈다.

 

공연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클래식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는 사실에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연주가 듣기 좋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긴 박수와 함께 비발디 부분이 끝나고 보테시니 부분이 시작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좋다’는 단순한 감정만으로 충분하다는 단순한 진실을 깨달았다. 음악이 아름답고, 연주자들의 연주가 황홀한 것. 그것이면 충분했다.

 

후반부에는 아예 눈을 감고 연주를 즐겨보기도 했다. 복잡한 해설, 배경지식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엘로이즈나 마리안느처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가슴속에 차오르는 대로 공연을 느꼈다. 천천히 눈을 떴을 때 진심으로 무대에 집중하는 수많은 사람과 한 공간에서 이 황홀한 순간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다운로드.jpg

 

 

공연을 보면서 어린 시절 호기심에 바이올린을 켰던 기억이 떠올랐다. 악기에 활을 대고 힘차게 젓기만 하면 바로 소리가 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아무리 활을 움직여도 내가 알던 바이올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모든 악기가 다 그렇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정교한 기술이 동원되어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 결국 바이올린을 제대로 켜는 데 실패한 나는 그 이후부터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던 때를 지나 감미로운 멜로디까지 완성해낸 모든 악기 연주자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누군가의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건 그 사람이 그 일을 정말 잘한다는 뜻’이라는 말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관객석에선 멋진 정장과 드레스를 차려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이 그저 우아하게만 보일 것이다. 바이올린은 물론 모든 악기를 제대로 연주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이 공연이 시작되기까지 연주자들이 얼마나 연습을 많이 했을지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최근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이라는 책을 읽고 마냥 멋있어 보였던 예술가들이 얼마나 깊이 고민하고 불안해하는지, 대중들에게 작업물을 선보이기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하고 연습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예술가들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어떤 예술을 즐기든 숨겨진 노고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래서 나만큼 평범하고 나만큼 불안한 사람들이 온갖 역경을 뚫고 결국 완벽한 결과물을 완성해냈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꼈다.

 

사실 콘서트 오페라는 (최근까진) 평범한 학생이었던 내가 맘껏 즐길 만큼 저렴하지는 않다. 저렴하지 않은 가격의 무게는 당사자들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지친 내색 하나 없이 힘껏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보며 시간과 돈을 들여 공연을 찾아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보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이 모두 끝나자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클래식은 어렵다며 어색해했던 내가 끝날 때쯤에는 공연에 흠뻑 취한 것이다. 기분 좋은 가을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가는 동안 평소 자주 들었던 팝송과 가요를 들었다. 그렇게 안락한 익숙함에 빠져드는 동안에도 낯선 첫 경험의 황홀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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